숨은 산재부터 찾아내야
대통령이 산재사고를 강하게 질타하면서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산재가 안 줄면 직을 걸라”고 했다. 국무회의에서 산재사망 근절책을 놓고 집중토의하는 생경한 모습에 국민은 환호했다. 장관은 올해 네 번의 사망사고가 난 포스코이앤씨 모든 현장에 불시 감독을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저도 불시에 감독 나갈 수 있다”고 했다.(한겨레 7월29일)
여러 언론이 이를 보도했다. 머니투데이는 “‘직 걸라’ 한마디에 초긴장”, 채널A는 “반복 산재사망은 고의”, 아시아경제는 “산재사망은 미필적 고의 살인”, 국제신문은 “산재사망 공시해 주가 폭락하게”라는 제목을 각각 달았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가 산업계에 보낸 산재 근절 신호는 절반의 진실만 담았다.
연간 산재사망자는 10년 넘게 2천명 전후로 고정돼 있다.
대통령은 SPC그룹과 포스코이앤씨처럼 대기업을 지목했지만 정작 산재사망자 80% 이상이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일어난다. 중소 사업장 산재는 대통령과 장관이 ‘질타’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사망산재의 절반이 넘는 건설업은 다단계 하청구조를 없애지 않으면 산재 줄이기는 불가능하다.
더 큰 문제는 ‘산재은폐’다. 산재만 나면 기업은 공상 처리하자고 한다. 공상은 산재은폐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공기업 마사회가 운영하는 경마장엔 구급차가 상시 대기한다. 그만큼 사고가 잦다. 그런데도 마사회 산재 기록은 1년에 몇 건 안 된다. 말 관리사는 2017년 113건, 2018년 162건, 2019년 161건의 산재가 있었지만 마사회는 18건, 17건, 23건 신고에 그쳐 미보고율이 84% 이상이었다. 경마장에서 가장 많이 다치는 기수는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안전보건 관리체계 밖에 있다.(고 문중원 기수 죽음과 관련한 마사회 구조와 실태조사 보고서, 한노동안전보건연구소, 2020.3)
경마장의 구급차 운행기록만 확인해도 숨은 산재가 드러난다.
산재를 담당하는 국가기관의 산재 통제는 더 큰 문제다.
금속노조 경남지부는 2004년 4월22일 ‘산재노동자를 두 번 죽이는 근로복지공단 창원지사는 각성하라’는 성명을 냈다. 공단 창원지사가 각 병원에 공문을 보내 “경제활동 능력이 없거나 취업 기회를 잃은 고령자가 개인적 생계 염려에 따라 요양을 장기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럴 경우 치료 종결을 유도하라”고 했다. 금속노조는 치료종결을 종용한 공단을 항의방문했다.
창원 대우중공업 국민차 사업부에 입사해 5년 일했던 이상관씨(당시 27살)는 1999년 2월20일 산재사고를 당했다. 공단은 몸도 가누지 못하는 이씨는 강제로 퇴원조치했다. 이씨는 힘겹게 통원 치료하다가 4개월 만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한겨레 1999년 7월13일 15면) 유족과 대책위는 공단 앞에서 155일간 농성해야 했다.
반올림은 반도체공장 백혈병을 산재로 인정받으려고 20여년을 싸웠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는 2013년 3월 딱 2주간 울산 동구 정형외과 10곳을 방문해 산재은폐 실태를 조사했는데, 무려 106건의 은폐 사례를 접수했다. 회사에서 다쳐 지정병원에 갔는데도 관리자가 병원까지 동행해 집에서 다쳤다고 진술토록 강요했다. 젊은 사내하청 노동자에겐 정규직 면접 때 불이익을 암시하며 산재 처리를 막았다. 병원도 마찬가지였다. 작업복과 안전화 차림으로 온 환자조차 산재로 분류하지 않았다.
산재은폐가 건강보험 재정적자의 한 원인이 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007~2009년 노동자가 산재 당하고도 건강보험으로 진료받은 9만3천건에 180억원을 환수조치했다. 당시 환수 건수는 연간 산재통계의 30%에 달했다. 기업주가 낼 산재 비용을 국민이 낸 건강보험 재정으로 메운 셈이다.
엄포로는 산재를 추방하지 못한다. 대통령의 강한 질책에 노동부는 숫자 줄이기에 급급할 뿐이다. 진짜 산재를 줄이겠다면 숨어 있는 산재, 은폐된 산재를 캐 내는 공무원을 포상하겠다고 해야 옳다. 그래야 산재보험기금도 넉넉해지고, 풍선 효과처럼 건강보험 재정에 주는 피해도 막는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