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모·자회사에서도 지속하는 원·하청 지배종속관계

차유미 한신대 연구교수

2025-04-25     차유미

이 글은 <산업노동연구> 30권3호(2024)의 “간접고용 해법으로서 공공기관 자회사 평가와 과제: 원·하청 지배종속 노동관계는 왜 모·자회사에서도 지속되는가?” 제하의 글을 요약한 것이다. <편집자>
 

▲ 차유미 한신대 연구교수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됐다.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영역에서의 재점검 및 새로운 도약이 필요한 때다. 이 글에서는 공공기관 자회사의 인사·예산·운영 분석을 통해 모·자회사 간 지배종속관계 형성 메커니즘 및 구조를 분석하고 대안을 논한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간접고용노동자를 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시도했지만, 지배종속적 관계 및 노사관계 형해화 등 원·하청 문제점들은 모·자회사에서도 계속 유지되거나 더 공고해졌다. 이 방식은 공공기업을 넘어 민간기업으로 계속 확산하고 있고, 더욱이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기업의 불법파견 대응책으로 오·남용돼 비정규직 차별 시정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비정규직은 2020년 850만명에서 2024년 926만명으로 윤석열 정부에서 다시 증가했다(김유선,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2024.8)”, 2024). 비정규직 비율 및 간접고용 비율은 기업규모가 클수록 높은데, 특히 2024년 3월 기준 종사자 1만명 이상 거대기업의 파견·용역비율은 전규모 평균(17.7%)의 두 배에 육박(33.3%)(김유선, “대기업 비정규직 규모: 고용형태 공시제 결과”, 2025)해 여러 우려를 낳는다.

자회사 인사권과 모회사의 지배

원·하청 지배종속 관계는 어떻게 공공기관 모·자관계에서도 지속되는가? 모회사는 인사, 예산, 운영 지배를 통해 자회사를 법적으로도, 실질적으로 지배할 수 있다. 인사권을 먼저 살펴보면 많은 공공기관은 정관 또는 출자회사 관리규정 등에 ‘공사의 임직원을 자회사 임직원 등으로 추천·파견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모회사는 자회사의 최대주주로서 주주총회를 지배할 수 있고 임원 임명권 행사를 통해 자회사의 인사권을 장악할 수 있다. 2020년 정부 조사에 따르면 자회사 대표이사 중 임용 전 모기관 임직원이 58.2%, 자회사 이사 중 모기관 겸직자의 비율은 75.4%에 이른다. 꼭 공사의 전현직 임직원이 아니더라도, 즉 공개채용을 통해 전문경영인이 선임되더라도 모회사는 사장평가를 통해 지배권을 획득할 수 있다. 자회사 사장은 경영협약 성과를 달성할 경우 몇천만원의 성과급을 받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해임되기 때문에 모기관이 정한 평가항목을 성실히 이행할 수밖에 없다. 일부 모회사는 자회사 예산을 많이 절감할수록, 인건비 인상율이 낮을수록, 쟁의행위가 없을수록 대표이사 평가점수를 높이는 방식으로 자회사 운영을 통제한다. 이는 자회사의 사업운영이 노동자들의 이익과 배치되고 모기관의 의중대로 운영될 수 있음을, 자회사의 독립성과 책임경영체제 확립을 목적으로 하는 경영협약이 자회사 통제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자회사 예산권과 모회사의 지배

모회사가 자회사에 지급하는 위수탁용역비는 예산항목 중 일반관리비에 포함되고, 일반관리비가 높을수록 공공기관은 기재부의 경영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는다. 공기업은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손쉽게 자회사 예산 삭감을 선택한다. 이 때문에 모회사는 최대한 위수탁용역비를 낮추고 예산사용을 통제한다. 어떤 모회사는 노사합의사항인 명절상여금과 복지포인트, 퇴직급여충당금조차 예산에 반영하지 않는다. 또 다른 기관은 자회사 이윤율을 낮추고, 행정사무직 인건비를 일반관리비에서 사용하며, 이윤 유보금 사용을 금지한다. 이러한 모기관의 예산통제는 자회사 노동자들의 처우개선 및 자회사의 독립성·지속가능성을 막는다.

자회사 사업운영권과 모회사의 지배

모회사는 주주권 행사를 통해 이사회를 장악한 뒤 모회사에 유리한 규정과 운영원칙을 만들어 자회사 사업을 지배할 수 있다. 많은 공공기관은 관리규정이나 운영예규 등을 통해 자회사 예산·사업에 관한 지배권을 합법적으로 획득한다. 대다수의 공공기관 자회사는 규정에 따라 주총 안건 및 이사회 안건·결의·승인사항, 사업계획 수립 및 예·결산, 경영계약 및 평가, 분기별 업무계획과 실적, 연간 감사계획 및 감사결과, 경영실적평가 결과 등을 모회사에 보고·사전 협의해야 한다. 일부 자회사는 독립회사의 증표라 할 수 있는 직원승진 및 채용, 조직·기구 정비, 정원조정까지 모회사와 사전 협의해야 한다. 이는 모회사가 자회사의 조직·승진·채용·인사·회계 등 운영 전반에 깊이 관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모·자회사 간 지배종속 관계가 자회사에 미치는 영향

이러한 구조 속에서 자회사가 모회사의 지배를 벗어나기란 요원하다. 이는 자회사의 지속가능성은 물론이고 자회사 노사관계를 형해화함으로써 갈등을 높인다. 상당수의 공공기관 자회사들은 설립 이후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예산 부족으로 임금·직무체계, 회계·출퇴근 전산시스템과 같은 기본 운영시스템도 정비하지 못했다. 부실 운영관리로 직무평가 및 임금에 대한 불공정성 논란이 커져 노노 갈등 및 조직분열도 높아졌다. 만성적 인력부족 및 노동강도 강화, 이직율 상승 문제를 겪고 있으며 이로 인해 대중기관 이용 시민안전도 위협받고 있다. 그렇지만 자회사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실질적 영향력을 끼치는 공사는 직접 사용자가 아니어서 자회사 노사협상은 형해화되고 갈등이 심화된다. 이 문제는 원·하청 관계와 정확히 일치한다. 공공기관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자회사 채용 방식이 간접고용 문제의 대안으로 물꼬가 트인 상황에서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공공기관 자회사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한계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그 위에서 문제 해소 가능성을 재타진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몇 가지를 제언한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가 공공기관 자회사 운영 방향성에 대한 원칙을 재확인하고 정부지침이 제대로 이행될 수 있도록 기반 조성 및 이행 감독·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공공기관 경영평가 재구성도 필요하다. 정부는 공공기관 경영평가 항목 중 자회사 운영과 관련한 모회사의 책임 배점 비중을 높이고 이를 실현하지 않는 기관에 페널티를 강화함으로써 모회사가 자회사 문제에 보다 적극적 의지를 갖고 해결할 수 있도록 공공기관 경영평가 항목을 재구성해야 한다. 자회사에 지급해야 할 최저 이윤율과 관리비를 정해 그 이상 의무적으로 지급하도록 최저 상한제 정책도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자회사가 안정적으로 지속운영하기 위해 위탁운영에 따른 수익과 성과를 모·자회사와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현재 모기관의 경영평가에 따른 성과급 지급은 모기관 정규직 및 무기계약직에 한정돼 있는데, 보안업무 강화 및 안전운행으로 대중시설 이용 시민들의 안전이 높아지고 공공성이 강화됐다면 성과공유제를 통해 자회사의 기여도를 반영·인정하는 것이 공정하다. 자회사의 이윤 유보금은 타 용도로 전용되지 않고 자회사 노동자들의 복리향상 및 자회사 운영발전 용도에 한정해 사용하도록 명확한 사용규정을 만들어 적용해야 한다. 긍극적으로 자회사 노동자들의 고용안정 및 처우개선을 위해서는 실질적 권한이 있는 모회사와의 단체교섭이 보장돼야 한다. 2024년 서울고법은 택배노조와 CJ대한통운이 직접적인 근로계약을 맺지 않았어도 원청기업이 하청 노동자에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한다면 하청노조와의 단체교섭에 응해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이를 공공기관 자회사 노사협상에도 준용하여 모회사가 실질적인 사용자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에 대한 모색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