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접촉 그만” 아리셀 유가족 ‘손배’ 제기한다
배·보상보다는 ‘사회적 해결’ 추진, 사실상 무산 … “죄송하다”더니 책임 없다는 아리셀 경영진
아리셀 참사 피해 유가족이 아리셀쪽에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참사 이후 6개월간 교섭을 통한 참사 수습이 아리셀쪽의 거부로 정체를 거듭해 대응 방식을 전환한다. 다음달께 소송 접수가 예상된다.
개별합의로 처벌불원 요구 지속
“합의 의사 없음” 확인, 징벌적 손배로
25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아리셀 산재피해 가족협의회와 아리셀 참사 대책위원회는 그간 아리셀과 그 모회사 에스코넥에 직접적인 사과와 교섭을 요구하고 가치사슬 상단의 삼성전자에 사태 개입을 촉구하던 대응에서,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아리셀에 지우고 법정 투쟁에 나서는 것으로 대응 방식을 전환하기로 했다. 당초 배·보상 문제로 사고 수습이 왜곡되는 것을 우려한 유가족과 대책위는 교섭을 통한 제대로 된 사과와 사고 수습을 요구하고, 공급망 책임 등을 강조하기 위해 삼성전자에 책임을 추궁하는 등 법정 공방보다 사회적 해결을 우선했다.
사태 수습이 장기화하면서 사용자쪽의 개별합의 회유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게 직접적 배경이 됐다. 아리셀쪽은 참사 발생 초기 한 차례 유가족과 만난 뒤 개별가족에게 합의를 제안하고 합의가 이뤄지면 아리셀 경영진 등에 대한 처벌불원서를 요구했다. 가족협의회는 개별접촉 시도 중단을 요구했지만 회유가 지속됐다. 김태윤 가족협의회 대표는 “민사소송은 지속되는 개별합의 시도에 합의할 의사가 없음을 천명하는 성격도 갖고 있다”며 “소송을 통해 개별합의 시도를 제한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을 이끌어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재 아리셀 참사와 관련한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다. 수원지검은 지난 9월 박순관 아리셀 대표(에스코넥 전 대표)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상 산업재해치사 혐의와 파견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위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박 대표의 아들인 박중언 아리셀 총괄본부장은 산업안전보건법과 파견법 위반과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업무방해 및 건축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했다. 이 밖에도 아리셀 임직원 6명과 아리셀 등 4개 법인을 기소했다.
모르쇠 박순관 “실질적 경영책임자는 아들”
재판은 최근까지 공판준비가 진행됐고, 내년 6일께 첫 공판이 열린다. 공판준비기일에서 아리셀쪽은 지속해서 박 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가 아니라며 사실상 무죄를 주장했다. 실질적 경영자는 아들인 박 총괄본부장이라는 것이다. 김태윤 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상 실형이 많지 않고 형량도 법정형에 비해 낮은 점 등을 고려해 박 총괄본부장에게 책임을 몰고 양형을 다투려는 것”이라며 “아들에게 모든 책임을 밀어놓고 가겠다니, 파렴치하다”고 비판했다. 아리셀측의 논리는 실제 공판에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유가족은 23명이 사망한 중대재해처벌법 사상 최악의 참사인 만큼 중형을 요구하고 있다. 형사재판이라 직접 심리에 참여하기 어렵다 보니 현재 공판에서 발언기회를 얻기 위해 협의 중이다.
아리셀 참사는 6월24일 경기도 화성시 전곡산단에 위치한 아리셀의 리튬 배터리 제조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노동자 23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을 입은 사고다. 사고 전 군납비리를 자행하다 발각되자 밀린 납품량을 기일에 맞추기 위해 하루 전지 1천개를 생산하는 무리한 계획을 추진하다 안전 관련 법규를 사실상 모두 어긴 것으로 드러났다. 불법으로 노동자를 파견받아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고 일을 시켰고,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비상구 통행이 가능한 ID카드도 지급하지 않아 참사 피해를 키웠다. 사망 노동자 23명 가운데 17명이 이주노동자다. 사고 이후 고개를 숙였던 박 대표 등 아리셀 경영진은 사고가 법원으로 향하자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