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자국우선주의와 초글로벌화 사이에서
고작 임기 한 달을 조금 넘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쉴 새 없이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젤렌스키와의 정상회담에서 경악할 수준으로 외교 관례를 벗어난 트럼프의 오만한 행동만이 아니다. 그는 현대 세계가 토대로 하는 기본 틀을 무너뜨리고 있다.
우선 트럼프는 그린란드와 파나마운하를 일방적으로 합병할 수 있다는 발언을 내놓아 관련 국가들은 물론 세계를 당황스럽게 했다. 심지어 그는 미국이 가자지구를 장악해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이주시킨 뒤 ‘중동의 리비에라’로 만들겠다고 주장해 팔레스타인을 분노하게 했다. 트럼프의 최근 외교 행보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 후 UN이라는 국제기구를 통해 최소한의 국가 주권 존중이라는 형식치레마저 무시하겠다는 발상이다.
외교만이 아니다. 국제무역 역시 1995년에 체결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는 물론 2차대전 이후 1947년 구축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체제까지 모두 무효화시키려 한다. 미국에 오는 모든 수입품에 매기는 보편관세, 특정 국가 수입품에 매기는 국가별 관세, 특정 수입품을 겨냥한 품목별 관세 등 트럼프가 최근 쏟아 내는 무차별적인 보호무역주의적 관세장벽은, 1930년 대공황을 악화시킨 ‘스무트-홀리 관세법’의 공포를 떠올리게 만든다.
사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질 때도 1930년대로 되돌아가는 걸 두려워해서 서둘러 G20 등을 구성하고 무차별한 보호무역 조치를 피하려는 국제적인 조율이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일방적 조치를 통해 거리낌 없이 2차대전 이전 질서로 뒤돌아갔다. 그러면 지금 트럼프의 무차별 관세정책을 거부하고 WTO 체제 준수를 요구해야 하나. 전 세계가 미국을 상대로 WTO에 제소해야 하나.
미국이 WTO 상소 기구에 자국 할당 판사를 임명하지 않아 이미 조정 기능이 정지된 상태라서 WTO 제소도 무의미하지만, 이 대목에서 중대한 딜레마가 있다. WTO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방식, 또는 ‘초글로벌화(hyper-globalization)’에 많은 문제가 있다고 그동안 전 세계의 개혁가들과 시민사회가 비판해 왔기 때문이다.
사실 2차 대전 이후 구축된 GATT 체제와 달리, 1990년대 이후의 WTO 체제는 통상적인 상품무역을 넘어 서비스와 지적재산권에 이르기까지 자유무역의 범위를 대거 확대했을 뿐 아니라, 특히 금융과 자본시장 자유화를 극단적인 수준까지 밀어붙였다. 그 결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선진국에서의 러스트벨트 확산, 개발도상국 다국적 기업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세계적인 환경피해, 법인세를 낮춰 기업을 유치하려는 바닥을 향한 경주 등 세계화의 부정적 경향들이 확대됐다. 트럼프에 대한 지지율이 높아진 배경에는 초글로벌화로 형성된 미국 러스트벨트 지역들의 노동자·서민들의 좌절과 분노가 있다.
물론 그렇다고 트럼프가 지목한 것처럼, 분노의 대상은 값싼 상품을 수출한 중국이나 멕시코 국경을 넘은 이민자들에게 향할 일은 아니다. 분노해야 할 대상은 미국의 국경 밖이 아니라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과 금융자본, 또는 실리콘밸리 빅테크들이다.
그러면 트럼프식의 자국우선주의도 아니고 초글로벌화도 아니라면 어떤 무역 질서를 회복해야 할까. 일차적으로는 WTO 체제 이전의 전후 무역 질서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2차 대전 이전의 극단적인 보호무역주의와 단절하고 자유로운 상품무역을 촉진하는 동시에, 과도한 수출이나 수입으로 인한 국제수지 불균형을 조정하려고 노력한 시기가 이때였다. 특히 엄격한 자본통제와 금융규제를 통해 글로벌경제의 불안정성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물론 2차 대전 이후 글로벌경제 역시 미국 중심의 달러 지배체제를 전제로 했고, 당시에는 환경규제도 없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탄소국경조정제도’ 등 이른바 녹색을 고려한 무역체제를 새롭게 고민해야 한다. 또한 2020년 코로나19 경험에서 확인한 것처럼, 글로벌 건강위험 등에 직면했을 때 백신 특허 유보 등을 적극적으로 제도화하는 등의 이슈도 있다. 하지만 대안이 트럼프식의 자국 우선주의일 수는 없고 기존의 WTO 역시 되돌아갈 목표가 아니다.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위원 (bkkim21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