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적 코포라티즘을 향해 ①] 신자유주의 ‘경쟁력 코포라티즘’으로 일관한 한국의 사회적 대화

2025-04-28     박태주
▲ 박태주 전 경사노위 상임위원

코포라티즘(이글에서는 사회적 대화와 동의어로 이해한다)은 흔히 노사정 사이의 정치적 협상과 교환을 통해 이해갈등을 해소하거나 정책을 결정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코포라티즘은 하나의 고정된 성격이 아니라 시대 흐름에 따라 변해 왔다. 특히 유럽에서 국가 코포라티즘으로 시작해 사회적 코포라티즘을 거쳐 경쟁력 코포라티즘으로 진화했다. 사회적 코포라티즘이 케인즈주의 복지국가에 조응한다면 경쟁력 코포라티즘은 신자유주의와 궁합을 맞췄다. 국가 코포라티즘은 파시즘과 짝을 이루는 사회적 대화의 형태다.

국가 코포라티즘을 거쳐 사회적 코포라티즘으로

제2차 대전 이전 파시스트 체제에서 나타난 국가 코포라티즘(state corporatism)은 권위주의에 바탕을 둔 갈등 억제 시스템이다. 정부는 노동조합과 사용자단체를 강제 동원해 국가정책 수행의 도구로 활용했다. 정부의 관료적 개입과 통제 속에서 노사단체의 자율성은 제한되고 계급갈등은 억압됐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정권이나 독일의 히틀러 정권은 물론이거니와 개발독재 시기에 노동통제가 일반적이었던 우리나라에서도 노사는 정부 정책의 들러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정부의 획일적인 노사 통제는 약화됐지만 사회적 대화에 대한 관료의 개입(관료적 코포라티즘)은 퇴화한 흔적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제2차 대전 이후의 사회적 대화는 달랐다. 사회적 행위자들은 자발적인 협력과 민주적인 합의를 통해 이해관계를 조정하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사회적 코포라티즘(societal corporatism) 혹은 신 코포라티즘(neo-corporatism)으로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대화가 등장했다.

사회적 코포라티즘은 실업과 물가상승, 불평등 등을 시장원리에 맡기기보다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관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러한 기조를 바탕으로 사회적 대화는 임금인상을 생산성 향상 이하로 제한해 인플레이션을 막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 보상으로 정부는 노동기본권 확대, 노동시간 단축, 조세 감면, 사회보장 확대 등을 제공한다. 동시에 정부는 재정지출을 늘리고 이를 통해 증대된 유효수효는 경기회복과 민간투자의 마중물이 돼 고용창출로 이어졌다. 한 마디로 케인즈의 유효수요정책에 바탕을 둔 사회적 대화였다.

신자유주의 시대, 경쟁력 코포라티즘의 대두

1970년대 오일쇼크를 맞으면서 케인즈주의는 신자유주의 물결에 밀린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려도 기업투자는 부진한 가운데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 병행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이다. 그 대안으로 시장원리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부상했다. 정부재정을 축소하고 규제를 완화하는 한편 공기업을 민영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케인즈주의 소득정책을 기반으로 형성된 사회적 코포라티즘은 경쟁력 코포라티즘(competitive corporatism)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대화로 대체된다.

신자유주의와 사회적 대화는 이빨이 어긋나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리기 힘든 조합이었다. 노동조합을 ‘내부의 적’으로 간주하고 노동시장에서 시장질서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사회적 대화와 공존하기는 어려웠다. 신자유주의 관점에서 볼 때 사회적 대화는 노동조합이 참가해 노동시장의 효율적인 운영을 방해하는 ‘제도’였다.

신자유주의가 대두되면서 코포라티즘의 종언이 논해졌던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사회적 코포라티즘 이론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슈미터(Philippe Schmitter, 1989)마저 “코포라티즘은 죽었다”고 선언할 정도였다. 영국의 보수당 정부는 신자유주의 개혁의 일환으로 사회적 대화기구인 전국경제사회위원회(National Economic Development Council, NEDC)를 폐지했다.

하지만 배우가 역할을 바꿔 다시 무대에 서듯 유럽대륙에서 코포라티즘은 자신의 성격을 바꿔 시지프스처럼 살아남는다(corporatist Sisyphus). 공급중심 코포라티즘(supply-side corporatism) 혹은 경쟁력 코포라티즘이라 불리는 형태로 말이다.

사회적 코포라티즘이 경쟁력 코포라티즘으로 이동하면서 나타나는 가장 큰 변화는 코포라티즘의 초점이 노동자의 소득(임금)에서 기업의 경쟁력으로 옮겨갔다는 점이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탈규제가 필요했다. 사회안전망과 복지 재정의 축소가 뒤따랐다. 경쟁력과 연계해 임금인상도 억제됐다.

결론적으로 신자유주의 시대의 사회적 대화라고 일컬어지는 경쟁력 코포라티즘에서 노사 사이의 정치적 교환은 사측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경쟁력 코포라티즘의 주요 의제가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탈규제, 임금인상 억제, 그리고 복지 지출 삭감 등을 통한 경쟁력 제고라는 점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그것은 노동조합의 양보에 기반을 둔 정치적 교환이었다.

경쟁력 코포라티즘으로 시작한 한국의 노사정위원회

문제는 우리나라가 1997년 외환위기때 사회적 대화를 시도하면서 참고로 삼았던 모델이 바로 이 경쟁력 코포라티즘이었다는 점이다. ‘경쟁력 제고를 위한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목표로, 노동의 양보를 강요하는 이 모델은 김대중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흐름이었다.

한국에서 사회적 대화가 노동의 불신을 낳고 걸핏하면 단절을 피하지 못했던 이유의 하나가 바로 한국의 사회적 대화는 경쟁력 코포라티즘이라는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사회적 대화는 형식적으로는 노사정의 협의를 통한 정책 결정의 틀을 갖췄지만 내용적으로는 경쟁력 코포라티즘의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 이는 사회적 코포라티즘이 지향했던 노동의 권리 확대나 사회적 통합이라는 목적보다는 노동의 양보를 통한 구조조정과 경쟁력 확보에 치중한 결과였다. 때로는 노동의 양보를 끌어내기 위해 국가 코포라티즘에서나 볼 법한 공권력이 동원되면서 사회적 대화에 대한 노동조합의 불신은 더욱 심화했다.

전 경사노위 상임위원 (tjpark0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