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와 나눔의 가치와 함께하는 투쟁
기호운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사무국장
12월3일 비상계엄으로부터 어느덧 한 달이 넘는 시간이 지났고, 새로운 해를 맞이했다. 지난 12월 일상이 무너졌고 매일 불안과 공포 속에서 다시금 일상을 지켜내기 위해 아등바등 묵묵히 각자의 자리에서 버텨내고 있다. 여전히 12월을 떠올리면 알 수 없는 공포가 물밀듯이 밀려오곤 했지만, 같은달 14일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국회 앞에서 ‘다시 만난 세계’가 거리를 메우면서 잠시나마 공포를 잊을 수 있었다. 그 순간도 잠시, 우리는 다시 21일 남태령 앞에서 경찰에 가로막힌 현실에 분노하여 모였고, 끝나지 않은 공포를 없애기 위해 관저 앞으로 모였다. 일상을 지내다 보면 끝을 알 수 없는 불안과 공포가 불쑥 찾아오곤 하지만, 온라인에서, 거리에서 함께할 때 잠시나마 우리는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거대한 공포와 위기는 언제나 연대의 바람을 불러왔다.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을 위한 연대와 나눔, 5·18 민주화운동 시기 광주에서 있던 주먹밥 나눔, 이번 탄핵 정국 거리에서 보인 선결제와 배달 연대, 후원과 성원 등 연대의 바람이 퍼지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희망들이 자유발언을 통해 깃발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그 내용은 재밌어 보여도 우는 날보다 웃는 날이 많아지기를, 미워하는 마음보다 사랑하는 마음이 넘치기를, 분열보다는 연결되기를 희망했고, 그 희망을 혼자가 아닌 거리에서 함께 나누고 있었다.
어쩌면 그동안 먹고사니즘에 바쁘다는 이유로 미뤄왔던 것이 이번 비상계엄으로 우리가 미뤄왔던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소중하게 지켜내 온 것인지를 느꼈고, 그 결과 먹고사니즘보다도 중요한 우리 일상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든 그 가치를 사회는 다시금 돌아볼 수 있었다.
이번 정국에서 우리는 나눔과 연대를 느꼈고,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수많은 단체를 향한 지지와 후원이 이어졌고, 거리는 응원봉과 케이팝 그리고 함께하는 시민들 연대의 힘으로 가득 채워졌다. 집회에 함께 참여한 사람들은 밤을 지새우기도 하며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그 순간만큼은 다양한 희망을 공유하고 불안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고 있다.
노조에 대한 인식도 변화의 바람을 맞았다. “민주노총이 길을 열겠습니다”라는 말이 밈이 되고, 거리의 시민들은 이 한마디가 힘이 되고 고마움을 느꼈다. 그렇게 열린 길 위에는 수많은 시민이 모였고, 정말 소중하게 집에서 간직해 온 응원봉에 열망을 담은 마음들이 모여 길을 밝혀줬다. 먹고사니즘에 바쁜 현실이지만,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를 위해 시민들이 거리에 나왔다.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던 노조가 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그렇게 모인 거리에는 노조, 시민단체, 무엇보다도 자발적으로 나온 수많은 시민이 함께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다. 그리고 2016년 촛불을 들던 때와 마찬가지로 그 앞에는 수많은 비정규 노동자가 함께하고 있다. 언제나 앞장서서 연대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이지만, 그 현실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수많은 노동자가 현장에서 저임금으로 일하고 있고, 해고 불안 속에서 일하고 있으며, 산재로 다치기도 목숨을 잃기도 한다. 일을 멈출 수 없기에 집회에 나오고 싶어도 나오지 못하는 이들은 작게라도 자기 삶 속에서 응원을 이어가고 있기도 하다.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한다. 아리셀 화재참사로 23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일이 불과 6개월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거제 한화오션 하청 노동자가 부당한 현실에 맞서 스스로 자신을 0.3평 철창에 가두고서도 그 현실이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여전히 수많은 일터에서 비정규 노동자는 차별받고, 기본적인 노동기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국회와 남태령, 헌재, 관저 앞에서 경험한 것들은 먹고사니즘을 위해서도 아니고, 개인의 이윤을 위해서도 아니다. 오직 연대와 나눔을 지키고 일상을 되찾고 새로운 세계로 가기 위한 절박함이었다. 그리고 그 연대의 방향이 이제는 탄핵 이후를 향하고 있다. 그 미래에 비정규 노동자의 바뀐 현실도 함께 그려야 한다. 이 땅 위에 절반에 가까운 비정규 노동자의 삶을 연대와 나눔의 가치를 통해 이제는 그 희망의 길을 열어야 할 때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사무국장 (kihghdn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