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가
지난해 12월3일 한겨울밤의 난동을 보면서 미국 학자 2명이 공동으로 쓴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어크로스, 2024)라는 책을 펼쳤다. 트럼프 같은 민주주의 파괴자가 재집권하는 미국에 무슨 희망이 있겠냐고 반문하겠지만, 나는 미국 학자들의 연구 자세에 자주 감동한다.
‘나는 옳고, 너희는 틀렸다’는 식으로만 책을 쓰는 한국의 유명 학자들에게선 결코 볼 수 없는 집요한 사례분석은 미국 진보학자들의 큰 특징이다. 예일대 로스쿨의 대니얼 마코비츠 교수가 쓴 ‘엘리트 세습’(세종, 2020)은 질릴 만큼 수많은 통계와 사례를 동원해 오늘날 우리가 신줏단지처럼 받들어 모시는 ‘공정과 능력주의’가 얼마나 무모한 허상인지를 집요하게 파헤쳤다.
하버드대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 쓴 이 책도 질릴 만큼 수많은 나라의 민주주의 파괴의 역사를 소개한다.
책은 2021년 1월 대선 패배에 불복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 국회의사당 습격으로 시작한다. 두 학자는 1인당 GDP 6만3천달러의 미국이 최초로 평화로운 정권 이양에 실패하면서 ‘민주주의’가 급격히 후퇴했는데, 왜 미국 민주주의가 위험에 빠졌는지를 분석했다. 두 학자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극우 테러 뒤엔 ‘겉으로만 충직한 민주주의자’와 낡은 민주주의 체제가 있다고 말한다.
오랜 군정 끝에 1983년 치러진 아르헨티나 민주 선거에서 노동계층 정당 페론당이 패한 원인과 1801년 3월 선거로 야당에 평화롭게 권력을 넘겨준 역사상 최초의 나라 미국을 분석한다. 1차 세계대전 직전 독일 정치 엘리트 집단이 보여준 민주주의 파괴와 1930년대 이후 무려 12번의 군사 쿠데타를 겪은 태국의 민주주의 파괴도 등장한다.
두 저자는 세 가지 기본 원칙을 지켜야 민주주의 체제라고 말한다. 첫째 선거 결과에 승복하고, 둘째 권력 쟁취에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셋째 극단주의 세력과 동맹을 맺지 말아야 한다. 주류 정치인인 ‘겉으로만 충직한 민주주의자’들은 앞의 두 원칙은 지키는 듯 보이지만, 세 번째 극단주의 세력을 묵인하거나 은밀하게 지원하면서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여기에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낡은 정치 체제가 극단주의자와 ‘겉으로만 충직한 민주주의자’ 손에 들어갈 때 민주주의는 치명상을 입는다. 두 저자는 낡은 정치제도를 개혁하지 않으면 더 끔찍한 미래를 마주할 수 있음을 강하게 경고한다.
1934년 2월6일 청년애국단 폭동 때 프랑스 주요 보수 정당인 공화연맹당이 보여준 모습은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모습과 너무도 닮았다. 젊은 남성이 주축이 된 청년애국단은 애국자를 자처하며 무솔리니의 검은 셔츠단을 흉내 내며 국회의사당을 향해 폭동을 벌였다. 온건 보수주의자인 대통령과 사회당·공산당·급진당은 폭동을 비판했지만, 공화연맹당은 폭동을 조용히 지켜봤다. 공화연맹당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극단주의에 동조하면서 폭동에 힘을 실어줬다. 폭동 이후 구성된 의회조사위원회에서도 공화연맹당은 폭동을 일으킨 자들을 ‘숭고한 젊은이’라고 엄호했다. 이렇게 프랑스 민주주의는 힘을 잃었고 결국엔 비시 정권으로 이어졌다.
김재원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지난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석열 대통령과 극렬 지지자들의 행동을 ‘성전’ 또는 ‘십자군’에 비유했다가 논란이 되자 해당 문구를 삭제했다. 같은 당 윤상현 의원도 이와 비슷하다. 국민의힘 의원 상당수가 이렇다. 치고 빠지면서 계속 극단주의에 힘을 실어주는 ‘겉으로만 민주주의자’인 양 행동하는 정치인들 때문에 한국 민주주의는 한계에 달했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