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돌보는 귀한 노동, 가사노동자 감정노동 보호를 위해
이철(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연구위원)
이 글은 『감정노동 고위험직종에 대한 관계부처의 보호방안 연구』(산업안전보건연구원, 2024)를 바탕으로 작성했다.<편집자>
가사근로자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가사근로자법) 제정에 따라 가사서비스를 △가정 내에서 이뤄지는 세탁, 청소, 주방일 △가구 구성원의 보호와 양육 등 가정생활의 유지와 관리에 필요한 업무로 정의내리고 있다. 가사서비스는 일반적으로 사적 공간에서 이뤄지는 활동으로 인식되다 보니 공식적인 통계로 그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다. 가사근로자법이 제정된 배경으로는 국제노동기구(ILO)가 2011년 6월 가사노동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협약(제189호)을 채택하면서 한국에서도 입법화를 위한 활동이 추진된 결과로 법이 제정됐다. 가사근로자법의 주요 내용은 첫째, 제공기관 인증제도 운영이고 둘째, 가사근로자의 법적 보호이며 셋째, 표준화된 가사서비스 이용계약 마련 등이다. 한편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가사노동자 처우개선을 위한 조례를 제정하기도 했다.
이처럼 가사서비스와 가사노동에 대한 제도화가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가사노동시장의 상당 부분은 비공식 영역에 머물러 있고, 가사노동자 대부분은 중고령자 여성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로 인해 가사노동이 저평가돼 노동강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저임금의 문제와 건강권 보장 문제가 노동환경 개선에 있어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특히 가사노동자의 노동은 노동강도가 높은 육체노동뿐만 아니라 고객과의 관계 등에서 정신적인 직무스트레스와 감정노동을 수반하고 있으며, 괴롭힘 문제 등의 인권침해에 노출돼있는 상황이기에 예방부터 사후 조치까지 포괄하는 지원책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가사노동자의 감정노동 특성
가사노동자는 감정노동의 최전선에 있다. 가사노동자에게는 공손한 행동, 편안한 미소, 경청, 따듯하고 친절한 말투, 내 반응이 상대방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기, 불편한 상황에서도 참고 즐거운 척하기 등이 요구된다. 가사돌봄 영역에서의 감정노동은 마음의 관리뿐만 아니라 생활의 관리를 요구하고 있다. 가사서비스는 육체노동과 함께 주로 돌봄노동과 관련된 감정적인 일과 직무스트레스 등의 감정노동, 그림자 노동을 수반한다.
여러 실태조사 결과에서 가사노동자는 이미 높은 수준의 감정노동을 수행하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저임금과 고용불안 문제를 안고 있다. 대인관계가 중요한 가사노동 특성상 노동자는 수준 높은 감정노동을 수행하고 있고, 우울의 정도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난다. 가사노동자가 정신적 위험에 노출돼 있음에도 여전히 가사노동은 ‘하찮은 일’이나 ‘더러운 일’로 여겨져서 감정노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와 같은 가사노동자의 감정노동 특성은 일하는 방식과 관련된다. 대표적인 나 홀로 사적인 공간에서 이뤄지는 1인 고립노동이고, 업무 내용의 포괄성, 제공 방식의 다양성, 고용관계의 혼종성 등으로 잘 드러나지 않고 실태를 파악하기 어려운 측면이 존재한다. 서비스업인 데다가 업무시간이 한 가정에서 2시간 이상 일하고 노동환경도 다양하며 고객(이용자)의 태도가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가사노동자는 짧은 시간 내에 집안일을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시간적 압박 속에서 휴게시간도, 점심시간도 보장되지 않은 채 일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플랫폼 가사노동이 확대되면서 가사노동자는 모일 기회도 줄어들고 모일 공간도 부족해 고립도 심화되고 있다. 고객의 평가가 자신의 업무 배정에 영향을 끼치지만, 여기에 항의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가사노동자는 소비자의 모욕적 발언, 소비자에게 느끼는 감정적 스트레스, 평점 압박으로 느끼는 감정적 스트레스에 대한 대처 능력이 낮은 수준이고, 대처 방식도 회사 담당자에게 연락하거나 평점을 잘 받기 위해 다시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가사노동자의 감정노동과 직무스트레스는 업무의 표준화가 이뤄지지 않았고 ‘직업으로서 가사노동’에 대한 이용자들의 공감대와 합의가 부족해서 나타나는 가사서비스 특유의 문제라 할 수 있다.
감정노동 보호 내용과 적용대상의 불명확성
가사노동자의 산업안전보건과 관련해서 가사근로자법상 가사근로자의 안전 사항을 가사서비스 이용계약서에 서면으로 포함하도록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사항을 포함해야 하는지에 대한 불명확함이 크다. 또한, 가사노동자 감정노동에 영향을 미치는 고객에 의한 괴롭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도 기존 법체계는 제약이 있다. 가사노동자에 대한 갑질과 괴롭힘은 주로 고객과의 관계에서 발생하고 있어 직장내 괴롭힘 등의 법을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가사노동자에 대한 사회 인식 부족 등이 서비스 제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갑질’ 내지 ‘괴롭힘’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이로 인해 가사노동자는 정신적으로 힘들어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가사노동자와 가사서비스 제공기관 등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가사근로자법은 가사서비스 특성을 고려해 근로시간과 휴게시간 등은 근로기준법이 아닌 가사근로자법을 따르도록 명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휴게시간 등이 제대로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가사노동자 감정노동 보호를 위한 개선방향
가사노동자 감정노동 보호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법·제도 사각지대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 가사근로자법상 가사노동자는 산업안전법의 적용을 받아 감정노동을 보호받을 수 있지만, 가사근로자법상 가사근로자가 아닌 대부분의 가사노동자(직업안정법 또는 가사노동서비스 관련 온라인 플랫폼 등 통한 직업소개 등에 따라 가사노동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수입을 얻는 사람 등)는 가사근로자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있어 산업안전보건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에 법 적용대상이 확대돼야 한다. 휴게시간과 직장내 괴롭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개선도 필요하다.
나아가 가사노동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을 개선할 필요도 있다. 가사노동자의 감정노동은 여전히 가사노동자를 ‘직업인으로서 노동자’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더뎌서 일어나는 문제라는 점에서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사용자)과 이용자의 책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감정노동은 자신의 본래 감정을 억제하고 상품화하여 마음을 관리하는 노동이다. 이 노동으로 인해 사용자는 수익을 얻게 되고 그에 따른 책임을 부담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가사노동자의 업무수행 과정에서 폭언 등을 행사한 행위자에 대해 사용자 또는 제공기관(사용자)이 직접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할 것이며, 이용자에 대해서도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가사서비스 이용 고객 응대 매뉴얼 마련, 상담과 교육 등 다양한 감정노동자 지원 프로그램 운영·연계 등과 같은 가사노동자 지원을 위한 가사서비스 종합지원센터의 역할을 확대하고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