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군 4·16재단 운영위원장] “시민사회, 사회대개혁 독자적 안 마련해야”

‘2016년 촛불’ 주도, 다시 마주한 ‘2024년 촛불’ … “문재인 정부 때는 위치·역할 모호, 차기 정권 견제·견인해야”

2024-12-30     어고은 기자
▲ 정기훈 기자

1987년 민주화 이후 사상 초유 비상계엄 선포로 2024년 한국 사회는 어느 때보다 큰 혼란에 휩싸였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여야 합의를 요구하며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했고, 초유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안 가결로 이어졌다.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헌정질서를 훼손한 ‘최소한의 기준’을 흔든 12·3 불법 계엄사태의 본질은 사라지고 여야 공방과 정쟁만 이어지는 형국이다.

정치권에서 소모적 논쟁이 계속되는 사이에도 광장의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8년 전 대통령 퇴진을 외치며 수백만의 촛불이 타오른 것처럼 시민들은 응원봉을 들고 광장을 가득 메웠다. 남태령의 농민들과 안국역의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거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의 노동자들에게도 응원봉 연대가 불을 밝혔다. 이들은 합의를 핑계로 책임을 떠넘기거나 ‘나중에’라고 미뤄 버리는 정치권 대신 ‘지금 당장’ 연대가 필요한 곳에 달려갔다.

2016~2017년 당시 촛불집회를 주도했던 지도부는 작금의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공동대표를 맡았던 박래군(63·사진) 4·16연대 운영위원장은 “죽 쒀서 개 주는 꼴이 되지 않게 해야 했는데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을 탄핵한 동력이 됐지만 이후 국정 운영에까지 반영케 하는 데에는 실패했다는 자책이다. 시민사회 인사들이 대거 청와대로 향한 것에 대해 “시민사회의 역할과 자리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쓴소리도 했다.

최소한의 기준을 무너뜨린 정권과, 차별과 고통을 외면하지 말자며 ‘최소한의 가치’를 지키려고 맞서는 시민들. 8년 만에 다시 마주한 광장에서 응원봉을 든 시민들을 바라보며 박 운영위원장은 “시민사회 운동의 중심도 확 바뀌어야 할 때”라고 했다.

소설가를 꿈꾸며 국문과에 진학한 그는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하다 동생 박래전의 분신 이후 인권운동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양심수 석방, 고문 추방, 의문사 진상규명 활동부터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까지 한국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 곁에 늘 서 있었다. 지난 24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매일노동뉴스> 사무실에서 박 운영위원장을 만나 탄핵 국면에서 시민사회의 역할과 탄핵 이후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들었다.

국회 도착한 뒤 ‘계엄 실패’ 확신

- 시간을 잠시 지난 3일 밤으로 돌려보겠습니다. 당시 계엄 선포 소식을 어떻게 접하셨나요.
“서울 영등포에서 4·16연대 관계자들과 술 한잔 하고 집에 들어가는 중이었어요. 후배한테 전화가 왔더라고요. 형 큰일 났다고 계엄이라고. 당연히 거짓말인 줄 알았죠.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 하니까 아니라고, 빨리 TV를 켜 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TV를 켜서 보니까 거짓말이 아닌 걸 알았죠. 그런데 좀 이상해요. 계엄을 선포하면 (방송에) 포고령만 계속 나와야 하는데 뉴스에서 해설을 하더라고요. 다른 채널을 돌리니까 똑같이 해설을 해요. 이거 이상하다, 비상계엄치고는 이상하다 생각했어요.”

- 비상계엄을 현실로 인지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평생을 인권운동가로 살아오신 만큼 걱정이나 두려움도 크셨을 것 같습니다.
“바로 ‘잡으러 올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을 하다가 이왕 잡혀갈 거면 국회로 가자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마침 송경용 신부님이 전화를 해서 국회로 같이 가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같이 갔어요. 그런데 가는 길에 보니까 거리에 군인이고, 탱크고 하나도 없더라고요. 여의도에 도착하니까 사람들이 엄청 많은 거예요. 보이는 선에서만 수천 명이 국회 앞에 꽉 차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건 ‘계엄 실패다’ 확신이 들었어요.”

4대 개혁 의지도 지향도 없이 추진
정권 걸림돌 제거하려 노조 적대시

- 윤석열 정권을 한 마디로 평가하신다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정권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이 어렵게 민주주의 수준을 끌어올렸잖아요. 우리나라 민주주의 수준에 비교해 보면 이렇게나 시대에 맞지 않는, 천박한 수준의 인식을 가진 자가 대통령이 된 거예요. 대전환의 시기에 (안 그래도) 준비해야 할 것도 많은데, 되레 퇴행을 시키고 기존에 돌아가던 시스템도 망가뜨렸죠. 그나마 시민들의 민주주의 역량으로 계엄을 막아냈으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안 그랬으면 전쟁까지 날 판이었어요.”

- 윤석열 정부에서 노동자 삶도 바닥없이 추락했습니다. 특히 윤 대통령은 노동혐오 정서에 편승해 지지율을 올리는 수단으로 노조탄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습니다. 노동자를 비롯한 저항세력을 ‘반국가세력’으로 칭하고 척결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습니다.
“4대 개혁(의료·연금·노동·교육)을 추진한다고 했지만 거짓 레토릭뿐이었던 것 같아요. 개혁할 의지도 없고 철학이나 지향점도 없었던 거죠. 노동개혁의 경우 실제로는 개악을 하면서 노조를 적으로 돌린 거잖아요. ‘건폭’이라는 말까지 써 가면서 건설노조를 때리고 화물연대본부 등도 때려잡는 식으로 했단 말이죠. 부자를 위한 정책을 펴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이나 자기 정권을 유지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다 제거하고 적으로 취급했던 것 같아요.”

노란봉투법은 덮어놓고 반대, 참사엔 나쁘게 학습해 대응

- 윤석열 정권에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은 어렵게 국회를 통과했지만 대통령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로 두 차례나 무산되기도 했습니다. 시민단체 손잡고 상임대표로 노란봉투법 입법운동에 앞장서 계셨던 만큼 분노와 좌절감 등 여러 감정이 교차하셨을 것 같습니다.
“문재인 정부 때 했으면 조금 더 수월하게 됐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정부도 정부지만) 여당의 태도도 진짜 실망스럽고 분노가 컸어요. (문제가 있다면) 어떤 법안을 내놓고 같이 협상하거나, 대안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데 이런 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냥 무조건 반대했어요. 그나마 어렵게 국회를 통과한 법안도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이 정권이 있는 한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번째 때에는 아예 기대가 없었고요. 우리한테는 노란봉투법이 그저 하나의 법안이 아니에요. 20년 넘게 노동자들의 숨통을 조이고 목숨까지 끊게 만든 손배·가압류, 이 굴레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게 만드는 그런 법이에요. 노동현장에서 노사 갈등을 줄일 수 있는 ‘대화촉진법’이 될 수도 있고요. 그런데 이런 부분을 정부·여당이 진지하게 들여다봤을지 의문이에요.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하는 무책임한 정치를 한 거죠.”

- 입법운동 과정에서 아쉬운 점은 없으셨나요.
“노동자와 시민의 갈라치기를 제대로 넘어서지 못한 게 아쉽죠. 대부분의 시민들이 다 노동자인데 노동자와 시민이 언제부터 이렇게 구분이 됐는지. 시민들이 자기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하는 부분은, 좀 부족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 광장에서 윤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게 된 데에는 물론 비상계엄 선포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지만, 이전에도 채 상병 사망사건 외압 의혹, 김건희 주가조작, 명태균 공천개입 등 불씨를 당긴 이슈들이 있었습니다. 이 중 빠뜨릴 수 없는 사건이 ‘이태원 참사’일 텐데요.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에도 세월호 참사가 기폭제로 작용했습니다.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은 탄핵 국면에서 주된 쟁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회적 참사가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과 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번에 광장의 주축이 된 2030 젊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세월호 참사 때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를 배웠고, 이태원 참사 때 ‘무책임한 국가’를 또다시 확인했다고 해요. 몸으로 느낀 세대들이 광장에서 퇴진을 외치는 만큼 (사회적 참사가)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합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가 재난 참사를 대하는 공식을 바꾼 측면이 있습니다. ‘사고 프레임’을 ‘사건 프레임’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된 것인데요. 이전에는 우연히 불행한 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봤죠. 보상을 하고, 부상자를 치료하고, 사고를 수습하는 것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이 중요해졌고 이를 위해서는 보상보다 진실을 찾는 일, 치료가 아닌 치유를 하는 일이 핵심이 됐습니다.

이렇게 시민들의 인식은 변했는데 정치권은 여기에 미치지 못하고 법·제도는 그대로인 상황인 거죠. 이태원 참사 때 정부의 태도는 세월호 참사를 아주 나쁘게 학습한 거예요. 유족들이 모이면 ‘시끄러우니’ 못 모이게 하고, 연락처 공유도 어렵게 만들고, 애도도 국가가 강요하죠. 추모 기간을 정해 놓고 그 기간이 끝나면 분향소를 철거해 버리는 식으로요.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를 보면서 시민들의 분노가 쌓였을 것입니다. (세월호 때 ‘이게 나라냐’고 외쳤던 것처럼) 더 이상 이 정권은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해지고, 정권에 대한 마음이 돌아서는, 윤 정권에 대한 신뢰가 다 무너져 버리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 정기훈 기자

문 정부, 가시적 성과에 집중하다 ‘진짜 적폐청산’ 실기
시민사회도 역할 모호, 2016년 촛불혁명 ‘죽 쒀서 개 줘’

-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전반기엔 적폐청산, 후반기엔 검찰개혁에 몰두하며 노동은 묻히고 소수자 문제는 ‘나중에’ 논의돼야 할 것으로 미뤄졌습니다.
“준비 자체가 그렇게 철저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광장에서 분출한 개혁 요구들을 모두 수용하지도 않았고요. 퇴진행동이 제시한 ‘100대 과제’를 다 이행하겠다고는 했는데, 국정과제를 만들었던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에 관료 출신의 보수적인 김진표 당시 의원을 앉혔습니다. 이때부터 어그러진 거예요.

적폐청산 작업도 정부 부처마다 개혁위원회를 만들었는데, 실상 ‘셀프 개혁’이었어요. 적폐청산에 대한 정부 차원의 종합적인 대응체계 없이, 민관 개혁위원회의 형식을 취했지만 사실은 관료들의 손에 맡겨 놓은 거죠. 법무부나 검찰이 그때 저항이 심했는데 이를 효과적으로 제압하지도 못했죠. 위원회에서 나온 보고서 중에 (고용노동부를 포함해) 내용이 괜찮은 것도 있었지만 결국 이행도 (제대로) 안 하고 묻어 버렸어요.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처벌처럼, 보이는 성과에 집중하다 보니 실제로 해야 할 적폐청산은 실기를 했다고 봅니다.

노동도 마찬가지예요. 문재인 정부가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추진하면서 인천국제공항에 갔는데 노동문제가 그렇게 이벤트식으로 해서 풀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정말 문제를 풀려고 했으면 노동현장을 잘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어야죠. (현장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전문가 중심으로 자기들만의 개혁을 하다가 결국은 벽에 부딪혀 좌절된 거죠.”

- 2016~2017년 촛불과 문재인 정부 시기에 시민사회가 놓친 것은 무엇입니까.
“시민사회가 사회 어디에 자리를 잡아야 하는지 반성도 좀 해야 한다고 봅니다. 노무현 정권 때나 문재인 정권 때 시민사회쪽 사람들이 (청와대나 정부에 많이) 들어갔잖아요. 들어갈 사람들은 들어가더라도 시민사회가 중심을 잡고 견제할 것은 견제하고, 견인할 것은 견인해야 합니다. 시민사회가 정부·여당 편으로 보이게 되는 건 문제입니다. 설령 문재인 정부보다 더 개혁적인 정부가 나온다고 해도 시민사회가 독자적인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해요. 물론 거버넌스도 필요해요. 거버넌스가 만들어지면 힘을 실어 줘야 하고, 힘을 안 실어 주면 시민사회가 힘을 싣게끔 만들어야 하는 거죠. 그런데 (위치와 역할이) 애매모호해지니까 나중에는 제대로 비판도 못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리고 민주당도 기득권의 한 축이에요. 우리나라에서나 진보로 분류하지, 사실은 개혁적 보수죠. 민주당이 진보라고 하는 환상도 깨면 좋겠어요. 여기는 언제든지 보수로 갈 수 있는 기득권 세력인 거고, 개혁적인 방향으로 (이들을) 끌고 가려면 시민사회가 힘을 가져야 하는 거죠.”

- 2016~2017년 촛불을 평가할 때 이른바 “죽 쒀서 개 줬다”는 표현이 나오기도 합니다.
“퇴진행동의 공동대표였고, (퇴진행동 산하) 적폐청산위원회 위원장도 맡았던 만큼 책임을 느낍니다. 약 5개월간 매주 집회를 했잖아요. 막상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된 뒤에는 너무 지쳤던 것 같아요. 개혁과제들을 계속 밀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거죠. 죽을 쒀서 개 주는 꼴이 되지 않게 할 책임이 있었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 반성합니다. 제가 책임을 다 못한 거죠.”

- ‘촛불정부’ 탄생 이후 일각에서는 노동계와 시민사회가 촛불청구서를 들이밀었고, 정부가 이에 굴복했다는 비난을 하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자기들이 못 해내니까 괜히 시민사회나 노동계 탓으로 돌린 거죠. 광장을 열었던 시민사회와 제대로 대화테이블을 만들어서 요구를 정책화시키는 등 진정성 있는 노력이 있었느냐 하면 그것도 없었거든요. 시민사회를 마치 비현실적인 과제를 요구하는 귀찮고 성가신 존재처럼 대했지, 목소리를 제대로 경청하고 뭔가를 풀어 보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만나자고 하면 만나서 잘 들어주기는 했지만 의견이 반영되거나 실제로 무언가 달라지는 건 별로 없었어요.”

‘어게인 2017년’ 되지 않으려면

- ‘어게인 2017년’이 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번에는 이름부터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이렇게 정했잖아요. 사회대개혁을 계속 끌고 가야겠죠. 정당과는 다르게, 시민사회가 사회대개혁의 독자적인 안을 만들어야 된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가 나아갈 큰 방향을 합의해서 만드는 일이 시급하죠. 시민사회단체들끼리만 해서는 안 되고 광장에서 토론을 진행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시민들의 의견을 듣고 우리 사회는 어떤 사회로 가야 하는지 의견 수렴 과정이 필요합니다. 시민사회가 만드는 안에 광장의 힘이 실려야 하는 것이죠. 그리고 정치권과 협상을 해야 한다고 봐요.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것과 정치권에서 요구하는 것은 많이 다르겠죠. 2016~2017년처럼 탄핵 이후 흩어지는 게 아니라 사회대개혁을 위한 흐름을 시민사회가 계속 잡고 가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 때에는 정권이 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나중에서야 비판했는데, (사회가) 후퇴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도록 계속 견제하고, 견인해 갈 수 있는 힘을 유지해야 합니다.”

-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민의회 같은 단위가 있을 수 있고요. 이러한 시민사회 단위가 정당들과 정치협상회의 같은 것을 해야죠. 시민의 힘을 한 정당에 그냥 다 넘겨주는 게 아니라 (힘을) 유지하면서 미래의 상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당장 퇴진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부분도 서둘러야 해요. 탄핵 심판 기간이 (최대 180일이지만) 과거에도 60~90일 만에 나왔고, 인용되면 바로 대선 국면이잖아요. 시간이 별로 없어요. 4~5개월 안에 우리가 바라는 사회상을 정책화시키고, 대선 이슈로 만들어야 해요. 과거 퇴진행동은 100대 과제를 내놨는데 (그렇게) 열거만 해서는 안 되고요. 구조화시켜야 해요. 단기·중장기·장기로 구분하고 우선순위도 정해야 합니다.”

▲ 정기훈 기자

광장 에너지 확장시키려면 기존 시민사회 틀로는 안 돼

- 새 정부가 반드시 이뤄야 할 과제가 있다면.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합니다. 2007년부터 논의가 시작됐으니 17년이나 미뤄진 과제예요. ‘사회적 합의’가 안 됐다는 이유로 미루고 미루다 여태까지 오게 된 거예요. ‘나중에’라고 미루면 그때 가서는 더 어려워집니다. 차별금지법은 ‘이게 차별이다’라는 기준을 세워 주는 법이에요. 문화나 규범으로 할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그게 안 되니까 법으로라도 ‘이건 차별이다’ 라고 선을 그어 주는 거예요. 차별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모두가 존중받으면서 같이 살자’라고 하는 게 차별금지법이에요. 민주당이 사회적 합의를 이야기하는데, 합의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서 설득을 하고 노력을 했는지 오히려 묻고 싶어요.”

- 탄핵 이후 시민사회가 붙잡고 있어야 하거나, 새롭게 제시해야 할 의제나 담론이 있다면.
“불평등·양극화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기후위기와 에너지전환은 어떻게 할 것인지 모두 시급한 과제입니다. 재난이 일상화되는 상황이 닥칠 텐데 생명과 안전을 담보할 시스템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도 중요하고요. 또한 혐오세력이 우리 사회에서 커지고 있는데 이들을 어떻게 약화시킬 것인지, 혐오에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사회를 각자도생의 사회라고 했잖아요. 이후에는 더불어 살아가는 상호의존성의 사회로 나아가야 합니다.”

- 시민사회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시민사회도 혁신이 필요해요. 90년대에 짜놓은 프레임을 지금까지 끌고 온 건데 이제 바꿔야죠. 촛불집회도 2008년, 2016~2017년, 2024년 계속 업그레이드 돼 왔어요. 질적 전환이 필요한 거죠. 지금의 광장은 젊은 여성들이 주축이 됐잖아요. 그러면 시민사회의 중심도 옮겨져야 해요. 저 같은 사람이 대표하고 그럴 게 아니죠(웃음). 20~30대는 왜 대표를 할 수 없겠어요.

광장에서 발견한 큰 에너지를 어떻게 운동으로 연결시킬 것인지가 관건이겠죠. 저변은 확인이 됐는데, 여기에 맞는 운동은 무엇일지, 시민사회는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에요. 이전에 광주를 겪은 세대가 (광장을 채웠다면) 이제는 세월호와 이태원을 겪은 세대가 중심이 된 거예요. 시민사회 운동의 중심도 확 바뀌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이들이 주축이 되도록 하고, 저희 세대는 물러나서 뒤에서 지원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글=어고은 기자
사진=정기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