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노동과 임금인상 물결

2025-06-12     안진이
▲ 안진이 the삶 대표

‘박수갈채를 넘어(Beyond Applause).’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23년 발표한 보고서의 제목이다. 누가 누구에게 박수갈채를 보냈으며, 그걸 왜 넘어서자는 걸까.

시작은 미국 뉴욕시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였던 2020년, 뉴욕 시민들은 매일 저녁 7시에 발코니로 나와서 일제히 박수를 쳤다. 팬데믹과 싸우는 의료진과 필수 노동자에게 감사를 표하는 행동이었다. 이 뜻깊은 의식은 곧 다른 나라로도 번져 나갔고, 감염병에 취약한 고령자를 보살피는 돌봄 노동자들의 저임금 실태가 재조명되기도 했다.

그러나 팬데믹이 종료된 후에도 돌봄 노동자들은 여전히 낮은 임금을 감내하며 힘겹게 일하고 있다. 특히 선진국들 중심으로 고령자 복지 수요가 급증하는데도 돌봄 분야는 인력난이 심각하다. OECD가 돌봄 노동에 관한 보고서를 내면서 제목을 ‘박수갈채를 넘어’라고 붙인 이유다. 박수도 좋지만 근무여건 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OECD는 당장 가시적인 정책 변화가 없다면 돌봄 노동자 부족이 사회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공적 지원을 늘리고 정부가 돌봄노동자 임금인상과 처우 개선에 직접 개입할 것을 권했다. 임금인상의 재원을 민간에서만 마련하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정부 책임을 강조한 것이다.

선도적인 사례로 호주가 있다. 호주는 2022년 11월부터 공정노동위원회에서 고령자 돌봄노동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절차에 착수했다. 2023년에는 직접 돌봄 종사자의 임금을 단번에 15% 인상했으며, 그 이후 임금인상 대상자를 요양 종사자와 간접 돌봄 노동자까지 넓혔다. 직접 돌봄 노동자의 경우 2025년 1월까지의 누적 임금 인상률이 28.5%에 달한다. 호주 정부는 단순히 임금만 인상한 게 아니다. 돌봄 노동의 특수성과 업무 난이도, 감정노동, 대인관계 기술 등 전통적으로 평가되지 않던 요소까지 반영해 임금 체계를 설계했다. 결과는 숫자로 나타났다. 2023년 18%였던 돌봄 노동자 이직률이 2025년에는 12%로 감소했다. 임금을 올렸더니 이직을 덜 하더라는, 그리 놀랍지 않은 결과다.

돌봄 인력난이 가장 심각한 나라 중 하나인 영국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지난해 7월, 영국 국왕의 연설인 ‘킹스 스피치’에 돌봄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이다. 전통적으로 킹스 스피치의 내용은 새로 출범하는 정부의 정책 방향과 일치한다. 실제 영국 정부는 올 4월부터 돌봄 노동자 최저임금을 시간당 12.21파운드로 6.7% 인상했다. 약 15만명의 돌봄 노동자에게 직접적인 혜택이 돌아간다.

영국의 돌봄 정책에서 가장 큰 변화는 해외 채용 의존도를 줄이고 국내 돌봄 인력의 유입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는 점이다. 이민 급증으로 사회적 압력이 높아진 데다 해외 인력에 의존하는 구조로는 사회복지 시스템의 안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영국은 돌봄 비자의 신규 발급을 중단하고 2028년까지 해외 인력 의존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갈 방침이다.

독일은 올해 7월부터 돌봄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시간당 20.50유로로 인상하고 자격증 유무에 따라 임금을 차등화한다. 주5일 근무자에게 연간 9일의 유급휴가를 추가로 지급하는 등 처우 개선도 병행한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경우 적극적인 재정 투입으로 돌봄 인력난에 대응하고 있다. 2022년부터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돌봄 노동자 임금을 인상했고, 이직률은 유의미하게 감소했다.

일본은 빠른 고령화로 일찍부터 돌봄 노동자 부족에 직면했다. 일본 정부는 2012년부터 돌봄 노동자 임금인상과 처우 개선을 과제로 설정하고 3년마다 임금 인상률을 결정하고 있다. 2022년에는 돌봄 노동자에게 추가 수당을 지급했고, 2024년에는 추경예산을 투입해 돌봄 노동자의 월급을 6천엔 인상했다. 노동자 복귀 지원이나 직업교육 같은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그러나 2023~2025년 돌봄 분야의 임금 인상률은 전산업 평균 임금 인상률에 미치지 못한다.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일본 정부의 태도는 너무 소극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중 어떤 내용도 국내에는 소개되지 않았다. OECD 보고서도, 호주의 선진적인 돌봄 노동 정책도, 영국의 킹스 스피치도. 소개된 적이 없으니 요점만 다시 한번 얘기하겠다. 돌봄 노동자 부족은 단순한 인력 공급 문제가 아니라 공공성 확충과 노동자 처우 개선으로 접근할 문제다.

안진이 the삶 대표 (livewithal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