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다시 시작한 죽음의 레이스
기호운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사무국장
“새해, 배송을 향한 당신의 바람! 이제 빨간 날도 오나? 오네! 언제든, 어디서든, 무엇이든 모두를 위한 매일매일 배송! 모두를 위한 단 하나의 배송! 오네”
이번 설 연휴 많이 들리던 광고다. 유튜브에서도, TV 지상파 방송에서도 나온다. ‘언제든, 어디서든, 무엇이든’이라는 문구만 보면 쿠팡이 떠오르지만 해당 광고주는 CJ대한통운이다. CJ대한통운도 쿠팡처럼 매일 배송, ‘주 7일 배송’을 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미 지난달 5일부터 공식 서비스되고 있다. 광고비를 쏟아부으면서 ‘주 7일 배송’을 설 기간에 맞추어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이유가 뭘까.
답을 찾으려면 2020년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당시 언론에서는 연일 택배노동자가 과로로 숨졌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배송업계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면에 택배노동자의 과중한 노동이 있었던 것이다. 배송업계는 이들을 착취하면서 업계 점유율을 유지하고 성장했다. 택배산업의 다단계 하청구조로 인해 택배 본사는 자신의 책임을 대리점에 지우면서 최소한의 역할조차 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결과로 택배노동자의 죽음이 이어졌던 것이다.
2021년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가 나온 배경이다. 합의의 핵심은 택배노동자가 장시간 노동, 야간노동, 분류작업 등으로 과로사하지 않도록 하는 기본적인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지켜질 것처럼 보였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택배노동자 개인에게 그 책임이 다시 넘겨졌다. 최근 CJ대한통운에서 주말 출근을 거부했다가 대리점으로부터 카톡으로 해고 통보를 받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로 인해 CJ대한통운은 주 5일 근무와 휴일 불참에 대한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는 약속을 주 7일 배송을 시작하자마자 사실상 어겼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본사는 여전히 그 책임을 대리점에 떠넘기고 있었다.
CJ대한통운의 무리한 행보 이면에는 쿠팡이 있다. 쿠팡은 2021년 사회적 합의에 참여하지 않았고, 그동안 택배업 점유율을 24.1%까지 끌어올렸다. 2023년 8월 기준이니 지금은 더 올랐을 가능성이 있다. 쿠팡이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동안 쿠팡 택배노동자들은 수없이 죽어 나갔다. 쿠팡이 로켓프레시 당일배송을 시작한 2020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언론으로 보도된 사망인원만 20명에 이른다. 쿠팡은 사회적 합의에 동참하지 않은 채 택배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을 유도했고, 따르지 않거나 불만을 제기하면 블랙리스트로 분류해 별도 관리까지 했다. 쿠팡은 이처럼 노동자의 목숨을 빌미로 업계 점유율을 끌어올렸다. 그럼에도 쿠팡 대표자들은 이러한 배송 시스템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근무 여건이 열악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쿠팡은 노동자를 장시간 노동, 새벽 노동으로 몰아 넣으면서 자랑스럽게 당일배송을 홍보하고 있다. 그리고 그 ‘빠름’이라는 마케팅에 우리 사회는 ‘중독’되고 있다. 너무나 당연하게 우리 사회에서는 배송은 빨라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 그러나 배송이 빠르면 빨라질수록 누군가는 그 배송을 빠르게 하기 위해 건강을 위협받으면서 일해야만 한다. 앞으로의 사회가 더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그리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누군가의 생명을 담보로 이익을 창출하는 행위는 끊어야 할 때다. 지금 혼란스러운 정치적 상황 속에서 다시금 기업들은 뒤에서 장시간 노동을 가능하게 하려고 애쓰고 있다. 쿠팡과 같은 기업이 더 이상 노동자의 목숨을 위협하지 않도록 하고, 탄핵 정국에서 보인 공동체 정신을 지속하기 위한 대화를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사무국장 (kihghdn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