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불법 감추고 노동자를 숨막히게 만드는 손해배상
최근 세 건의 손해배상 소송과 관련한 소식을 들었다. 하나는 6월22일 현대자동차가 사내하청 파업 참여자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최근 숨진 노동자를 대신해 유가족이 소송을 잇도록 하는 소송수계신청을 한 사건이었다. 두 번째는 6월24일 현대제철 사측이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와 노동자에게 청구한 20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인천지법이 노동자들에게 5억9천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사건이다. 세 번째는 7월3일 대법원이 비정규직 파업에 연대한 활동가 등 4명에게 현대자동차가 제기한 2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 재상고심에 대해 심리도 하지 않고 기각했다는 소식이다. 확정 이자를 포함해 35억원의 손해배상을 4명이 물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 소식 하나하나에 분통이 터졌다.
이 사건은 법이 얼마나 불공평한지를 보여준다. 이 세 가지 소송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기업의 불법행위가 먼저 있었고 노동자들이 그에 맞서 파업을 했으며, 그것이 원인이 돼 기업이 노동자들에게 청구한 손해배상이라는 점이다. 기업의 불법행위란 바로 불법파견이다. 현대자동차와 현대제철은 당연히 정규직으로 고용했어야 할 노동자들을 도급인 것처럼 위장해 일을 시켜왔고 그 때문에 노동자들은 긴 세월 동안 차별과 중간착취, 위험 속에서 일을 해야 했다. 노동자들은 이런 불법행위의 피해자들이었다. 노동자들이 기업의 불법행위에 대해 판결을 받는 데 걸린 시간은 10년이 넘었다. 그런데 기업이 이런 불법파견을 저지르고 받은 처벌은 무엇이었나? 현대차가 법원에서 받은 판결은 벌금 3천만원이었다.
현대차와 현대제철은 자신들의 불법으로 인해 큰 이익을 누렸다. 그리고 현대차와 현대제철의 불법이 명백해진 이후에도 그들은 피해를 원상회복하지 않고 피해자들에게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현대자동차는 노동자들에게 ‘소송을 취하하겠다’는 각서를 받고 발탁채용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현대제철은 직접고용을 하지 않고 자회사를 만들어서 노동자들을 전환시키려고 했다. 이 모든 과정은 하청노동조합과 교섭도 하지 않은 채 기업 일방이 진행했다. 그리고 소송을 취하하지 않은 이들을 힘든 부서로 몰아넣는 등 괴롭히기를 지속했다. 노동자들이 이런 행태에 맞서 파업을 하자 현대차와 현대제철은 수천만원에서 200억원까지 거액의 손해배상을 파업 노동자들에게 청구했다. 노동자가 회사측의 요구를 수용하면 손해배상에서 빼주기도 했다.
이 사건은 손해배상이 어떤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손해배상은 기업의 실질적 손해를 배상받기 위해 청구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에게 이 정도의 손해배상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기업은 잘 알고 있다. 거통고 조선하청지회 노동자들이 470억원을 정말로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손해배상을 했겠는가? 기업이 손해배상을 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불법을 폭로하고 싸운 이들, 끝까지 자존심을 지키려고 한 하청노동자들을 압박하고 굴복시키려는 것이다. 기업들의 이런 행태에 정부도 제대로 제재를 가하지 않고 법원도 이 현실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이 손해가 정말로 발생한 것인지, 이 파업이 왜 벌어질 수밖에 없었는지, 정부와 법원은 충실히 살피지 않는다. 모두 기업 범죄의 공범들이다.
노조탄압의 수단으로 손배를 활용하는 기업들의 행태를 막기 위해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발의되고 국회를 통과했지만 두 번이나 거부권이 행사됐다. 경제계는 이 법안이 파업만능주의를 부추긴다고 떠든다. 그들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 불법을 저지르고도 피해자를 괴롭히고 그 피해자들의 저항을 손배로 묶어서 자신의 불법을 정당화한 이들의 목소리를 누가 자꾸 대변하고 있는가. 나는 이들의 행태에 치가 떨린다. 상상할 수도 없고, 평생 노동해도 만질 수 없는 그 손배의 금액이 얼마나 노동자를 비겁하게 만들고 숨막히게 만드는지, 얼마나 두렵게 만드는지 알고 있는가. 기업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자본의 힘을 다시 과신하게 될 것이다. 이들의 잔인하고 못된 행태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국회는 지금 당장 노조법 2.3조를 개정하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