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학력-저소득층 파고 든 트럼프 정치, 한국서도 통할까

NBS 원자료로 살펴 본 정당 지지층의 학력-소득-이념 분포와 변화

2024-11-22     박영삼
▲ 미국 공화당 페이스북

미국 대선이 끝나고 난 뒤 정치 베팅사이트 스마켓츠(smarkets)의 분석가가 트위터(X)에 올린 한 장의 사진이 주목을 받았다. 1996년 이후 2024년까지 대선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의 득표율 격차를 학력과 소득 기준으로 계산해서 그 궤적을 그린 것이었는데, 클린턴과 오바마 시기를 제외하고는 미국 민주당이 점점 더 고학력 고소득층의 지지를 더 많이 받는 정당으로 변화한 반면, 공화당은 점점 저학력 저소득 유권자들의 지지를 잠식해 왔다는 것이다.

토마 피케티도 2020년에 출간했던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주요 선진국에서 우파 포퓰리즘이 기세를 올리고 있는 이유에 대해 많은 자산을 소유한 ‘상인(=자본가) 우파’와 세계화의 이득을 누리는 고학력 엘리트들로 채워진 ‘브라만 좌파’가 불평등 문제의 제대로 된 해결은 외면하는 사이에 저학력-저소득 계층이 국수주의적이고 포퓰리즘적인 우파의 선동에 포섭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민주당 저학력-저소득 계층 정당, 국민의힘 저학력-고소득 계층 정당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대선과 총선의 출구조사는 물론 정치 여론조사 원자료가 공개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일반에 공개된 것으로는 4개 여론조사 회사가 격주간으로 100퍼센트 휴대전화로만 조사하는 전국지표조사(NBS)가 유일하다. 그마저 이 자료의 업데이트가 2024년 5월 이후 멈춰 있다. 이용가능한 가장 최근 자료는 2024년 5월 자료이고 가장 멀리 있는 같은 달 자료는 2021년 5월의 것이다.

두 시점의 자료로 화제가 된 것과 유사한 그래프를 그려보았다. x축에는 교육수준을 표시하고 y축에는 경제계층을 표시한 뒤, 각 정당의 위치를 4분면의 평균지점에 오도록 했다.

각 정당 지지층의 분포를 보면 더불어민주당은 경제계층의 평균점수가 3.42로 중하위 계층이 더 많고 교육수준도 1.58로 역시 평균보다 약간 더 낮다. 2021년과 비교하면 2024년 시점이 평균학력이 조금 하향하고 경제계층의 위치는 미미하게 상향이동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에 반해 국민의힘은 평균학력 1.45로 고졸이하 비중이 55%로 모든 정당 중에서 가장 많고 경제적 계층에서는 3.25로 평균보다 상위계층 비중이 많다. 지지층의 연령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리고 2021년에 비해 2024년 지지층의 학력은 좀더 낮아진 반면 경제적 지위는 상위계층쪽으로 훨씬 더 이동한 것으로 나타난다. 민주당은 3사분면에 속하는 저학력-저소득 계층의 정당으로 볼 수 있고, 국민의힘은 2사분면의 저학력-고소득층 정당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한편 개혁신당과 정의당, 조국혁신당은 1사분면에 속하는 고학력-고소득층 지지정당으로 분류될 수 있겠고 진보당은 고학력-저소득층 지지정당으로 분류할 수 있다. 개혁신당은 소득상위층 지지 비중이 가장 높은 정당으로 나타나고 정의당은 지지층의 학력수준이 가장 높은 정당이었다. 정의당은 2021년 이후 변화폭이 아주 큰데 지지층이 크게 줄어 표본오차가 크다. 조국혁신당은 경제적 지위와 교육수준이 유권자 평균에 가깝지만 민주당에 비해서는 고학력-고소득 비중이 높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진보당은 개혁신당과 고학력 지지층을 가지고 있지만 경제적 지위에서는 하위층의 지지를 받아 상위층의 지지를 받는 개혁신당과 대조를 보이고 있다.

지지층 분포, 유권자 연령구성과 이념성향 밀접 연관성

이 같은 지지층 분포는 당연히 유권자의 연령구성, 이념성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림1>의 오른쪽 표에서 알 수 있듯이 2024년 5월 기준 우리나라 유권자의 평균 연령은 49.3세이고 이념성향은 2.98로 정확히 중도에서 평균을 이루고 있다. 각 정당들의 지지층 분포를 보면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의 평균연령은 50.2세로 평균과 비슷하고 이념성향은 2.49로 진보적 성향의 지지층 분포를 보인다. 이에 반해 국민의힘은 지지층 평균연령이 57.6세이며 이념성향은 평균 3.7로 독보적인 고령자-보수층 지지자 정당의 모습을 띄고 있다. 조국혁신당은 민주당과 거의 유사한 연령-이념성향 분포를 보이고 있으며 진보당은 가장 진보적(1.79)이면서 지지층 평균연령이 54.5세로 상당히 높다. 정의당은 2021년에 비해 더 진보적이면서(2.43→2.21) 더 젊은층(44.6세→31.2세)으로 지지층이 변화됐다. 개혁신당은 지지층의 평균연령이 32.7세로 아주 젊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중년-진보라면, 국민의힘은 고령-보수이고, 진보당은 고령-진보, 개혁신당은 청년-보수의 정체성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성별 차이가 숨어 있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많아질수록 보수화 경향이 나타나고 소득이 증가할수록 보수화 경향이 나타난다. 그런데 남성과 여성은 이러한 패턴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젊은 여성은 평균보다 훨씬 더 진보적이고 노인 여성은 평균보다 훨씬 더 보수적인 경향을 띤다. 나이가 들수록 보수화 강도가 급격히 강화된다. 반면 남성은 40대와 50대가 가장 진보적인 반면 청년층과 노인층이 보수성향을 띤다. 그 결과 20대에서 여성과 남성의 이념성향이 신뢰구간이 전혀 겹치지 않을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인다. 소득계층에서는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는데 남성은 소득이 증가할수록 보수화 경향이 강해지는 데 반해, 여성은 소득이 가장 낮은 계층이 가장 보수적이다.

청년-보수이념 진원지는 고소득 계층 … 저소득 보수층은 여성 노년층에서 뚜렷

이런 차이는 무엇 때문일까. 이것에 대한 실마리는 성별과 연령, 경제적 계층을 모두 한 번에 놓고 비교해 보면 좀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림 3>를 보면 자신의 경제적 계층이 중하층 이하라고 응답한 청년들의 경우 남녀 간 이념성향에서 별 차이가 없다. 남성과 여성의 평균 이념성향은 2.82와 2.94로 거의 유사하다. 중층으로 가면 제법 차이를 보이지만 남성의 보수성향 강도가 강하지는 않다.

그런데 중상층 이상으로 가면 달라진다. 그 차이가 훨씬 더 증폭된다. 상위층 여성은 진보적인 성향에서 중층이나 중하층과 큰 차이가 없지만 젊은 중상층 남성의 보수성향은 3.44로 심지어 노인층보다 보수성향이 더 강하다.

한국의 청년 ‘보수’ 현상은 저학력의 저소득 남성들이 갖는 여성과 진보에 대한 반감에서 발생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고소득 젊은 남성들의 강한 보수적 성향 그 자체에서 진원지를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열악한 처지의 소수자들이 갖는 반항심이 아니고 우월한 처지의 승자들이 가진 보수의식으로 볼만한 것이다. 오히려 저소득 계층의 보수성은 여성 노년층에서 뚜렷하게 확인된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현재까지의 상황을 놓고 볼 때 정치가 할 일은 아직 보수에 빠지지 않은 청년들의 힘든 처지를 개선하고, 진보에서 멀어진 힘든 여성 노인들의 처지를 개선하는 일을 좀 더 제대로 해보는 것이다.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노동데이터센터장 (youngsamp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