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 업무개시명령 위헌 쟁점, 국가의 ‘자의적’ 처분·직업자유 제한

‘정당’ ‘큰’ ‘심각’ ‘상당’ 명확성 원칙 위배 … 사전사후 대안·구제 미비, 강제노동 ‘혐의’

2024-12-23     이재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법원이 정부가 운송을 거부한 화물노동자에게 내린 업무개시명령의 위헌성을 따지게 된 데는 국가의 자의적 해석 여지가 많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헌법상 권리인 직업의 자유를 제한하는데 필요한 기준이 없어 헌법적 해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울행법 화물자동차법 조항 위헌법률심판 제청 결정

22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행정법원 6부(재판장 나진이)는 2022년 12월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조합원 ㄱ씨가 국토교통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업무개시명령처분 취소소송에서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화물자동차법) 14조1항과 4항 위헌 여부를 헌법재판소에 묻기로 했다.

앞서 2022년 11월 국토부가 안전운임제 일몰 저지와 적용품목 확대를 요구하며 파업한 노조에 사상 처음 발동한 업무개시명령에 대한 처분 취소를 구하는 소송이다. 해당 조항은 운송거부가 국가경제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을 때 강제로 업무에 복귀하도록 하는 조항으로, 따르지 않으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ㄱ씨는 취소소송에 이어 해당 조항이 위헌이라며 위헌법률심판 제청도 신청했다.

기본권 침해하는데 불확정 개념 남발

재판부는 해당 조항이 화물노동자의 직업의 자유를 제한할 뿐 아니라 국가의 자의적 처분을 가능케 하고, 국제법에도 위배할 우려가 있어서 위헌성이 있다고 봤다.

우선 재판부는 해당 조항이 명확성 원칙에 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명확성의 원칙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원리에 기초해 모든 기본권 제한 입법에 요구되는 원칙”이라며 “해당 조항은 명확성 원칙에 반한다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밝혔다. ‘정당한 사유’ ‘커다란 지장’ ‘국가경제’ ‘매우 심각한 위기’ ‘상당한 이유’ 같은 불확정 개념을 썼고, 국가경제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는 집단운송거부와 그렇지 않은 집단운송거부 경계도 예측 불가능하다는 이유 등이다.

재판부는 또 해당 조항이 직업을 선택하지 않고 행사하지 않을 자유를 포함하는 직업의 자유를 침해했고, 집단운송거부를 규제해 단체결성 및 단체활동의 자유 같은 결사의 자유도 침해할 수 있다고 봤다.

이처럼 기본권을 제한하면서도 구제절차나 대안이 없다는 점도 재판부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재판부는 화물자동차법상 업무개시명령은 국무회의 심의와 국회 보고가 있지만, 자의적 처분 우려를 차단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실제 11월29일 업무개시명령은 집단운송거부 사태가 모두 종료된 2023년 2월15일에야 국회에 보고됐다.

‘강제노동 금지’ ILO 기본협약 위반 우려

재판부는 “업무개시명령을 이행하는 자에 대한 혜택 부여 방식을 검토하고 (불이행시) 제재도 형사처벌이 아닌 과태료 등 다른 제재를 우선해 검토할 수 있음에도 불이행시 화물운송 종사자격 등을 취소·정지하거나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제도를 운용한 것은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 파업 과정에서 발생한 소요는 화물자동차법의 규율범위도 아니어서 업무개시명령의 정당성과 무관하다고 봤다.

국제법상 강제노동에 해당할 우려도 지적했다. 우리나라가 비준해 발효된 국제노동기구(ILO) 29호 협약은 강제노동 사용을 금지하되, 전쟁·화재·홍수·기근·지진·전염병·해충 침입 재해 같은 긴급한 경우 같은 때는 강제노동으로 보지 않는 단서를 두고 있다. 재판부는 “협약이 정한 정도에 이르지 않았음에도 업무개시를 강제하는 해당 조항에 대한 헌법적 해명이 필요하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