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민주화’ 자본과 싸우는 것만큼 중요해

류하경 변호사(법률사무소 물결)

2025-07-21     류하경
▲ 류하경 변호사(법률사무소 물결)

노조는 사회를 정화하는 정수기 역할을 한다. 정수기는 그 어떤 물보다 청결해야 한다. 노조는 사용자를 견제하고 노동권을 확보하며 그 과정에서 투쟁하는데, 무기는 헌법과 법률과 정의와 공정이다. 따라서 노조는 어떤 조직보다 고도의 윤리성을 갖춰야 한다. 조직이 윤리성을 갖추려면 구성원들의 항시적인 감시와 자유로운 의견개진이 필요하다. ‘조합 내부의 언론 자유’가 최대한 보장돼야 하는 이유다. 다시 말해 ‘노조의 민주화’는 자본과 싸우는 것만큼 중요하다. 패권주의(힘의 논리), 진영론, 물타기 내로남불 같은 정치권 구태는 노조에 조금도 자리 잡을 틈이 없어야 한다.

지난 10여년, 삼성의 노조파괴 전략이 마침내 증거로 드러나 책임자들이 부당노동행위 죄로 형사처벌을 받고 금속노조 삼성지회·삼성전자서비스지회 등의 투쟁이 승리로 이어지면서 이재용 회장은 80년 무노조 경영 방침을 포기하고 대국민 사과까지 했다. 이 시기인 2019년 11월16일 삼성전자에도 노조가 만들어졌다. 전국삼성전자노조다. 지난해 7월에는 창사 이래 첫 파업을 벌이며 이를 기점으로 조합원수가 무려 3만 명대를 돌파하면서 올해 3월에는 3만6천명에 이르렀다. 전국 최대 규모의 노조가 삼성에서 등장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지난 4월24일 전국삼성전자노조의 한기박 기흥지부장, 우하경 대의원이 노조에서 제명 징계를 받았다. 이들은 노조 집행부가 4월 초, 사쪽(삼성전자)과 노조 전임자(상근자 집행부) 처우개선 문제를 따로 교섭하면서 조합원이나 대의원들에게 사전 보고하지 않았다는 점을 공개하고 비판했는데, 이는 “조합원 명예훼손 및 반조직행위”라는 것이 징계사유였다. 노조 내부는 격렬한 혼란에 휩싸였다. 집행부에 대한 조합원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왜 노조에 분란을 일으키느냐”며 피징계자들을 비난하는 의견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 5천~7천명가량이 탈회해 조합원수가 3만명 내외로 줄었다. 집행부에 대한 항의차원 또는 정치혐오와 비슷하게 노조 자체에 대한 회의감 등이 그 이유였다. 그리고 집행부는 “전임자 처우 개선 사안으로 혼란을 드린 점 사과한다”고 발표하고 지난 6월 사퇴했다. 그럼에도 이 사건 징계는 유지됐다.

피징계자 한기박·우하경은 5월 법원에 ‘징계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고, 법원은 7월3일 인용했다. 우하경에 대한 부분은 가처분 소송 진행 중에 노조가 스스로 징계를 취소해서 형식상 각하됐다. 전체적으로 징계가 부당하다고 한 법원의 결정문 내용이 좋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채무자(노조)는 채권자(피징계자)들을 비롯한 일부 조합원들이 채무자의 현 집행부에 대해 사측과의 이면합의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문제를 제기하자, 채권자들을 내부 문제 제기 주도 세력으로 봐 이 사건 징계처분을 내린 것으로 파악된다.” 2) “간담회 영상 촬영·유포 경위 및 간담회가 단순한 사적인 모임이 아니라 채무자 임원들이 참석한 공적인 회의 자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채권자 한기박의 간담회 촬영 및 게시, 유포 등의 행위가 조합이나 조합원의 명예를 훼손했다거나 반조직행위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3) “위 징계사유를 포함한 이 사건 징계사유를 모두 살펴보더라도, (중략) 조합의 내부 상황을 알리기 위한 공익적 목적에 따른 행위(교섭위원 허위사실 유포·업무방해의 건, 사내 익명게시판 여론선동·명예훼손·업무방해의 건)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 “ 조합 내부의 언론 자유의 보장은 조합활동의 공정성, 타당성과 바람직한 의사형성과정을 담보하는 것으로서 조합의 존립과 발전의 기초가 되는 것이므로, 조합원의 언론, 비판활동을 이유로 한 통제권의 행사는 내재적인 제약이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점”이라고 했다. 즉 조합 내부의 언론 자유는 필요하고 이 사건은 공익적 목적에 따른 행위이므로 징계할 수 없다는 법원의 명료한 결론이다. 피징계자들은 노조를 공격한 게 아니고 노조를 위하는 행위를 했다. 집행부 또는 그 임원은 노조 자체가 아니다. 누가 노조를 해했고 누가 노조 전체의 이익을 지키려했는지 평가해볼 부분이다.

이제 곧 전국삼성전자노조 새로운 집행부 선거가 진행된다고 한다. 조합원 4만명도 달성할 수 있는 전국 최대 규모이자, 동토 삼성에 어렵게 세운 전국삼성전자노조가 삼성 자본을 제대로 자정할 수 있는 민주적 조직이 되도록 안팎의 관심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