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비·간병비 불안 사회, 확 바꿔야

배동산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사무국장)

2025-06-17     배동산
▲ 배동산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사무국장)

“실손보험 가입하셨나요?” 정형외과를 갈 때면 늘 듣는 질문이다. 이 질문의 답에 따라서 치료가 달라진다. 왜 그 흔한 보험 하나 안 들었나 생각하며 사회공공성 강화를 얘기했던 애꿎은 선배들을 원망하곤 한다. 지난해 쓰러진 아버님을 응급실로 모시기 위해 택시를 타고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가자고 했더니 그 와중에도 “그 병원 비싸다. 가까운 ○○병원(공공병원)으로 가자”라고 하신다. 당신 몸 걱정보다 자식들 병원비 걱정이 앞서는 마음에 짠하면서도 왠지 모를 화도 함께 올라왔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소비지출에서 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6.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다. OECD 평균(3.3%)의 두 배 정도다. 게다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만큼 사실 우리는 가난해지고 있다. 4천만이 넘는 실손보험 가입자 시대, 각종 암보험에 치과보험, 그리고 간병보험까지 그야말로 온 국민 민간건강보험의 시대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많은 돈을 의료비에 쓰고 있고 수도권엔 병원이 넘쳐나는데, 중증·응급·소아 분야에 의료자원은 부족하고 응급실 뺑뺑이는 계속된다. 수도권과 지방 간 인구 1천명당 의사수는 2배 이상의 차이가 날 정도로 지역 간 의료격차는 심각하다.

지난해 2월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발생한 의료공백 사태는 현재 진행형이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이미 지역에 살거나 돈이 없는 환자들은 이미 심각한 의료공백을 겪고 있었던 셈이다. 사실은 온 국민은 이미 알고 있었다. 누군가 아플 때 치료하고 돌봐 줄 공동체가 없다는 것을. 결국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각자도생의 불안함이 전 국민 민간보험 시대를 만들었다.

‘K-의료’ ‘K-건강보험’ 등을 자랑하는데 왜 이런가. OECD 최하위 수준인 공공병원 부족, 공적인 건강보험제도의 낮은 보장성과 함께 이윤만을 추구하는 병원자본과 정부 정책이 핵심 원인이다. 2022년 공공병원 비중은 한국 5.2%, OECD 평균 57%, 병상수 기준 한국 9.5%, OECD 평균 71.6%다. 한국의 국민건강보험 보장률은 2023년기준 64.9%로 OECD 평균(76.3%)과 비교해 10%포인트 이상 낮다. 낮은 보장률은 의료비 부담을 높여 가처분 소득을 감소시켜 개인을 더 가난하게 만든다. 의료비 부담으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건강이 악화하고, 소비침체와 생산력이 낮아지는 악순환 구조를 만든다.

의료는 상품이 아니어야 하지만, 불행하게도 다른 어떤 상품보다 돈벌이 수단이 되고 있다. 아플 때 명의로 소문난 의사를 찾아가고, 더 좋은 치료와 수술을 받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어려운 의료용어에 부족한 의료 지식과 정보로 환자와 가족은 가운입은 의사 앞에서 항상 약자일 수밖에 없다. 아플 때 제대로 치료받지 못할 것 같은 불안함에 적은 월급을 쪼개어 각종 보험에 가입하고, 병원들은 사람들의 불안함과 미안함을 이용해 더 좋은 치료라며 각종 비급여 치료와 과잉진료로 돈을 벌고 있다. 역대 정권들은 빠짐없이 의료산업 육성 정책을 말해 왔다. 정권이 교체되고 국민주권 시대를 열겠다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지만, 의료 상품화 정책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신의료기술 활성화라는 미명하에 안전도 효과도 검증되지 않은 의료기술을 시장에 먼저 공급할 수 있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통해 민간 중심의 비대면 진료플랫폼을 구축하려 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장성을 줄이는 의료급여 정률제 개악안도 입법예고했다.

모두가 초고령사회에서 의료와 돌봄의 중요성을 말한다. 더 늦기 전에 방향이 확 바뀌어야 한다. OECD 최하위 수준인 공공병원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수도권과 지역 간 의료격차 해소를 위해 공공의사와 지역의사를 양성하고 강제해야 한다.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비급여 진료를 통제하기 위해 혼합진료행위를 금지해야 한다. 소득이 없는 어린이·청소년·노인부터 무상의료를 실시하고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누구나 차별없이 치료받고 돌봄을 받을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치료비와 간병비 걱정으로 전 국민이 불안에 떨고 있는 세상에서 국민주권 시대는 결코 열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