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정치세력화 유감

2025-07-11     이재 기자
▲ 이재 기자

기자가 쓰는 글은 현학성을 덜고 구체성을 더하는 게 미덕이라고 믿는다. 취재의 단면을 잘라 내 전달하는 ‘취재수첩’이라는 공간은 더욱 그렇다고 여겨 왔다. 그 믿음을 이번만 배신해 보려 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정당에 가입한 사람은 1천120만1천374명이다. 인구수 대비 당원수는 21.8%로, 시민 5명 중 1명은 당원이다. 더불어민주당원이 512만9천314명으로 가장 많았고 국민의힘 당원이 444만9천281명으로 뒤를 이었다. 2004년 195만5천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20년새 5배 이상 증가한 규모다. 결코 일반적인 수준은 아니다. 당장 정당정치가 가장 오랫동안 발달한 영국은 당원규모가 인구의 2% 남짓이다. 우리나라는 과잉·과대·과장된 숫자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으며 실제 이중당적과 매집된 당원 등 다양한 문제가 지적된다.

그럼에도 시민 5명 중 1명이 당원이라는 객관적 숫자는 명확한 메시지가 있다. 시민은 정당에 가입하고 선거에 참여하면서 사회를 바꾸고 권력을 교체하려 한다. 효능감도 느낀다. 실제로 사회가 바뀌는지, 권력이 교체됐는지를 따지는 것은 무력해 보인다.

전통적으로 사회변혁의 주체를 자처한 건 노동계다. 시민운동이 빛바랜 뒤 노조의 역할은 더욱 커졌다. 그러나 그 주체의 요체인 조합원은 양대 노총을 포함해 2023년 273만7천명에 불과하다. 이 숫자가 사회를 변혁할 수 있다면, 1천만명은 어떨까. 변혁이 아니라 개벽이 가능한 것은 아닐까. 현실은 그 모든 동력을 정권교체에 몰아넣고 있는 것에 불과하더라도, 당원들은 정권교체를 개벽으로 여기는 데도 주저함이 없어 보인다.

노동계와 노조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새 정부를 출범시킨 21대 대통령선거 이후 노동계와 노조는 사회변혁의 주체가 아니라 새 정부를 향해 정책을 요구하는 객체로 전락했다. 한국노총은 아스팔트를 깔았고 민주노총은 징검다리를 놓는 정도의 수준 차이만 있을 뿐이다. 게다가 민주노총은 다리를 놓을지 말지를 두고 여태 내홍을 겪고 있다. 유감스럽다.

12·3 내란사태 이후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를 묻고 사회개혁을 강조했지만 시민은 요구를 정당으로 들고 갔다. 노조에 가입원서를 넣진 않았다. 물론 일부 시민이 노조조끼를 입었지만 유의미한 규모라고 보긴 어렵다. 노조는 제 스스로를 사회변혁의 주체인 전위조직으로 설정한 것 같지만, 시민은 노조를 그렇게 보지 않는 것 같다. 우선 노조가 민주적으로 운영되는지부터 물어야 할 일이다. 현학적인 토론에 갇혀 대중조직이라는 본질을 잊은 것은 아닌지도 따져봐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