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투자 아낀 비용보다 사고발생시 대가 더 커야”
국무회의 ‘중대재해 근절방안’ 토론 생중계 … 징벌적 손배 등 경제적 제재 강조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는 역대 정부 최초의 국무회의 생중계라는 신기록을 선보였다. 1시간20분가량 ‘중대재해 반복 발생 근절대책’을 주제로 심층토론을 했는데, 이 대통령을 비롯해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과 관계부처 장·차관의 토론 내용 모두를 가감 없이 전 국민에게 생중계했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에서 “당초 국무회의 단계적 녹화와 부분 공개 의견도 있었지만 이 대통령이 중대재해 근절대책은 국민 모두에게 알려야 할 사안이라며 토론 과정을 여과 없이 생중계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라고 전했다.
이날 국무회의는 주무부처인 김영훈 노동부 장관에 이어 행정안전부, 법무부 등 관계부처 장·차관이 각자 준비한 중대재해 근절대책을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김영훈 장관 “사람은 비용이고 설비는 투자냐”
“솜방망이 처벌 그만, 중대재해처벌법 실효성 강화”
김영훈 장관은 “올해 1분기에만 산재 사고사망자가 137명으로 좀처럼 줄지 않았다”며 “유형이 떨어짐·부딪힘 등 후진국형이고, 기후위기에 따라 온열·질식사고가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산재 사고사망자가 줄지 않는 원인으로는 “사람과 안전을 비용으로 인식하는 관행이 만연하기 때문”이라고 지목하고 “왜 사람에 대한 지원은 비용이고, 설비에 대한 지원은 투자인가”라고 꼬집었다. 다음으로 “산재가 발생해도 기업의 실질 손실이 크지 않기 때문”이라며 “최고경영책임자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을 회피하려고 컨설팅에 의존하고, 수사·판결에 상당기간이 소요되며 솜방망이 처벌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중대재해처벌법 실효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원인은) 지시와 계통의 불확실한 경영방식에 있다”며 다단계 구조를 꼬집었다. 안전관리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자회사나 용역, 간접고용, 도급 등 위험업무를 외주화하는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향후 대책은 △사전예방을 위한 노동자 권리 확대 △원하청 지배구조 개선 △실질적 제재 강화로 요약된다. 김 장관은 “기업에 대한 책임의무를 강화하는 것과 함께 당사자인 노동자를 보호객체가 아닌 예방주체로 인식의 전환과 제도개선이 시급하다”며 “K-민주주의의 완성은 일터 민주주의에서 확보된다”고 밝혔다. 이어 “사망사고 발생시 형사처벌과 함께 징벌적 손해배상 등 경제적 제재, 공공사업 입찰 참여제한이나 영업제한 병행검토, 복잡한 지배구조·거버넌스에 대해 실질적 책임·권한 있는 자에게 책임을 묻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장관은 “무분별한 위험의 외주화를 제한하도록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겠다”며 “적격 수급인 선정기준을 강화해서 적격자 아닌 자에 수급하지 않게 하고, 공공부문부터 위험작업 재하도급 금지, 불가피할 경우 반드시 승인하도록 신설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싱가포르는 노동자 권리 보장과 실질적 책임자 처벌, 그리고 벌점을 많이 받으면 이주노동자 취업제한 등을 통해 안전한 나라가 되고 있다”면서 싱가포르 제도를 적극 참조해 제도개선에 반영하겠다는 뜻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근로감독관이 많이 있지만 집단적 노사관계 업무까지 한다”며 “노조 동향보고 등 불필요한 업무를 확 줄이고 산업안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일하는 방식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그는 “대통령께서 SPC에서 (근로감독관이) 특공대가 돼야 한다고 지시했다”며 “실무경력 퇴직자와 신규자를 2인1조로 ‘노동안전 투캅스’를 만들어서 페트롤카를 돌리고 불시점검을 하도록 하겠다”고 보고했다.
법무부 “중대재해 전담부서, 양형기준 강력 요청”
금융위 “중대재해 기업 ESG 평가 강화, 대출제한까지”
관계부처의 보고도 이어졌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실태파악을 해보니, 중재재해처벌법 재판 등 최근 30건 있고, 수사단계에서 검찰송치까지 418일, 검찰에서 기소까지 200일이 걸렸다”며 “일반인의 정서와 상당히 거리감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법 시행 초기라서 법원의 판례나 수사기법에서 미진한 점이 있다”며 “대검 전담부서에서 직접 수사지원을 한다”고 보고했다. 이어 “최종적으로는 법원의 엄정처벌이 필요하다”며 “하지만 법원이 양형기준이 없어 법원 양형위원회에 양형기준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최근 검찰이 아리셀 피고인에게 20년을 구형했다”며 “관련자들이 책임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도록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산재사망자가 제조업 분야에서 30%를 차지하는데, 세부 업종을 보면 열처리 등 뿌리산업에서 제일 많이 나타난다”며 “석유화학, 자동차부품 포함 자동차, 기계산업 순”이라고 밝혔다. 이어 “산자부는 고위험 업종 중심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산재예방에 주력할 것”이라며 “AI 기반 제조안전 시스템을 올해부터 2029년까지 고위험 업무 포함 10개 업종에 대한 안전시스템 개발 중”이라고 소개했다.
이상경 국토교통부 1차관은 현재 국회에서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건설안전특벌법 제정안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고했다. 해당 법안은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발주자, 시공자 등 상대적으로 권한이 큰 주체가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 차관은 “원청인 시공사가 안전규정을 강화하도록 하고 위반시 책임을 묻는 식으로 할 것”이라며 “건설산업의 후진성에서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중대재해 예방에서 경제적 불이익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며 “금융시장에서 불이익을 높이는 방향으로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ESG 평가에서 중대재해시 감점을 주고 평가등급이 떨어져 기관투자자가 참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강화하고, 이런 기업들에 대한 대출 제한까지 가능하도록 하며, 안전투자를 잘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정책금융기관이 낮은 금리와 보증료를 제공하겠다고 제시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원사업자가 부담해야 할 산재예방 비용을 수급사에 전가하는 부당특약을 금지하고 있다”며 “이를 어길시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사고가 빈발해 원청이 비용을 전가하는지 점검 필요성이 커져서 건설업종을 중심으로 7~9월 집중조사를 하고 있다”며 “법 위반시 엄정제재하겠다”고 말했다.
“경찰과 검찰 등 중대재해 전담부서 연구하라”
이재명 대통령은 김영훈 노동부 장관 보고 뒤 “산안투자 비용보다 나중에 지출한 대가가 훨씬 크다면 이러지 않을 텐데 제재나 대가가 너무 약하다”며 “불시단속을 할 때 언제 저도 같이 갔으면 한다”고 밝혔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의 대검 전담부서가 있다는 보고를 받은 뒤 이 대통령은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을 향해 “경찰도 전담팀이 있는 게 어떠냐”며 “이 경찰 저 경찰, 이 검사 저 검사 (중대재해) 공부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리니 전문역량팀을 짜서 교육시키는 것을 연구하라”고 지시했고, 윤 장관은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 보고에 대해서는 “금융위 제안이 아주 재미있다”며 호평한 뒤 “산재 사망사고가 상습적으로 발생하면 (그 기업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공시해서 주가가 폭락하게 (만들 수도 있다)”라고 언급했다. 또 “대출 제한도 상장기업에는 타격이 될 것”이라며 “경제제재가 효과가 있을 듯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 미비 기업이 적발되면 과태료가 최소 5만원에서 최대 5천만원이라는 점을 거론한 뒤 “이보다 더 고액의 벌금이나 과징금을 적용해 해당 기업이 경제적으로 얻은 이익의 몇 배 손해를 감당하게 해야 한다”면서 법의 맹점을 지적하고 입법적 보완의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