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영 국민건강보험공단고객센터지부장] “정규직화 원칙, 단 한 명도 비정규직으로 남기지 않겠다는 것”
“이 싸움은 반드시 끝을 봐야 할 싸움이에요.”
김금영(34·사진)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장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올해 안에 어떻게든 마무리 짓겠다는 각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부는 이 싸움을 5년째 해오고 있다. 지난달 15일부터는 순환파업을, 지난달 29일부터는 2023년 4번째 파업에 이어 5차 전면 파업에 나섰다. 용역업체에 고용돼 공단 상담업무를 수행하는 이들은 2021년 정부가 결정한 정규직 전환을 이행하라고 요구해왔다.
싸우는 상대는 때론 정부였고, 용역회사이기도, 원청인 공단이기도 했다. 공단 안팎에서 ‘공정성’을 이야기하며 상담노동자의 경력을 평가절하하는 이들과도 싸웠다. 어쩌면 진짜 상대는 기다림이나 두려움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지부는 ‘단 한 명도 포기하지 않겠다’ ‘누구도 비정규직으로 남겨두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여태껏 버텨왔다. 그게 이들이 생각하는 공정성이자 정규직화 원칙이었다.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1일 김 지부장과 서면·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금영 지부장은 “공단의 입맛에 따라 결정되는 채용은 공정도 정의도 아니다”며 “모든 상담노동자가 실제로 전환되는 것이 정규직 전환 정책의 취지를 실현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정원 불확실성, 고용보장 담보 안 돼”
노사 간 가장 큰 쟁점은 직제·정원·채용 전환 방식이다. 김 지부장은 “공단은 소속기관 정원을 1천580명이라고 하면서도 기획재정부 승인 여부에 따라 정원이 변동될 수 있다고 단서를 붙였다”며 “이런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한 고용안정은 담보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공단이 책임 있는 주체로 나서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김 지부장은 ‘책임’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지부가 지난 5년간 만난 누구도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공단의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을 추진했던 고용노동부, 공공기관 정원과 예산을 결정하는 기재부, 국민건강보험공단, 용역회사 모두 책임을 떠넘기기만 했다. 김 지부장은 “지난 5년간 무수한 약속을 반복했지만 약속을 지키려는 정부나 공단의 책임 있는 자세는 끝내 보지 못했다”며 “파업이라는 마지막 수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고 말했다.
지부는 2019년 12월 결성된 뒤 2021년 세 차례에 걸쳐 파업했다. 마침내 공단과 정부는 2021년 소속기관 방식으로 고객센터 노동자들을 정규직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소속기관은 공단과 법인이 같아 공단 이사회가 조직·예산·보수·주요 사업계획을 통제한다. 채용·인사·임금은 공단과 분리돼 독립적으로 운영하며, 공단 일산병원이 소속기관이다.
2022년부터는 채용 방식과 임금을 논의하는 노·사·전문가협의체가 시작했다. 노사는 2년 가까이 협의체를 운영했지만 채용 방식을 두고 이견이 컸다. 공단은 4년 넘게 일한 상담사 40%를 공개경쟁 채용하겠다는 안을 내놨고, 지부는 공단 안이 “정부 정규직 전환 정책 취지를 외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채용 전환 방식을 두고 엇갈리기를 반복했다.
AI 상담사, 구조조정 우려도
현재 휴직자를 포함한 정원은 1천682명. 지난해 12월 노사는 입사시기에 따라 일부 노동자를 전환채용하자는 데 합의했지만, 지부는 이들의 경력을 고려한 채용절차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규직 전환 정책의 핵심은 고용안정인데, 채용 전환 과정에서 탈락자를 발생시키는 것은 고용안정이라는 원칙을 훼손한다는 주장이다. 김금영 지부장은 “공단은 채용 절차에서 탈락한 경력자가 1년 안에 재시험을 보면 가점을 부여한다는 것은 상담노동자의 경력과 기여를 무시한 처사”라며 “그것이 정규직 전환의 핵심 취지를 실현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싸움이 길어지는 사이 구조조정 우려도 제기된 상태다. 지난 4월 공단은 인공지능(AI) 상담사 도입을 위한 사업의 입찰제안서를 공개했다. 사업목표 중 일부로 ‘상담사 전환’이 명시돼 인력 감축이 가시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입찰제안서 어디에도 기존 상담노동자의 고용안정을 보장하겠다는 문구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술 도입은 고용불안을 가중하고, 정규직 전환을 기다려온 노동자에게는 해고의 위협이 될 뿐이에요.”
긴 싸움, 지치거나 포기하는 법 없이 ‘모두의 고용 전환’을 요구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김 지부장은 “이 투쟁이 정규직 전환을 넘어서 국가의 책임 회피와 사회적 약속 파기를 바로잡는 싸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년을 맞아 떠난 동료들의 이야기도 전했다.
“퇴직자들은 소속기관에서 퇴직할 수 없어 아쉽다고 해요. 그러면서 꼭 이기라고도 하죠. 우리가 파업하거나 집회하면 도시락 싸들고 현장에 나타나 명예 조합원처럼 남아요. 떠난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 싸움에서 반드시 이겨야만 해요.”
지부는 21일 모든 조합원이 용산 대통령실에 모이는 집회를 연다. 김 지부장은 “우리의 요구는 2021년 합의한 정규직 전환 약속을 이행하라는 것”이라며 “정부가 올해 안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