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에 갇힌 안전 ②] “안전운임제 정책효과 없어” 말 바꾼 국토부, 손 놓은 국회

시장실패 개선하자던 정부는 어디로 … “제도 불확실성 높아, 상시화·품목확대 필요”

2025-08-07     정소희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정부와 국회가 또다시 안전운임제를 3년동안 한시적으로 시행하기로 했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이미 2020년부터 3년간 일몰제로 시행했기 때문에 재도입 때는 상시 운영이 가능하리라는 믿음이 컸다. 민주당은 안전운임제 상시화를 당론으로 채택했고, 안전운임제와 화물노동자를 탄압하던 윤석열 정부도 물러났다. 안전운임제 재도입을 넘어선 영구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만 3건이나 안전운임제 관련 법안인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화물자동차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모두 이전에 시행된 안전운임제보다 확대된 수준이었다. 공통적으로 일몰제 폐지를 전제로 안전운임제를 재도입하는 내용이다. 품목 확대 여부만 달랐다. 컨테이너·시멘트 화물차에만 적용했던 종전의 안전운임제에 어떤 품목을 더할지가 쟁점인 듯 했다. 그런데 국회는 지난달 여야합의로 또다시 품목 확대 없는 3년 일몰제 안전운임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안전운임제에 관해 말을 바꾼 정부와 손을 놓은 국회가 합심한 결과였다.

운임제 도입하자던 국토부는 어디 가고

<매일노동뉴스> 취재 결과 일몰제가 또다시 적용된 데에는 주무부처인 국토부가 안전운임제 정책 효과를 부정한 의견이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확인됐다. 6일 본지는 국토부가 지난달 16일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 교통법안심사소위에 제출한 정책의견서를 입수해 살펴봤다. 소위는 의원들이 발의한 화물자동차법 개정안 6개를 심사했는데 4개 법안이 안전운임제 영구화를, 3개 법안이 품목 확대를 지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국토부는 발의된 법안에 대해 “안전운임제 정책효과 검증이 필요하다”며 “영구화와 품목 확대는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도 효과를 충분히 검증하고, 추후 제도 연장·개선 검토가 필요하므로 영구화는 곤란하며, 일몰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안전운임제 시행 뒤에도 교통사고가 줄어들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안전운임제 목표 중 하나는 도로안전으로, 장시간 일하는 화물노동자에게 적정운임을 지급해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화물차 사고를 예방하자는 취지다.

품목 확대도 부정적으로 봤다. “이해관계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객관적 운임이 산출되기 위해서는 규격화·품목화가 용이한 품목을 대상으로 선정할 필요가 있다”며 “규격화·품목화가 가능한 컨테이너·시멘트 품목으로만 (안전운임제 적용을) 한정한 것”이라고도 답했다.

“차주 보호 필요성에 공감한다”면서도 국민의힘 법안이었던 표준운임제 도입에만 “동의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표준운임제는 화주 처벌 조항을 삭제해 노조 등 현장노동자 반발이 컸다. 안전운임제는 적정한 운임을 지급하지 않는 화주와 운송사 모두에게 과태료를 부과했다.

이 같은 국토부 입장은 20대 국회 때와 상반된다. 제도 첫 도입을 논의하던 20대 국회에서 국토부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제도 필요성과 시장 적합성을 확신했다. 안전운임제 법안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운송·물류산업을 총괄하는 주무부처인 정부의 의견과 정책 의지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 김현미 당시 국토부 장관도 나서 제도를 반대하는 국토교통위 의원들에게 “종사자에게 적정 임금을 보장해 주자는 것”이라고 설득했다. 국토부 교통물류실·물류산업과 관계자들은 “이 법은 시장경제를 침해하는 내용이 아니라 투명하고 공정하게 페어플레이를 하는 구조체를 만드는 법”이라며 “화물운송 시장이 많은 시장실패를 경험했다”고 강조했다. “운임규제는 시장경제 원칙과 계약자유 원칙을 침해한다”는 일부 의원 주장에 대한 반박이었다. 정부는 40여차례 넘게 안전운임제 도입을 위해 화주단체·운송단체·화물연대본부와 사회적 합의를 이뤘다는 점도 강조했다. 안전운임제는 노조와 화주, 운송사 같은 운송시장 이해관계자와 전문가가 함께 위원회를 구성해 시장운임을 결정하는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었다.

제도를 처음 시행하는 법안이 통과된 건 2018년 3월이지만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2003년부터 화물운송시장에 운임제를 도입하자고 요구해 왔다. 시장 자율 명목으로 어떠한 운임규제도 없던 운송업계에는 최저입찰제·덤핑제가 만연했다. 실제 운송업무는 하지 않는데 물량 중개만 하는 운송사가 늘어 갔고, 다단계 운송구조가 자리 잡아 화물노동자가 받아야 할 몫은 줄어들었다. 물동량이 늘어 화물차는 모자란데도 화물노동자 실질운임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결과까지 낳았다. 이 같은 현실을 고려해 2018년에야 안전운임제 도입이 결정됐다. 국민의힘의 극심한 반대 끝에 3년간 한시적으로 시행하기로 했지만, 국토교통부와 민주당은 “시장실패를 경험한” 화물운송시장의 가장 약한 고리인 화물노동자를 보호할 안전운임제가 필요하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시장실패’는 법안 도입을 논의하던 2018년 2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교통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에서 국토부 관계자가 사용한 표현이었다.

정책 효과, 모르나 모른 체하나

그런데 국토부는 왜 입장을 바꾼 걸까. 국토부와 국민의힘 주장대로 안전운임제를 3년간 시행해 본 뒤 도로 안전 개선 효과를 명확히 확인하지 못해서일까. 그럼 3년 일몰제로 시행한다면 검증할 수 있을까.

익명을 요구한 복수의 물류업계 연구자들은 3년이라는 기간은 정책 효과를 검증하기에는 지나치게 짧다는 의견을 내놨다. 화물연대본부 역시 지적한 내용이다. 일몰이 되기 전 제도연장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시행 1~2년차에 정책효과를 분석해야 한다. 기간도 짧을뿐더러 정책효과를 증명할 만한 통계자료조차 확보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도로안전 효과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는 연구는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교통연구원이 2021년 12월 최종보고서로 제출한 ‘화물차 안전운임제 성과분석 및 활성화 방안 연구’다. 2020년부터 시행한 안전운임제 성과를 통계를 바탕으로 분석했다. 안전운임제는 화물운송 노동자에게 적정운임을 보장해 ‘3과’라고 부르는 ‘과속·과로·과적’을 낮추려는 목적으로 설계됐다. 화물차 사고는 대형 교통사고로 번질 위험이 크고 ‘3과’는 교통사고의 직접적 원인이므로 적정운임은 도로안전에도 기여한다는 취지다.

그런데 연구는 사업용 화물차나 차종별 교통사고 건수나 사고로 인한 사망자수 추이만을 보여줄 뿐, 안전운임제가 적용된 2개 품목 차량의 사고 추이는 검증하지 못했다. 경찰청·도로교통공단이 분석하는 교통사고 통계의 표본 범위가 넓어서다. 자료가 없어 안전운임제 시행 첫 해인 2020년 통계만 비교한 한계가 보였다. 연구를 맡은 연구위원들도 보고서를 통해 “본 연구는 제도 시행 전후 각 1년의 변화를 분석해 교통안전 개선 효과를 판단하기에는 기간적으로 한계가 있다”며 “정밀하게 분석하기 위해서는 추가 조사·분석 기간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국안전운임연구단장을 겸임하는 백두주 부산대 학술연구교수는 “안전운임 시행 효과는 비교적 장기간에 걸쳐 데이터를 축적하고 모니터링하며 검증하고 보완해 나가야 한다”며 “2~3년 내외의 화물차 사고건수와 사망자수로 전체적인 제도효과를 검증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본지는 국토부에 안전운임제 적용 품목만을 조사하는 방법이 가능한지 물었지만 회신받지 못했다. 백두주 교수는 “현재 국토부의 자동차등록현황과 경찰청사고통계만으로 안전운임 적용품목 대상 차량만을 정확히 추출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며 “사고통계를 해석할 때도 사고원인, 제도 준수 여부를 꼼꼼히 분석해야 통계수치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데 정부 발표는 이러한 과정이 모두 생략됐다”고 지적했다.

정부기관의 기존 통계를 활용하는 것이 어렵다면 정부가 운송사를 통해 화물노동자 정보를 수집해 분석하는 건 어떨까. 백 교수는 이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그는 “초기 용도별 등록내용과 달리 실제 화물운송시장에서는 폼목이 이동하는 사례가 빈번히 이뤄지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 버스준공영제로
노동조건 개선, 교통사고 감소

도로 위 운전자의 운임 인상을 포함한 근로조건 개선과 도로 안전의 연관성은 여러 연구로도 입증됐다. 호주가 안전운임제를 한 차례 폐지했다가 부활시킨 이유다. 먼 나라가 아닌 한국 도로에서도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서울시는 시 재정으로 버스회사 적자를 보전하는 준공영제 도입 이후 버스 교통사고가 지속적으로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버스노동자의 노동조건이 개선됐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중론이다. 지난해 서울시 발표에 따르면 시내버스 연간 교통사고는 2004년 1천749건으로 2007년까지 1천108건으로 감소 추세를 보이다 2020년에는 560건으로 떨어졌다. 서울시는 지난해 준공영제 개편안을 밝히면서 “민영제는 안전투자가 감소해 교통안전에 저해될 우려가 있다”며 “준공영제 도입 후 버스 교통사고가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 준공영제 도입 뒤 시민만족도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안기정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수익에 대한 압박이 있으면 운전자가 과속하거나 난폭운전할 수밖에 없다”며 “민간사업자는 인건비를 절감하려 노력하지만 준공영제는 시가 적자를 보전한다”고 설명했다. 안 연구위원은 “운수종사자 근로 여건과 도로안전이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은 상식”이라며 “버스전용차로를 만들어 교통 환경이 개선된 측면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사고 다발 요인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최승현 한국운수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도 “교통사고가 감소한 가장 큰 이유는 버스 운전기사의 근로여건이 상당히 개선됐기 때문”이라며 “지자체가 준공영제를 도입하면서 안전교육과 서비스·안전평가도 같이하기 때문에 그러한 효과가 나타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화물차 안전운임제에 적용할 수 있을까. 제도 시행 기간 근로조건이 개선됐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화물노동자 근로조건을 개선하면 교통사고가 줄고 도로안전이 개선된다’는 목표에서 교통사고 지표로만 정책효과를 평가했다. 화물노동자 처우를 개선하고 다단계 운송구조를 바꾸는 것은 도로안전 증진만큼이나 중요한 안전운임제의 목표였다. 백두주 교수는 “안전운임 시행 기간 의미 있는 효과들이 검증됐다”며 “과속·과로·과적 경험이 줄어 운전자의 위험행동이 감소했을 뿐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 노후차량 교체 비율 상승, 산업구조 개선, 사회적 갈등 비용 등의 효과가 검증됐다”고 강조했다. 안전운임제 정책 효과에 대한 논쟁은 사실을 다투는 영역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품목화·규격화 어렵다? 행정편의주의적 사고”

시멘트·철강을 제외한 품목은 규격화·품목화가 어렵다는 국토부의 주장에도 비판이 나온다. 규격화나 품목화가 어렵다는 것은 원가를 산정하기 위한 운송 형태나 운송 제품이 다양해 일률적인 운임 산정이 어렵다는 의미다. 그런데 화물연대본부가 우선적으로 확대를 주장한 철강·일반화물은 지난 2021년 안전운임제 시행 당시 유가를 연동해 원가를 산정한 경험이 있다. 한 대학에서는 일반형 화물자동차에 안전운임제를 적용하기 위해 원가 구성 요인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다. 브라질에서는 모든 화물품목을 대상으로 최저운임제를 시행한다. “중요한 것은 정책 의지”라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박연수 화물연대본부 정책기획실장은 “우리가 우선 확대를 주장한 철강과 일반화물은 중량짐(철강) 등 안전사고가 많이 나고 한 번 사고가 나면 큰 사고로 이어지는 품목”이라며 “일반화물은 노동환경이 제일 열악해 장시간 노동문제가 심각한 품목“이라고 지적했다. 박 실장은 ”품목 확대를 단순히 계량화 측면에서만 접근하는 것은 지나치게 행정편의적인 사고”라며 “안전운임제가 정말 필요하고, 산업의 문제를 바꿀 수 있는 지점부터 적용해 들어가야 한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원가를 고시했던 만큼 국토부 의지만 있다면 제도 확대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제도 안착을 위해 일몰 이전부터 상시화를 위한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화물노동자에게는 일몰제에 대한 불안감도 자리한다. 언제든 이전 운임, 이전의 노동조건으로 돌아갈 수 있어 제도가 있을 때 최대한 수입을 높게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안전을 위한 제도가 일몰제라는 족쇄로 위험한 조건이 된 셈이다.

이덕주 화물연대본부 충남지역본부 쟁의국장은 “최근 차량값과 물가가 상당히 오르면서 차량값을 갚기 위해서라도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진 이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면서 “나이가 들어 언제까지 운전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공포심과 3년 뒤에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크다”고 말했다.

백두주 교수는 “일몰이 예정돼 있고 적용품목이 전체 화물차의 5~6%에 불과하다는 한계로 제도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높은 것이 큰 문제”라며 “제도를 재시행함과 동시에 상시화와 품목 확대를 위한 준비에 착수해야 사회적 혼란이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