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노위 출범을 향해 ⑥] 민주노총, 사회적 대화에서 최초로 밀려나다
1999년 이래 사회적 대화는 늘 ‘개문발차’ 상태였다. 사회적 대화의 문은 열려 있었지만 민주노총은 탑승을 거부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노사정대표자회의(6자 회의)를 통해 사회적 대화에 참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노총과 경총이 복수노조 허용, 노조 전임자임금 지급금지 3년 유예를 포함하는 ‘노사관계 선진화 로드맵’에 합의하면서 민주노총은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자진 철수한다. 민주노총이 퇴출 압력에 밀려 사회적 대화에서 철수한 적은 없었다.
노사정대표자회의도 ‘완전체’였는데…
2018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출범은 예외였다. 노사정대표자회의 체제를 경사노위 체제로 바꾸면서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에서 밀려난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지속해 사회적 대화를 이어 가려 했지만 경사노위 출범을 막지는 못했다. 민주노총 참가에 진력했던 문재인 정부가 ‘민주노총 없는 경사노위의 출범’을 택한 탓이었다.
경사노위가 출범하면 사회적 대화는 다시 민주노총이 없는 ‘반쪽짜리’로 전락할 게 뻔했다. 민주노총은 그동안 참여하던 의제별・업종별위원회와 특위에서 진행되던 제반 사회적 대화에서도 ‘퇴출’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양한 업종별위원회를 새로 설치해 사회적 대화를 중층적으로 구축함으로써 민주노총에 속한 산별노조·연맹의 참여를 확대하려던 계획도 무산이 불가피해 졌다. ‘비빌 언덕’이 사라지면서 사회적 대회에 대한 민주노총의 참여 가능성은 더욱 줄어들었다.
경사노위 출범은 민주노총을 사회적 대화에서 밀어낸 최초의 사건이었다. 민주노총이 참가한 가운데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사회적 대화의 궤도를 끌어올리고 있던 상황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사회적 대화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경사노위 출범은 정말로 불가피했을까.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임시기구이긴 했지만 사회적 대화를 하는 데 실질적인 걸림돌은 없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경총과 대한상의, 고용노동부와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등 핵심 당사자가 죄다 참가한, 그 자체로 ‘완전체’였다. 임시기구라지만 사실상 개정된 경제사회노동위원회법이 준용되고 있었다. 노사정위의 공적 예산과 인력이 동원됐고 노사정위원장은 사회적 대화의 공식적인 촉진자로 인정받고 있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라는 간판을 달지 않았고 공익위원과 계층위원을 선임하지 않았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였다.
노사정대표자회의가 경사노위로 바뀐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많지 않았다. 공익위원과 계층위원이 새롭게 위촉되겠지만 그들은 개인 차원일 뿐, 포괄적인 사회적 행위자(social actors)는 아니었다. 사회적 대화를 담당하는 의제별・업종별위원회 구성이나 의제, 논의시한에서 바뀔 것도 없었다. 협의 결과(가령 합의)의 효력이 달라질 이유도 없었다.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확인한 새로운 사회적 대화의 운영원칙, 예컨대 노사 중심성이나 협의의 원칙도 거듭 확인되고 있었다.
경사노위 출범이 가져올 가시적인 결과는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고 있는 민주노총을 사실상 등 떠밀어 내보내는 것이었다. 간판 바꾸자고 민주노총을 배제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민주노총이 참여하는 노사정대표자회의’와 ‘민주노총이 빠진 경사노위’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사회적 대화의 본모습에 가까운지는 내남없이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경사노위 출범은 그야말로 ‘자라나는 호박에 말뚝 박는 격’이었다.
‘민주노총 배제’ 주사위는 던져지고
노사정위로선 경사노위 조기 출범을 주장하는 한국노총에 선뜻 동조하기는 어려웠다. 경사노위 참여 여부를 논의하기로 한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가 무산됐지만 불과 석 달 후인 2019년 1월에는 정기대의원대회가 예정돼 있었다. 민주노총의 참여 결정에 도움이 된다면 석 달을 기다리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경사노위 조기 출범은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려는 민주노총 지도부의 열의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될 수 있었다.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민주노총이 경사노위 참가를 결정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다른 부정적인 변수가 발생해 상황이 뒤바뀔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경사노위 출범을 늦춰 민주노총의 참가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면 그 털끝 만한 가능성을 위해서라도 출범을 늦췄어야 했다. 노사정대표자회의 운영을 연장해 민주노총이 참가하는 사회적 대화가 궤도에 오르면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참여할 가능성도 높아질 것으로 봤다.
당시 민주노총은 누가 뭐래도 사회적 대화에 진심이었다. 의제별・업종별 사회적 대화에 적극 결합했을 뿐 아니라 신규 위원회 설치까지 잇달아 제안했다. 의제별 사회적 대화에 못지않게 기대를 모은 것은 업종별 사회적 대화였다. 업종별 대화는 업종별 의제를 다루는 만큼 조합원이 사회적 대화를 한 발짝 가깝게 체감할 수 있는 기회였다. 게다가 업종별 의제는 대부분 정부의 산업지원정책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노사합의 가능성이나 공동 노력 여지도 높았다. 사용자단체로서는 경총이나 상의가 아니라 주로 업종차원의 사업자협의회가 참여했다.
업종별 사회적 대화와 관련해 2018년 10월12일 4차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는 금융·해운·보건의료·공공기관 등 4개 업종별위원회를 2018년 10월부터 우선적으로 설치·운영하기로 했다. 노동계가 제안한 버스운수·자동차·조선·철강·민간 서비스(유통)·건설·전자·제조업·사회서비스(요양)·화물운송·공무원 등은 관련 노·사·정 간 합의를 바탕으로 순차적으로 설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사실상 주요 업종을 대부분 포괄하는 업종별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합의한 셈이었다. 업종별위원회가 발족되면 최소한 거기에 참여하는 민주노총 산별노조·연맹으로서는 최초로 사회적 대화를 경험하는 자리가 될 수 있었다. 또한 사회적 대화를 하는 마당에 경사노위 참가를 거부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게 당시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당시 경사노위 출범 여부는 노사정위의 손을 떠나 있었다. 2018년 10월23일 오후 4시10분, 한 줄의 문자가 도착했다.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이었다. “V께서 (경사노위 출범일자를) 11월22일로 하고 첫 회의에 참석하시겠답니다.” 민주노총의 임시대의원대회가 무산되면서 경사노위를 띄워야 한다는 귀띔은 있었지만 이제는 ‘V’의 지시라며 날짜까지 못 박았다.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의 형식적인 논의조차 건너뛰었다.
상황은 급변했다. 민주노총 간부들이 방문한 자리에서 당장 경사노위를 띄우지는 않겠다는 상임위원의 약속은 빈말이 됐다. 노사대표자회의에서 거듭 확인했던 노사중심성의 원칙은 물론이거니와 대통령 자문기구인 경사노위의 독립성도 그 지점에서 멈췄다. 정부는 지원을 하되 간섭을 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팔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은 허무개그 같은 소리였다.
경사노위 출범을 둘러싼 정치적 동학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상임위원이었던 나로서는 솔직히 알지 못한다. 당시 한국노총이 적극적으로 경사노위의 출범을 요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출범이 결정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문재인 정부는 사회적 대화에 대한 민주노총의 공식적인 참여를 사회적 대화의 화룡점정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렇다면 민주노총 없는 경사노위를 띄운 배경에는 다른 주체들의 움직임이나 정치적 고려가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에 불참한 것이 아니라 등 떠밀려 내밀렸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석 달 뒤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에서는 경사노위 참여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 “그때 민주노총을 빼고 경사노위를 띄운 게 정기대의원대회의 결정에 나쁜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 죽은 자식 나이 세듯 돌아볼 뿐이다. 문재인 정부의 사회적 대화는 경사노위 출범으로 정점에 도달한다. 그러나 바로 그 정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사회적 대화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전 경사노위 상임위원 (tjpark0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