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이란 무엇인가
박성우 직장갑질119온라인노조 위원장(공인노무사)
#장면 1. 산업혁명은 노동자계급(proletariat)과 그들의 이익집단인 노동조합(union)을 만들어냈다. 최초의 노동조합은 숙련공 중심의 직종별노조였다. 기획과 실행을 분리시킨 테일러주의, 컨베이어벨트로 상징되는 포드주의 같은 생산공정 혁신은 비숙련공을 양산했다. 이에 따라 직종별노조는 필연적으로 산업별노조로 진화했다.
산업별노조가 산업별 사용자단체와 산업별 단체교섭을 통해 산업별 단체협약을 체결한다. 전체 산업 노동자들의 공통된 권리를 담은 산업별 단체협약이 그 산업사회의 노동규범(노동법)이 된다. 유럽 사회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직종별노조건 산업별노조건 유럽의 노동조합은 태생부터 지금까지 당연히 회사 밖에 존재했다.
#장면 2. 1980년 마지막 날 전두환 정부는 극악한 노동법 개악을 단행했다. 노동조합법에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기업별노조 설립 강제주의가 명문화됐다. 노동쟁의조정법에는 쟁의행위를 사업장 내에서만 할 수 있도록 못 박았다. 한국의 노조는 회사 내에 갇혀버렸다.
1987년 7·8·9 노동자대투쟁은 그 해가 가기 전 노동조합법 개정도 이뤄내 기업별노조 설립 강제주의를 폐지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노동조합법은 기업별노조 체계를 전제로 하고 있다. 단위노조 내부 기구에 불과한 기업별지부도 설립신고서를 내면 노동조합법상 노조가 될 수 있다. 2010년 만들어진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제도로 인해 기업별 교섭이 원칙적인 교섭행태가 돼버렸다. 2016년 양승태 코트(court) 대법원은 기업별지부가 기업별노조로 조직형태 변경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함으로써 ‘무늬만 산별’이라는 조롱을 낳는 법 제도까지 승인했다.
#장면 3. 1995년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은 민주노총을 건설했다. 조직편제 논란 끝에 산업별 노조·연맹을 기본 구성인 가맹조직으로 하고 유럽과 같은 산업별노조 체계를 지향했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현재, 있지도 않은 ‘현대자동차노동조합’이 실제로는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인 것을 대다수는 여전히 모른다.
민주노총의 노조설립 상담 전화번호(1577-2260. 서울에서는 필자가 센터장으로 있는 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가 담당)로 전화하면, “직장 동료들 더 모아서 다시 오세요”라는 안내를 받기 일쑤다. 기업별지부를 만들고 기업별교섭권을 가지려면 어쩔 수가 없다. 그러니 소규모 사업체 노동자들은 노조설립은커녕 번쩍번쩍한 산업별노조에 가입하기조차 어렵다.
#장면 4. ICT(정보통신기술) 혁명은 전형적인 고용형태를 붕괴시키고 노동자계급의 모습도 바꾸고 있다. 다시 기획과 실행은 분리되고 실행 역시 쪼개진다. 직업을 이루던 ‘과업’이 핀셋으로 뽑혀 하나의 직업이 된다. 일은 A가 사장인 회사에서 하고 있는데 법상 내 사장은 얼굴도 모르는 B란다. 사용자가 누군지도 모르겠다. 전통적인 비정규직 유형으로는 담기 어려운 다양한 불안정노동자(precariat)가 증가하고 있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다.
그럼에도 배타적인 그들만의 성(castle)인 기업별노조(지부·지회·분회) 체계는 강고하다. 오늘도 임금인상 등 사내복지 향상에만 주목할 수밖에 없다. 조합원들의 이익이 최우선인 말 그대로 이익집단이므로.
#장면 5. 지난해 11월 직장갑질119 온라인노조(cafe.naver.com/119union)가 출범했다. 위 장면 1~4는 온라인노조를 만들게 된 우리의 문제의식이다. 인간다운 노동을 위한 양대 필수조건은 노동법과 노동조합이다. 그런데 오늘날 노동조합은 무엇이고 또 무엇이어야 하는가. 노동조합의 프리퀄이라 할 길드(guild)는 숙련공만의 조직이라는 배타성으로 인해 결국 소멸했다.
노동자는 과연 하나인가.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이길 희망하며, 경계를 지우고 간극을 메우며 나아가야 한다. 노동조합의 형태와 기능, 활동 전반에 대한 전면적인 재설계가 필요한 시대다. 척박한 상황과 어려운 조건이지만 상상력의 힘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