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일했는데] ‘삼성전자 반도체노동자’ 희귀종양 산재 불승인
삼성전자 기흥공장 거대세포종 발병 … 공단 “업무와 상당인과관계 불인정”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21년 근무한 뒤 희귀종양이 발병한 여성노동자의 산업재해 요양급여 신청을 근로복지공단이 불승인했다. 윤석열 정부 이후 업무상질병 승인율이 지속해서 하락한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30일 반올림에 따르면 공단은 지난 24일 거대세포종 발병자인 여성노동자 정향숙씨가 지난해 9월 신청한 요양급여를 재심 끝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불승인했다.
공단은 최초 심의에서 가부 동수로 판정했고 뒤이어 재심의 한 끝에 △정씨가 전리방사선에 노출됐다는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 점 △전리방사선이 거대세포종 발병에 영향을 미친다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점 △반도체공정이 거대세포종 발병에 영향을 미친다는 다른 유해요인 특정이 어려운 점 △정씨가 근무한 팹(클린룸) 특성상 유해물질 노출 수준이 낮다고 판단된 점을 고려해 “신청 상병과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다수의견을 따랐다.
대법원 판결 반영한 소수의견 외면
공단은 △정씨 근무 라인은 공장 설립 초기 라인으로 작업환경이 열악했을 것으로 추정된 점 △정씨가 방사선 계측설비를 사용했다고 진술한 점 △같은 사업장에서 과거 거대세포종 진단 뒤 골육종 발병으로 사망한 사례가 있는 점을 고려해 거대세포종 발병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더라도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씨는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는 “사람을 위해야 할 제도가 과학적 인과관계만을 요구하며 피해자가 스스로 입증하라고 한다”며 “희귀질환일수록 원인을 밝히기 어려운데 그 책임을 오롯이 노동자에게 지우는 것이 정의로운 판단이냐”고 되물었다. 이어 “피해자가 병을 입증 못하면 산재가 아니고, 희귀질환은 늘 개인 탓이냐”며 “그간 노출된 환경, 실제 피해자 사례, 구조적 위험은 모두 무시돼도 좋냐”고 따졌다. 정씨는는 “100만명 중 1명꼴로 발병하는 거대세포종이 같은 공장에서 두 명 발병해 한 명은 이미 사망했다”며 “이렇게까지 힘들게 설명하고 증명해야 하는 구조가 서글프다”고 토로했다. 정씨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산재 카르텔’ 윤석열 발언 뒤
산재 승인율 50%대로 ‘뚝’
반올림도 납득하기 어려운 판단이라고 규탄했다. 반올림은 “첨단산업 희귀질환에 대해 대법원은 2017년 불확실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반도체·디스플레이 등에서 위험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면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고 상당인과관계는 의학적·자연과학적 증명이 아니라 근로자 취업 당시 건강상태와 작업장 유해요인, 근무기간에 따른 경험칙과 사회통념에 따라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고 강조했다.
반올림은 특히 윤석열 정부의 이른바 ‘산재 카르텔’ 지적 이후 산재 승인율이 눈에 띄게 감소한 대목을 지적했다. 윤 전 대통령이 2023년 11월 “산재 나이롱환자”를 운운하며 산재 카르텔을 척결해야 한다고 발표한 뒤 산재 승인율은 하락추세다. 2021년 63.12%, 2022년 62.66%로 횡보하던 산재 승인율은 산재 카르텔 언급이 있었던 2023년 57.89%로 눈에 띄게 하락했다. 지난해에는 58.1%였다.
반올림은 “50%대 인정률은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무리한 의학적 증거 중심의 판단을 한 결과”라며 “이번 불승인 판정도 마찬가지로, 피해자는 또다시 산재인정을 위해 시간과 비용 부담을 무릅쓰고 행정소송을 제기해야 한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