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하면 됐다’는 격려 대신 날아든 손해배상 청구서

2025-06-12     이동철
▲ 이동철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실장

지난달 경기도의 어느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상담소를 찾아왔다. 그들이 일하는 회사 사장님은 벌점 명목으로 월급에서 수십만원을 공제했다. 뿐만 아니라 손해배상책임 각서도 강요했다. 제품 제조 과정에서 불량이 발생했는데 그 손해가 수천만원에 이르렀다고 주장하며 작업하던 노동자들이 연대해 수천만원의 손해액을 물어내라는 것이었다.

피해 노동자들은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 일을 했을 뿐 자신들이 어떤 이유로 벌점을 받았는지 알지 못한다고 억울해 했다. 실제 그들의 월급명세서에는 벌점이라는 명목으로 감액된 임금이 표시됐을 뿐 무슨 이유로 벌점에 해당하는 임금을 공제했는지 설명돼 있지 않았다.

사용자가 주장하는 수천만원의 손해액을 작업자 수로 나눠 매월 임금에서 공제할 테니 이에 동의하라는 취지의 각서를 체결케 하고, 벌점 명목으로 임금의 일부를 공제한 행위는 엄연히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근로기준법 20조는 손해배상을 예정하는 근로계약을 금지하고 있으며 같은법 43조는 임금의 전액 지급을 원칙으로 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한 사용자는 벌금 혹은 징역에 처한다.

그렇다면 사업주의 손해는 누가 배상해야 하는가. 노동자가 고의나 과실로 사용자에게 손해를 입혔다면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근로계약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노동자의 고의나 과실이 없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설사 불가피하게 불량이 발생해 손해가 났더라도 이는 사업주가 감수해야 할 위험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현장에서 노동상담을 하다 보면 최고가 되지 못하거나 최선을 다하지 못하면 죄인이 되는 우리 사회의 문화가 일터에서도 지배적 정서로 깔려 있음을 느낀다. 사장님들이 직원들에게 불만을 토로하며 가장 많이 하는 비유가 ‘밥값’도 못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임금체계에서는 노동자가 자기 노동력 상품을 사업주의 처분에 맡겨놓으면 될 뿐 특정한 성과를 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출근해 시간만 죽이며 맡겨진 일을 게을리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노동자의 노동력 상품을 활용해 수익을 창출해 내는 것은 사용자의 경영 능력 영역이다. 인사와 노무관리 능력이 대표적인데, 일차적으로는 업무수행에 적합한 노동자를 선발해 내는 것이고 그 이후에는 적절한 노무관리를 통해 사업장의 이윤을 창출해 내야 하는 것이다.

때로는 성과급과 같은 당근을 제시하고 때로는 업무매뉴얼을 지켜 제대로 일하지 않으면 징계와 같은 채찍을 버무려 노동자의 잠재된 역량을 끌어 올릴 때만이 기업의 수익은 높아질 것이다.

군대 대신 늦은 나이에 산업기능요원으로 공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30명 미만의 작은 제조업체였는데 사업주를 대신해 공장장이 현장에서 업무를 지휘하고 감독했다. 가스레인지에 올라가는 상판을 코팅하는 제조업체였는데, 완성품 라인을 따라 제품을 검사하는 것이 주 업무였다.

용접산업기사 자격을 취득하고 입사했지만, 용접과 전혀 관련이 없는 작업인지라 처음에는 실수가 잦았다. 일을 시작할 때 선임자로부터 업무 내용을 교육받았지만 정신 없이 돌아가는 라인 속도에 매일 같이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럴 때마다 공장장은 호통을 치기도 하고 불러서 찬찬히 설명하기도 했다. 내가 밥값을 할 때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만하면 됐다’. 하루 작업이 마감될 때 공장장이 해주는 그 말에 나는 안도했다. 앞 사례의 이주노동자들에겐 낯선 이국땅에서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 일했을 뿐인데 ‘그만하면 됐다’는 사장님의 격려 대신 수천만 원의 손해배상금 청구서가 날아 왔다. 불행한 일이다.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실장 (leeseyh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