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지키는 미조직 여성 ②] “광장과 분리된 일터, 광장 믿고 목소리 낼 것”

여성 배제된 직장 분위기에 무기력, 광장에서 힘받아 … “일상의 답답함 모으는 그릇이나 동력 있다면”

2025-02-18     임세웅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12·3 내란사태 이후 2030 여성이 주목을 받았다. 여성은 늘 광장과 거리에 있었는데, 알록달록한 응원봉을 흔드는 모습이 시각적으로 큰 인상을 남겼다. 광장에서 누구보다 크게 윤석열 정권 퇴진과 사회연대를 강조하는데도 일상의 공론장에서는 밀려난 그들. <매일노동뉴스>는 이들을 ‘미조직 여성노동자’로 규정하고 이들의 일터 경험을 토대로 광장에 참여하는 이유를 추적해 봤다. 2030 여성의 연대로 찢어진 민주주의에 새살을 돋게 할 수 있을까. <편집자>

이경민(31·가명)씨는 서울 지역 100명 미만 IT사업체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다. 요즘은 거의 사라졌다는 학생운동도 해 본 경험이 있는 이씨는, 그러나 회사에서는 입을 닫는다. 정치나 가치관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일터라는 세계는 일상과 유리됐다고, 이씨는 말했다. “‘호모 소셜(Homo social, 동성사회성)’이 공고해요.”

이씨의 직장 분위기는 다른 회사에 비하면 나쁘지 않은 편이라고, 이씨는 말한다. 주로 개인 업무를 하고, 협업을 하는 경우에도 분위기가 딱딱하지는 않다. 사담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편이다. IT업계에서 일하는 여성들 사이에서는 어디 업체 면접에서 기술 실무와 같은 질문이 남성에게만 집중됐다는 이야기들이 매번 떠돌지만, 이씨는 겪지 않았다.

분위기가 좋다고 해서 성평등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씨는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여성이 매번 배제된다고 느낀다. 남성끼리 담배를 피우는 이른바 ‘담배타임’ 자리에서 중요한 얘기를 하고, 그 정보는 여성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이씨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된다고 느낀다. “40대 이상 어르신들은 담배타임을 하면서, 그들끼리 의사결정을 해요. 여성들에게는 공유해주지 않아요. 남자 직원들이 더 편하니까 더 챙겨 주는 게 있다고 느끼죠.”

이씨 회사의 남녀 성비는 7대3 정도다. IT회사들의 성비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17년 ICT기업의 여성 일자리는 30만7천개(28.1%), 남성 일자리가 78만4천개(71.9%)였다.

공론장 없고 만들기도 어려운 일터
사적·폐쇄적 커뮤니티에서만 하소연

이씨 회사에서는 이런 문화가 문제로 여겨지지도 않고, 문제제기를 할 만한 공론장도 없다. 이씨는 IT업계에서 노조를 만드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다. 개인주의가 강해 잘 뭉치지 않고, 특히 개발자나 엔지니어 관련 직군은 프로젝트성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고용 안정성이 낮고 이직이 잦은 것도 IT업계 노조 결성이 어려운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여성들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이씨가 찾는 곳은 같은 여성들이 모인 온라인 대화방이다. 대학생활·어학연수를 함께했던 친구들 등 개인적으로 관계를 맺은 사람들끼리 모인 카카오톡 대화방이나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하소연을 쏟아낸다. 제각각 다른 환경에서 일하지만 문제의식은 엇비슷하다. 다만 친구들, 지인들과 이야기한다고 답답함이 완전히 해소되진 않는다. 사적 한탄에 그칠 뿐이다.

이씨는 한때 지역 기반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서울 은평구에 있는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다. 조합은 평등과 평화, 협동을 지향하는 여성주의자와 의료인, 은평구 주민과 지역사회가 함께 건강하고 행복한 마을공동체를 만들고자 창립했다. 일과 활동을 병행하기가 힘에 부쳐져 활동을 그만뒀다. “포괄임금제를 적용받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연장근로가 많고, 프로젝트 기간에는 당연히 야근을 해야 하고, 갑자기 프로그램 오류가 나면 일해야 해서 쉽지 않더라고요.” 할 수 있는게 없다고 느낀 이씨는 무기력해졌다.

무기력감 이겨냈던 건 ‘광장’ 때문

점차 무기력해지던 이씨에게 12·3 비상계엄 이후 주말마다 열리는 광장은 놓칠 수 없는 공론장이 됐다. 국회에서 탄핵안이 부결되던 때, 가결되던 때 여의도로 향했다. 지난달에도 일요일 광장집회에 두 번 갔다. 계엄령 선포를 두고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온라인 대화방에서 이야기하던 친구들과 광장으로 향했다.

“정말로, 많이 좋았어요.” 일단 신이 났다. 학생 때 겪었던 집회 분위기와는 달리 K팝을 틀고 응원봉을 흔들며, 축제처럼 즐기는 분위기가 좋았다. 이런 분위기에서 사람들은 좀 더 자신의 이야기를 가볍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나 친구들과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 이를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 바꾸고자 하는 의지를 확인한 점이 무엇보다 기뻤다.

“학생 때는 무거운 마음으로 갔는데, 지금은 약간 한풀이하는 느낌으로 나가죠. 현실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다는 무력감들이, 답답함이 내려가요. 일상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해 느껴지는 답답함을 분출할 때, 이를 모으는 어떤 그릇이나 동력이 있다면 어떨까요.”

▲ 본인 제공

집회 경험 이야기에 비우호적 시선 쏟아지지만
광장이 일터에서의 목소리 열어줄 수 있다고 생각

다만 이씨의 일터는 광장에서 빗겨나 있다. 이씨는 지난해 송년회 자리에서 광장과 일터가 다른 세계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씨는 팀장이 집회를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하기에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으며 동조했더니, 예상치 못한 시선을 받았다.

“40대 팀장님이 본인은 나이가 있고 가족이 있으니 나가기 힘들지만, 저랑 같이 자리하던 2030들에게는 나가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 수 있다고 말을 꺼내시더라고요. 저도 전에는 이야기를 안 하다가, 조심스럽게 집회에 다녀왔다고 했어요. 나가 보니 별거 아니더라, 다 같이 노래 부르고 노는 분위기였다고. 집회에 거부감이나 거리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어 이야기했는데…, 분위기가 우호적이지 않았어요. ‘뭐야’ 싶은 시선들.”

이씨는 시선들이 두렵다. 하지만 일상과 광장이 동떨어져 있다는 게 더 두렵다. 그래서 앞으로는 일부러라도 일터에서 광장의 이야기를 더 하려 한다. 믿는 것은 매주 열리는 광장이다. 광장이 계속 열리고, 사람들이, 관련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를 주목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일터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줄 수 있겠다고, 이씨는 생각한다. 물론 광장을 유지하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광장으로 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