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법 사이

우지연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2025-01-15     우지연
▲ 우지연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시인은 오로지 시만 생각하고/ 정치가는 오로지 정치만을 생각하고/ 경제인은 오로지 경제만을 생각하고/ 근로자는 오로지 노동만을 생각하고/ 법관은 오로지 법만을 생각하고/ 군인은 오로지 전쟁만을 생각하고/ 기사는 오로지 공장만을 생각하고/ 농민은 오로지 농사만을 생각하고/ 관리는 오로지 관청만을 생각하고/ 학자는 오로지 학문만을 생각한다면/ 이 세상이 낙원이 될 것 같지만/ 시와 정치의 사이/ 정치와 경제의 사이/ 경제와 노동의 사이/ 노동과 법의 사이/ 법과 전쟁의 사이/ 전쟁과 공장의 사이/ 공장과 농사의 사이/ 농사와 관청의 사이/ 관청과 학문의 사이를/ 생각하는 사람이 없으면/ 휴지와/ 권력과/ 돈과/ 착취와/ 형무소와/ 폐허와/ 공해와/ 농약과/ 억압과/ 통계가/ 남을 뿐이다(김광규, <생각의 사이>)

계엄의 풍경에서 시를 다시 읽어 본다. 오로지 정권의 안위만을 생각했던 정권이, 정치적 당략만을 생각하는 정치가 헌정질서를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우리는 봤다.

다음 대목을 읽어 본다. 근로자가 오로지 노동만 생각할 때 남는 것은 착취뿐임을 알았던 한 노동자를 생각한다. 양회동. 향년 50세. 42살 때 철근공으로 일을 시작했고, 3년 만에 반장을 달았을 만큼 성실한 노동자였다. 중간관리자에게 부당하게 임금을 떼이는 경험을 하고, 2019년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에 가입한 그는 2022년부터 고성·속초·양양·강릉북부권에서 160여명의 노동을 책임지는 3지대장으로 활동했다. 윤석열 정부가 고용안정을 위한 요구를 ‘공갈’로 몰아 ‘건폭’ 몰이를 하는 과정에서, 2023년 5월1일 노동절,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앞두고 법원에서 분신을 했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다음 대목을 좀 더 읽어 보자. ‘법관이 오로지 법만을 생각하고’에서 ‘법’은 ‘있는 법’일까, ‘있어야 할 법’일까.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러시아 헌법재판소장 발레리 조르킨의 말을 인용하면서 “(히틀러의 나치 체제와 스탈린 정부의 사회주의 체제에서) 수백만 명이 살해된 이유는 두 곳 모두에서 제정법이 곧 법의 전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고 썼다. 물론 ‘있는 법’을 넘어선 ‘있어야 할 법’은 입법의 몫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법의 해석은 사법의 몫이다.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사건에서 김재형 대법관은 “법원은 법률이 아닌 법을 선언해야 한다”고 썼다.

그 법의 해석에 있어서 우리 사회는 혹시 ‘근로자는 오로지 노동만을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주어진 조건하에서 묵묵히 땀 흘려 일하는 산업역군으로서의 근로자, 일하고 받는 임금 등에 대해서는 사회적 약자로서 보호돼야 마땅하지만, 딱 거기까지일 뿐, 주어진 조건을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고서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왜 건설현장의 불안정한 일자리, 오야지(팀장)에 의한 인력수급과 불법 재하도급, 채용 과정에서 소개조로 일당을 가로채는 똥떼기 등 중간착취의 악습이 근절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 ‘주어진 조건’에 문제제기하고 바꾸려고 했던 이들만 건폭으로 몰렸던 것인지. 건설노조가 왜 그렇게 하는지 물어보고 노동현장에 필요한 법과 제도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국가가 왜 계급 특진을 내걸고 노조를 때려잡기에 바빴는지. 대대적인 노조탄압이 정권의 지지율 말고 건설현장에 미치는 영향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었는지. 각종 설문조사와 언론 인터뷰들은 건폭몰이에 노조탈퇴와 노조와해가 속출한 이후 건설 현장 부조리가 이전보다 더 심해졌음을 지적하고 있다.

노동자의 자기 존엄은 어디에서 오는가. 근로자는 오로지 노동만 생각한다는 명제를 거부할 때 온다. 근로자는 군말 없이 시키는 일만 하는 존재라는 내적 표상을 깨부술 때 온다. 모든 노동자는 ‘자기 존엄성’을 인식한 삶을 꾸릴 수 있는 존재다. 주어진 조건을 넘어서서 노동과 노동 바깥의 사이를 사고하고 구조를 바꿔 낼 수 있는 존재다. 그런 의미에서 단결하고, 단체로 교섭하고, 단체행동을 할 수 있는 권리인 노동 3권을 ‘협소한 의미의 근로조건’에 가둬서는 안 된다. 근로자는 오로지 노동만을 생각하고 법관은 오로지 법만을 생각하면 착취와 형무소만이 남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