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인구 유출과 괜찮은 일자리
황현일 창원대 교수(사회학)
이 글은 <지역사회연구> 제33권 제2호에 게재 예정인 “경남 지역의 ‘괜찮은 일자리’의 변화와 결정 요인”이라는 논문을 바탕으로 작성했다. <편집자>
괜찮은 일자리와 좋은 일자리
‘괜찮은 일자리(decent work)’라는 용어는 국제노동기구(ILO)가 제시한 것으로, 적정한 노동조건과 인권이 보장되는 일자리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한 사회가 주목해야 할 일자리는 양보다는 질이라는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아무리 일자리가 많더라도 그것이 열악한 노동조건과 저임금 중심이라면 그 사회의 일자리 환경은 좋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영어에서 ‘decent’는 ‘good’보다는 하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ILO는 자신들이 지향하는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good job)’보다는 ‘괜찮은 일자리’(decent work)로 제시한 건데, 왜 굳이 ‘decent’라는 말을 썼을까. 이와 관련해서 레아 보스코(Leah Vosko)는 ILO의 괜찮은 일자리 정책은 글로벌 자본과 회원 국가, 노동조합과 NGO 사이의 긴장과 타협의 산물이라고 해석한다. 그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과 글로벌 자본이 주도했던 ILO에서 노동조합·여성단체·NGO가 주변부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려고 꾸준히 시도한 결과 ILO에서 괜찮은 일자리 전략이 채택됐다고 봤다.
괜찮은 일자리가 국제적 담론으로 자리 잡은 이후에는 그 이전의 상황과는 별개로 담론의 자기 발전 과정을 거쳤다. 많은 국가와 노동단체들은 괜찮은 일자리를 바람직한 일자리로 생각하면서 이 개념을 정교화하고 확대해 왔다. ILO 역시 괜찮은 일자리의 개념은 계속 발전시켜 왔다. 최근에는 적정 고용기회, 노동시간, 고용안정성, 일·가정 양립, 사회보장, 사회적 대화 등의 요소를 포함시키면서 괜찮은 일자리가 갖춰야 할 요건들을 강화했다. 이 정도면 괜찮은 일자리는 좋은 일자리와 거의 유사한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일자리 찾아 떠나는 지역 청년
오늘날 한국 사회는 전반적인 인구 감소에 직면해 있다. 이는 인구수를 중심으로 마련됐던 각종 제도와 문화, 그리고 지역사회 자체의 변화나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지역의 인구 감소 문제는 자연적 인구 감소 이외에 사회적 인구 감소라는 차원이 더 해지고 있다. 즉 지역에서 태어났지만 지역에 정착하지 않고 떠나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이 중에서 청년들이 떠나는 것은 지역 차원에서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따라 수도권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청년 유출을 막는 것은 중요한 정책 과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청년 유출의 원인 가운데 일자리의 문제는 핵심적인 요소다. 그런데 일자리의 측면에서 청년 유출을 생각하면 의문점이 하나 생긴다. 그것은 현재 지역의 많은 기업들에서 일손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외국인 인력을 대폭 늘리기도 했다. 기업들은 인력 부족을 외치는데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지역을 떠난다는 역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것은 괜찮은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괜찮은 일자리가 없다는 것은 객관적으로는 좋은 임금과 노동조건의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주관적으로는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역 청년 여성의 괜찮은 일자리
지역의 청년 유출은 모든 성별에서 진행되고는 있지만 여성들에게서 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역에서 청년 여성들이 선호할 만한 괜찮은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필자는 최근 경남 지역의 괜찮은 일자리에 관한 연구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자 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괜찮은 일자리의 비중은 2013년 20.7%에서 지난해 30.7%로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경남지역은 같은 기간 18.7%에서 25.1%로 높아졌다. 이러한 비중 상승은 전체적으로는 괜찮은 일자리가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통계를 좀 더 들여다보면 청년 여성이 지역을 떠날 수밖에 없는 실마리들이 보인다. 첫째, 지역에서 청년 여성들의 괜찮은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적다. 예를 들어 경남지역의 여성 괜찮은 일자리는 지난 12년 동안 2배 정도 많아진 것으로 나타나지만 30대는 29.6%, 30대 이하는 4.9%만 증가했을 뿐이다. 중고령 여성의 일자리는 지표상 괜찮은 일자리일 수는 있으나, 실제로는 그렇게 평가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둘째, 청년 여성의 괜찮은 일자리는 주로 공공서비스 부문에 한정돼 있다. 즉, 일자리 다양성이 취약하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경남지역 여성들의 괜찮은 일자리의 52.7%는 공공서비스 부분이다. 이것은 청년 여성들이 공공서비스에 취업하지 못하면 다른 산업에서 괜찮은 일자리를 가지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괜찮은 일자리가 경남지역에 비해 수도권에 더 많다. 만약 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다른 지역에서 일자리를 구할 기회가 많다면 어떻게 할까. 당연히 이동을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해 수도권의 경우 괜찮은 일자리의 비중이 41.9%이고, 경남지역은 25.1%였다. 비중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기회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지역의 청년 여성들은 공공서비스 분야에서 기회를 찾다가 여의치 않으면 수도권으로의 이동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괜찮은 일자리 전략의 의의
괜찮은 일자리 전략은 지역사회에서 상호 연관된 두 가지 점에서 의의가 있다. 첫째, 괜찮은 일자리는 지역의 인구 유출을 억제하고 지역사회를 활성화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안정적이면서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는 일자리가 있는 곳에 사람들은 살고 싶을 것이다. 둘째, 괜찮은 일자리는 좋은 노동조건이 갖춰야 할 다양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지역사회가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가치들을 구체화할 수 있다.
괜찮은 일자리가 단지 노동자 개인에게만 이로운 것이 아니라, 기업과 지역사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우리는 괜찮은 일자리를 현실로 만드는 데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될 때 더 많은 청년들이 지역에서 자신의 삶의 미래를 기꺼이 설계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