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밟고 무시해도 제2·3의 기업은행지부 또 나온다”
27일 전면파업 기업은행지부, 총액인건비제에 균열 낼까 … “노사 교섭하는 상식적 일터 만드는 투쟁”
임금인상과 특별성과급·시간외수당 지급을 요구하며 전면파업을 준비하는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위원장 김형선)에 노동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정부의 총액인건비 제도에 가로막힌 임금·처우개선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개별사업장 노사갈등이 아니라 대정부 투쟁의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공공부문 노동계는 제2, 제3의 기업은행지부 파업이 이어질 것이라고 정부에 경고하고 있다.
“총액인건비제 20여년 운용했더니,
공공부문 임금체계 왜곡으로 귀결”
23일 기업은행지부에 따르면 지부는 27일 전 조합원이 일손을 놓는 전면파업을 한다. 올해 임금단체교섭 결렬에 따른 파업이다. 지난 12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는 조합원 88%가 참여했고, 95% 찬성으로 가결했다. 교섭은 여느 기업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노조는 임금인상을 요구했고, 회사는 반대했다. 그런데 교섭 내용을 살펴보면 민간사업장과 다른 점이 눈에 띈다.
기업은행은 중소기업 정책자금 지원을 위해 만들어진 국책은행이지만 직원들이 하는 업무는 민간은행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공공기관이라는 이유로 공무원 보수인상률만 매년 적용된다. 총액인건비 제도에 따라 임금과 복지가 전년도 정부예산안을 짤 때 정해진다. 노사가 교섭해야 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정부는 주는 대로 받으라는 식이지만, 받아도 지켜지지 않는다. 이를테면 시간외수당은 예산 범위 밖이라며 온전히 받지 못한다. 보상휴가를 제때 갈 수 있는 사정도 아니라고 한다. 지부는 직원 한 명당 600만원가량 체불이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노동계는 기업은행지부 파업에 응원을 보내고 있다. 양대 노총 공공부문 노조 공동대책위원회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공공기관에 대한 기획재정부의 예산 통제는 단체교섭권을 파괴하는 위헌이자 국제협약 위반이다”며 “기업은행지부 파업은 기재부가 벌인 야만의 결과다”고 지적했다. 홍원표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부 팀장은 “20년가량 총액인건비제가 운용되면서 주거비 대출 이자율 지원에 총인건비를 적용하고, 노사협의로 수당을 올리지도 못하게 하는 등 공공기관 임금체계 전반이 매우 왜곡되는 결과를 낳았다”며 “이를테면 대법원이 최근 통상임금 요건에 고정성을 제외한다고 판결해도 기재부는 지침이나 총액인건비제로 이를 무력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정 교섭으로 공공부문 임금체계를 정비하지 않으면 노정 갈등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진짜 사장 찾는 공공부문 노조 투쟁, 내년에 본격화할 듯
철도노조에 이은 기업은행지부 파업이 공공부문 노조의 연쇄적 투쟁을 불러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윤희 공공연맹 정책실장은 “총액인건비로 공공부문 교섭을 무력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은행지부 독자 파업으로 현안을 일거에 해소하기 매우 어려울 수 있다”며 “철도노조에 이은 기업은행지부 파업은 전체 공공부문 노조의 투쟁을 예고하는 선도투쟁의 성격이 있다”고 말했다. 양대 노총 공대위는 총액인건비 제도 철폐를 과제로 내세우는 파업을 내년에 개최하기로 내부 논의를 시작했다. 총액인건비 제도에 대한 피해가 공공기관에 쌓여가는 상황이어서 노조·직원의 분노가 조만간 표출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한국노총은 노정교섭을 정부에 주문했다. 이날 성명에서 한국노총은 “총액인건비 제도는 공공기관 노동자 임금인상 억제 수단으로 변질됐고 노동자의 삶의 질을 저하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기업은행지부 투쟁은 합리적 임금체계와 보상 방안 마련을 끌어내는 초석이 될 것이다”고 밝혔다. 김형선 위원장은 “공공기관 노동자 임금을 기재부 지침으로 일방적으로 정하지 말라는, 그래서 상식적인 일터를 만들자는 투쟁”이라며 “공공부문 노동자 투쟁의 첫 줄에 기업은행지부가 걷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