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적 지배력을 가진 원청 한화오션이 하청 노조와 교섭해야 한다고 본 판결

이진욱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2025-08-06     이진욱

1. 사건의 개요

▲ 이진욱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원고는 경남 거제시 소재 옥포조선소를 운영하는 국내 최대규모의 조선업체다. 원고의 조선업 제조공정은 원고가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 외에도 다수의 사내하청업체 근로자들을 통해서 이뤄지고 있다. 피고보조참가인 전국금속노동조합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이하 참가인 하청지회)에는 원고와 선박 제조공정과 관련한 도급계약을 체결한 사내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이 조합원으로 가입돼 있다.

참가인 하청지회는 2022년 4월 원고에게 성과급 지급, 학자금 지급, 노동조합 활동 보장, 노동안전, 취업방해 금지 5가지 의제에 대한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그러나 원고는 참가인 하청지회의 조합원과 사이에 근로계약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단체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하지 않았고 단체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참가인 하청지회는 원고가 단체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하지 않고 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은 것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81조1항3호 단체교섭 거부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경남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다. 경남지노위는 2022년 6월23일 원고가 단체교섭 요구에 응할 위치에 있지 않다면서 구제신청을 기각했다.

참가인 하청지회는 위 초심 판정에 불복해 재심을 신청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2022년 12월30일 원고는 사내하청업체를 매개로 사내하청업체 소속 근로자의 노동조건에 대해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범위에서 사내하청업체와 함께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가 있으므로, 원고가 참가인 하청 지회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은 것은 노조법 81조1항3호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나, 단체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하지 않은 행위는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원고는 사내하청업체 근로자와 사이에 근로계약관계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사내하청업체 근로자에 대한 관계에서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노조법 81조1항3호의 사용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면서, 재심판정 중 원고가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한 것이 부당노동행위라고 판단한 부분의 취소를 구했다. 피고보조참가인은 재심판정 중 원고가 이 사건 단체교섭 요구를 공고하지 않은 것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부분의 취소를 구했다. 본 사건에서는 양 당사자의 청구가 병합돼 판단됐다.

2. 대상 판결의 요지

가. 노조법 81조1항3호 사용자 판단

대상 판결은 노조법 81조1항3호의 사용자는 같은 항 4호의 사용자와 마찬가지로 근로계약의 상대방에 국한되지 않으며,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로서의 권한 및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근로조건 등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포함한다고 판단했다. 이와 같은 판단의 이유는 아래와 같다.

1) 기업이 직접적인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고도 노무를 제공받는 비정형적 고용구조의 확산, 대규모 자본과 노동력 투입이 요구되고 공정이 세부화된 산업 분야에서 다면적 노무제공관계의 문제점이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점 등 변화된 노무제공의 양상을 고려했다.

2) 헌법 33조1항이 보장하는 노동 3권 중 단체교섭권은 근로자가 자신의 근로조건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상대방과 교섭할 현실적 기회를 부여받을 때 실효성이 확보될 수 있다. 단체교섭권이 헌법에 규정된 근로자의 권리인 점을 고려할 때, 누가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인지는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근로자가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누구와 단체교섭을 할 수 있어야 하는지를 중심에 두고 판단해야 한다.

3) 국제노동기구(ILO)는 하청근로자가 자신의 근로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 원청에 대해 단체교섭권을 가진다고 인정하고 있고, 단체교섭의 상대방인 사용자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있어 형식적 근로계약관계의 유무에 국한되지 않고 기능적·실질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 하청근로자의 근로조건 결정에 실질적으로 관여하는 원청에게 단체교섭 상대방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하는 것은 ILO 기본협약 87호, 98호 비준 및 ILO의 해석과 권고를 통해 구체화된 국제노동기준의 준수라는 측면에서도 필요하다.

4) 원청이 하청근로자 노동조합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더라도 구제명령을 내릴 수 없게 되면, 비전형적 고용관계를 토대로 한 노사관계 질서 파괴 행위를 노조법 내 제도적 수단을 통해 신속하게 정상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노조법 81조1항은 각호의 부당노동행위별로 사용자 개념을 달리 정하고 있지 않으며,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사용자에 의한 부당노동행위의 인정에 있어서 지배개입과 단체교섭 거부를 달리 볼 특별한 이유가 없다.

5) 노조법 1조의 입법 목적, 노조법 2조2호의 ‘사용자’ 개념, 노조법 29조 및 30조의 사용자 및 사용자단체에 대한 단체교섭 권한 및 의무 부여 내용을 보면, 노조법은 ‘사용자’ 개념을 정의하면서 근로계약관계를 전제로 하고 있지 않다. 근로계약에 규정하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도 단체협약이 규범적 효력을 가질 수 있음을 명시한 노조법 33조, 단체협약의 지역적 구속력 제도를 정한 노조법 36조1항 등 노조법 규정 체계 및 내용을 종합해 살필 때에도, 노조법상 단체교섭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 개념이 근로계약관계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

6) 대법원 2018. 6. 15. 선고 2014두12598, 12604 판결은 노조법상 근로자는 노동 3권을 보장할 필요성이 있는지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하고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한정되지 않는다고 봤는데, 노조법상 근로자 개념 외연 확대로 현실의 다양한 노무제공형태를 포섭하게 된다면 그 상대방인 사용자 개념은 이에 상응해 확대돼야 한다.

7) 실질적 지배력을 기준으로 단체교섭 의무가 있는 사용자를 파악할 경우 원청은 교섭에 응할 의무만을 부담해 영업의 자유 침해의 정도는 최소한에 그치나, 하청근로자 입장에서는 원청과의 근로계약관계 부존재를 이유로 단체교섭의 기회 자체가 차단된다면 노동 3권을 사실상 박탈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면서, 원청의 영업의 자유의 본질적 부분이 침해된다는 원고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 원고의 사내하청업체 근로자에 대한 노조법상 단체교섭 의무

원고가 사내하청업체 근로자에 대해 노조법상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근로계약관계의 존부가 아닌 실질적 지배력을 기준으로 하여 판단하되, 그러한 판단에 있어 “교섭 요구 의제에 대해 원청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지위에 있는지, 사내하청업체 근로자들의 노무가 원청의 사업 수행에 필수적이고 사업체계에 편입돼 있는지, 사내하청업체 근로자들의 노동조건 등을 원청과의 단체교섭에 의해 집단적으로 결정할 필요성과 타당성이 있는지 여부 등”이 기준이 돼야 하고, “사내하청업체 근로자들의 업무가 이 사건 사업장에서 행해지는 원고 회사의 사업에서 차지하는 비중, 사내하청업체 근로자의 근무방식과 이에 대한 원고 회사의 직·간접적 관여 정도, 원고 회사와 사내하청업체의 관계, 사내하청업체의 경제적 독립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위와 같은 판단 기준에 따라 원고는 사내하청업체 근로자의 근로조건과 관련된 참가인 하청지회의 성과급 지급, 학자금 지급, 노동안전 의제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으나, 노동조합 활동 보장, 취업방해 의제에 대해서는 그러한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원고는 성과급 지급, 학자금 지급, 노동안전 의제에 대해 노조법상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다. 원고의 단체교섭 거부 및 교섭 요구 사실 미공고의 부당노동행위

원고는 사내하청업체 근로자들과 근로계약관계가 없는 점을 이유로 들어, 참가인 하청 지회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하고 단체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하지 않았다. 대상 판결은 원고의 실질적 지배력이 인정되는 성과급 지급, 학자금 지급, 노동안전 의제에 대해 노조법상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의 지위에 있는 원고가 단체교섭을 거부한 것은 정당한 이유가 없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더불어 근로계약관계의 부존재를 이유로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한 행위에 정당한 이유가 없어 부당노동행위로 인정된다면 같은 이유로 이뤄진 단체교섭 요구 미공고 역시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 보는 것이 논리적인 귀결이라면서, 원고가 성과급 지급, 학자금 지급, 노동안전 의제에 대해 참가인 하청지회의 단체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하지 않은 것 역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3. 대상 판결의 의의

가. 대법원 2010. 3. 25. 선고 2007두8881 판결(이하 현대중공업 대법원 판결)은 원청이 사내하청업체의 사업폐지를 유도하는 등 하청 노동조합의 활동을 위축시키거나 침해하는 행위를 한 사안에서, 근로계약관계 없는 원청의 노조법 81조1항4호 부당노동행위 성립을 인정했다. 현대중공업 대법원 판결은 노조법상 사용자를 판단함에 있어 실질적 지배력설을 채택하며, 근로계약관계의 상대방이 아닌 자도 노조법상 사용자가 될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런데 현대중공업 대법원 판결은 노조법 81조1항4호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 성립 여부가 문제된 사안이라는 점에서, 위 판결의 노조법상 사용자 판단에 관한 법리가 노조법 81조1항3호 단체교섭 거부의 부당노동행위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일부 이견이 존재했다.

서울행정법원 2023. 1. 12. 선고 2021구합71748 판결 및 그 항소심 판결인 서울고등법원 2024. 1. 24. 선고 2023누34646 판결(이하 씨제이대한통운 판결)은 현대중공업 대법원 판결이 채택한 실질적 지배력설을 토대로 원청인 씨제이대한통운 주식회사가 하청근로자인 집배점 택배기사들에 대한 관계에서 노조법상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면서, 원청이 하청 노동조합과의 단체교섭을 거부한 것은 노조법 81조1항3호 단체교섭 거부의 부당노동행위라고 판시했다. 대상 판결 역시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에는 근로조건 등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포함된다면서, 실질적 지배력을 기준으로 해 근로계약관계가 없는 원청에게 노조법상 사용자의 지위를 인정했는데, 이는 실질적 지배력설에 따른 법원의 노조법상 사용자 판단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나. 대상 판결은 근로계약관계가 없는 경우에도 실질적 지배력을 기준으로 노조법 81조1항3호의 사용자를 판단해야 하는 이유를 상세하게 제시했다. 씨제이대한통운 판결이 설시한 헌법상 노동 3권 보장을 위한 노조법상 사용자에 대한 합헌적 해석의 필요성은 물론, 국회의 비준으로 효력을 발휘한 ILO 기본협약 내용, 노조법 조문과 체계의 정합성에 따른 검토, 노사관계를 신속하게 정상화하고자 하는 부당노동행위 제도의 목적을 비전형적 고용관계 속에서 실현할 필요성 등을 보충해 설시했다.

대상 판결은 재심판정이 창출한 불완전하고 의존적인 사용자 개념의 부당성을 밝힌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재판부는 “원고가 사내하청업체를 매개로 사내하청업체와 함께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만을 부담하고, 단체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할 의무는 없다고 본 재심 판정은 사실상 실질적 지배력설이 아니라 근로계약관계설을 취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므로 부당하다”고 판시하면서, 원청이 사내하청업체를 매개로 사내하청업체와 함께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만을 부담한다면, 실질적 지배력을 기준으로 노조법상 사용자를 판단하는 의미가 퇴색되고 노조법이 예정하지 않는 사용자 개념을 창출하게 되는 것으로 부당함을 지적했다.

다. 대상 판결은 사내하청업체 근로자가 원고 조선업 공정에서 차지하는 높은 비중, 조선소가 작동하는 과정에서 사내하청업체의 업무 역시 유기적으로 조직되고 통합된 일부로 기능하는 점, 원청과 전속적 거래관계에 있는 사내하청업체는 노무제공에 중점을 두고 있을 뿐 업무에 관한 장비와 시설도 보유하고 있지 않아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근로조건이 한정적인 점 등 사내하청업체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한 원고의 실질적 지배력을 긍정하는 요소들을 열거한 뒤, 참가인 하청지회의 각 교섭 의제별로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을 판단하고 있다.

이는 씨제이대한통운 판결의 판단 방식과 동일한 것으로, 법원이 노조법 81조1항3호의 적용이 문제되는 사건에서 각 교섭 의제별로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을 판단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중공업 대법원 판결을 시작으로 이어져 온 실질적 지배력을 기준으로 한 노조법상 사용자 판단이 판례 내지 입법을 통해 확립된다면, 향후에는 원청의 교섭의제별 실질적 지배력 유무에 대한 판단이 원·하청 노동관계에서 중요한 법률적 쟁점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