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탄핵 표결 전후 촛불광장] ‘다시 만난 세계’ 시민들은 승리를 자축했다

2024-12-14     정소희 기자
▲ 정기훈 기자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

언제까지라도 함께 하는 거야 다시 만난 나의 세계” (소녀시대 - 다시 만난 세계)

14일 오후 5시, 우원식 국회의장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결과를 발표하자 국회 앞 광장에는 환호성과 함께 걸그룹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흘러나왔다. 노랫말을 따라부르는 관중들은 색색의 응원봉과 재치 있는 문구로 꾸며진 깃발을 흔들며 자축했다. <매일노동뉴스>가 탄핵 전후 광장 모습을 살펴봤다.

#오후 3시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이 이날 탄핵소추안 표결을 맞아 주최한 촛불집회는 오후 3시부터 시작됐다. 이보다 앞서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언론노조 등이 국회 인근에서 행진하면서 본대회 자리에 모였다. 오후 2시 사전행사로 시민 발언과 민중가수 꽃다지, 이한철밴드의 공연이 이어지며 광장의 열기는 달아올랐다. 본행사를 두 시간 앞둔 오후 1시께부터 사람들이 국회대로와 9호선 국회의사당역을 지나 여의도공원 앞 여의공원로까지 가득 모였다.

본행사가 시작하며 여는 노래로 ‘’다시 만난 세계’가 흘러나오고 개회 선언이 이어졌다. 대표발언에 나선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윤석열이 군대를 동원해 헌법을 파괴했다. 수십 년에 걸쳐 피땀 어린 투쟁으로 힘겹게 진전해 온 민주주의를 무너뜨렸다”며 “유일한 헌법적 해결은 탄핵”이라고 말했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는 “민심을 거스르는 권력자는 반드시 몰락하고 만다는 게 역사의 법칙”이라며 “가족과 친지 손을 잡고 함께 참여한 시민촛불대행진이 진행되고 있고 차별과 혐오에 시달리던 2030 여성들이 광장에서 저항의 핵심 주체로 앞장서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함께 촛불광장에 앞장선 국민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외쳤다.

이어 가수 이랑이 한국여성의전화·페미당당·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등 여성단체와 함께 공연을 펼쳤다. 이랑과 단체 활동가들은 “페미니스트가 요구한다. 윤석열은 물러나라”고 외치며 무대를 마무리했다.

시민발언도 이어졌다. 40대 직장인 김태은씨는 “20대 때는 물대포를 쏴대는 명박산성 앞에 섰고, 30대 때는 박근혜 탄핵을 외쳤고 여전히 평범한 40대가 돼 다시 촛불을 들었다”며 “이제는 평범한 국민이 촛불을 안 들어도 되는 세상이 돼야 하지 않냐”고 되물었다. 이어 그는 “국민이 바라는 건 명확하다. 내란수괴 윤석열은 헌법을 유린하고 불법계엄으로 국가권력을 찬탈했지만 법절차대로 그들을 심판해 민주주의국가·법치국가 대한민국을 바로 세워 달라”고 국민의힘을 향해 외쳤다.

20대 야구팬으로 자신을 소개한 김제니씨는 ”’국민의짐’은 계엄 해제 첫 기회를 저버렸다. 지난주 토요일 두 번째 기회도 저버렸다”며 “야구팬에게 묻겠다. 스트라이크를 세 번 놓친 타자에게 네 번째 기회가 주어지냐”고 되물었다. 이어 김씨는 “우리는 이 광장에서 꽉 찬 직구를 던질 것”이라며 “국민의힘은 윤석열 탄핵에 동참하라. 윤석열을 탄핵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정기훈 기자

#오후 4시40분

국회 본회의장이 국회 앞 거대한 모니터에 생중계되자 광장의 시민들은 연이어 “윤석열을 탄핵하라””탄핵해” 등의 구호를 외쳤다. 시민들은 ‘아모르 파티’ ‘소원을 말해봐’ ‘아파트’와 같은 대중가요가 나오자 중간중간 “윤석열 탄핵”이라는 구호를 넣어 가며 노래를 따라 부렀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떠올리게 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민중가요 헌법 제1조도 흘러나왔다.

대형스크린에서는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본회의가 시작되자 제안 설명을 낭독했다. 박 원내대표는 “국가적 위기 앞에 당리당략을 앞세우는 것은 국민에 대한 반역이자 헌법상 국회의원의 책무를 저버리는 행위”라며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일원으로서,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서,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찬성 표결해 달라”고 국민의힘을 향해 호소했다.

▲ 정기훈 기자

#오후 5시

오후 5시께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통령 윤석열 탄핵소추안은 총투표수 300표 중 가 204표, 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로서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라고 의사봉을 3번 두드리자 ‘와’하는 환호성과 함께 거대한 함성이 터져나왔다. 이어 ‘다시 만난 세계’가 시작되고 시민들은 응원봉을 흔들고 춤을 추며 함께 노래했다. 이어 지드래곤의 ‘삐딱하게’, 거북이의 ‘빙고’가 울려퍼지자 제자리뛰기하며 환호하는 관중들로 집회 현장은 축제가 됐다.

무작위로 흘러나오는 노래 사이에 무대 위 한켠에서는 수어통역사 유춘희(52)씨가 빠른 손짓으로 가사를 통역했다. 청각장애인들과 소통을 위해 통역을 자원한 수어통역사들은 무대 앞에 서서 모니터에 나오는 가사를 보며 노래를 모르는 무대 유씨에게 수어를 실시간으로 전달했다. 유씨는 “청각장애인은 수어 없이는 큰일이 일어나도 알 길이 없다. 소수일지라도 이 모임에 올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통역을 자원했다”며 “현장의 시민들이 질서도 잘 지키고 차분하게 집회에 참여해 놀랐다. 추위로 손가락이 얼어 수어가 쉽지 않았지만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오후 6시

표결을 마친 야당 의원들은 국회 밖으로 나와 무대 위에 섰다. 한창민 사회민주당 대표는 “존경하고 사랑하는 시민 여러분과 이 자리를 지켜보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여러분이 승리했다”며 “민주주의는 정치인의 힘만으로 하는 게 아니다. 시민들의 열정과 힘으로 즐겁고 당당하게 민주주의를 열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도 “승리의 주역은 맨몸으로 계엄군에 맞서고 장갑차를 막아 주신 시민들”이라며 “국회는 철저히 다음을 준비하겠다. 내란사태 조기수습을 위해 윤석열 체포와 신속한 수사를 이뤄낼 수 있도록 국회가 역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는 “탄핵을 가로막은 내란 동조세력 국민의힘은 더러운 간판을 내리고 해산하게 만들어야 한다”며 “나와 가족의 꿈을 지켜주고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촛불광장을 아름답게 점령한 시민이 대한민국의 주권을 온전히 쟁취하는 세상은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시대와 완전히 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대표 직무대행도 “지난 2월 창당을 준비하며 윤석열 정권 조기퇴진을 외쳐왔다”며 “한시라도 윤석열은 체포돼야 한다. 헌법재판소도 즉각 재판을 진행해 주실 것으로 믿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한 건 언제나 어려운 민들, 이 나라의 서민과 국민들이었다. 나라를 위기에 구하는 것이 국민이었던것처럼 오늘의 위기를 이겨 나가는 것도 이 자리에 함께하신 여러분과 장면을 지켜보고 있을 대한민국 국민”이라며 “국민 여러분께 사과의 말씀과 함께 다짐의 말씀 드린다. 지난 촛불혁명으로 세상이 바뀌는 줄 알았지만 나의 삶이 안 바뀌었다고 질타하신 분들을 기억한다. 이제는 새로운 민주주의,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민주주의를 시작해 보자”고 말했다.

▲ 정기훈 기자

#오후 6시15분

어느덧 해가 저물었지만 대다수 시민들은 ‘그대에게’ ‘불타오르네’ ’넥스트레벨’ 같은 노래와 함께 광장을 지켰다. 본대회는 6시15분께 종료됐지만 사회자가 ‘탄핵소추 가결 파티를 시작하자’고 말하자 군중은 환호로 답했다. 신나는 음악과 함께 화려한 조명이 비춰졌고 광장 곳곳은 응원봉을 흔드는 시민들이 흥겹게 춤을 췄다.

광장에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앳된 얼굴의 청년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홍익대 교환학생인 헨리(21)씨도 “사람들을 보기 위해 광장에 나왔다”며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것을 보니 매우 좋다”고 밝혔다. 서울 금천구에 거주하는 유다현(21)씨도 친구와 함께 집회를 찾았다. 아이돌그룹 원어스의 팬인 유씨는 희고 반짝이는 응원봉을 꼭 쥐고 탄핵 구호를 외쳤다. 지난주 주말에도 집회에 참가했다는 그는 “(지난 7일) 국민의힘이 탄핵 표결에 참여하지 않는 것을 보며 힘을 보태야겠다고 생각했다”며 “평소에는 아이돌 팬덤끼리도 다투는데 국민들이 한마음으로 탄핵을 외치니 좋고 윤석열 대통령이 큰 벌을 받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 성동구에서 온 김우복(53)씨는 두 아들, 아내와 함께했다. 김씨는 “지난주는 혼자 왔지만 이번주는 가족들과 다 같이 1시부터 여의도를 지켰다”며 “1980년 계엄 당시 10살이었는데 첫째가 10살이라 여러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집회에는 주최측 추산 200만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16일부터 광화문으로 자리를 옮겨 촛불집회를 이어 나간다. 21일 오후 3시에는 전국 각지 동시다발로 집회를 열고 서울 광화문부터 헌법재판소 방향으로 행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