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2025년 업무보고] ‘주 52시간 완화’ 카드 다시, 중대재해예방 ‘노사자율’만 강조

‘노사 법치’ 노동개혁 추진 계속 … 근기법 적용확대는 후순위로

2025-01-13     어고은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고용노동부 2025년 주요 정책이 청년·중장년층 맞춤형 일자리 지원에 방점이 찍혔다. 대내외 불확실성에 따른 고용불안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일자리가 곧 민생’이라는 기조하에 일자리 매칭에 주력하겠다는 취지다. 상반기에 올해 예산 70%를 조기 집행하고, 직접일자리사업에 110만명 이상을 채용한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줄곧 강조해 온 노사법치에 기반한 노동개혁도 지속 추진한다. 다만 12·3 내란사태 이후 국정 동력이 약화된 만큼 노조를 개혁의 대상으로 삼았던 정책 수위는 다소 완화됐다.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등을 지원하는 노동약자지원법은 추진하면서도 5명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확대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 점진적 접근한다며 한 발 뒤로 물러선 모양새를 취했다. 규제보다 자율을 강조하는 중대재해 대책 기조도 유지한다. 2022·2023년 업무계획에서 핵심과제에 포함됐던 ‘중대재해 감축’은 언급조차 없이 ‘노사자율’ 안전보건체계 확립 지원만 내세웠다.

일자리 예산 70% 조기 집행

노동부는 지난 10일 이 같은 내용의 업무계획을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보고했다. 노동부는 우선 올해 상반기 일자리 예산의 70%를 조기 집행하고, 1분기 내 110만명(전체 채용인원의 약 90%) 이상을 직접일자리사업으로 신속 채용할 예정이다.

구직활동을 포기한 ‘쉬었음’ 청년 취업지원도 확대한다. 기존 8개 대학에서 시범운영 중인 ‘청년고용올케어플랫폼’를 전국 120개 대학으로 확대해 심리·일상회복, 취업촉진 프로그램을 지원할 예정이다. 빈일자리 업종에 취업한 청년은 기술연수·직업훈련수당으로 2년간 최대 480만원을 지원한다.

40~50대 중장년 재취업을 위한 제도도 시행된다. 경력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훈련을 올해 3만5천명에게 지원하고, 2026년 5만명, 2027년 7만명으로 확대해 나간다. 폴리텍대 신중년 특화훈련을 통해 자격증 취득과 경력 전환의 기회도 얻을 수 있다. 지난해 12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만큼 일부만 계속고용하는 경우에도 계속고용장려금을 지급하는 등 요건을 완화할 계획이다.

근기법 적용 확대는 ‘사회적 대화’로
노동계 “노동개악 정책 폐기해야 대화”

노동부는 노사법치주의라는 ‘윤석열표 노동정책’ 기조를 유지하며 노동개혁을 지속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특히 연장노동시간 관리단위 다양화를 위한 현장 노사 의견을 이달부터 수렴한다. 윤 정부 초기 ‘주 69시간 노동’ 논란을 불렀던 근로시간 제도개편을 다시 들고나온 것으로, 의견수렴을 통해 여건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반도체 연구개발직에게 주 52시간 상한제 적용을 제외하는 ‘반도체특별법’도 국회 논의를 지원할 방침이다. 노동계 반발이 큰 데다 더불어민주당도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조항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혀 왔기 때문에 법안이 통과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노동약자지원법 제정도 계속 추진한다. 기존 노동법 보호를 받지 못하는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를 노동약자로 규정하고 지원을 확대한다는 취지다. 지난달 31일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는 표준계약서 제정과 권익보호, 분쟁조정위원회 설치, 공제회 설립·지원 같은 내용이 담겼다. 노동약자지원법은 추진하지만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확대는 사실상 후순위로 미뤘다. 김문수 노동부 장관이 취임 당시부터 강조해 왔지만 올해 업무보고에선 ‘사회적 대화를 통해 추진’하겠다며 한 발 뒤로 물러선 모양새를 취했다. 12·3 내란사태 이후 한국노총이 사회적 대화를 전면 중단한 상태로, 윤 정부에서 노사정이 합의를 도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1본부장은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노동시간 개편을 포함한 노동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노동개악 정책 폐기 등이 우선돼야 사회적 대화도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사회연구소 이사장은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한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나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행정을 취하거나 사회적 대화로 미루며 정책 추진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도체특별법 지원 등에 대해서는 “시차출퇴근제 같은 기존의 제도를 활용하면 되는데 개별업종에 대해 외부환경 변화를 이유로 (특별법을 만들어) 예외 규정을 두게 되면 장시간노동을 제한한 법률 취지에도 맞지 않고 다른 업종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아리셀 참사서 문제점 드러났는데
‘노사자율’ 기조 중대재해 정책 되풀이

중대재해 예방 대책도 ‘노사자율’ 안전보건체계 확립 기조를 유지한다. 사망사고가 빈번한 업종의 중소기업 3만4천개소에 특화 컨설팅을 제공한다. 자기규율 예방체계 안착을 위해 중대재해가 많은 건물관리업·폐기물처리업 등에 대한 업종별 표준모델도 개발한다. 상반기에 배달종사자에 대한 위험성평가 방법을 개발하고, 외국인 노동자 ‘안전서포트’를 신설해 안전교육프로그램을 확대한다.

위험요인 집중점검이나 산재다발 사업장 감독 계획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노사자율만 강조해 노동부가 제 역할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2년과 2023년 노동부 업무보고에는 각각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수립·추진’과 ‘중대재해의 획기적 감축’이 핵심과제로 포함됐는데 올해에는 이에 대한 언급마저 빠졌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감독 행정을 통해 사업주들이 법규를 준수하도록 해야 하는데 사업장 안전보건체계를 지원하는 수준의 대책만 있어서 중대재해 감축 의지마저 실종된 것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며 “이미 아리셀참사를 통해 위험성평가를 사업주에게만 맡기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드러난 바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