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상품권’ 정책에 맞선 미국 교원노조들의 투쟁

2024-11-21     윤효원
▲ 윤효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감사/ 객원기자

1955년 밀턴 프리드먼은 ‘교육에서 정부의 역할’(The Role of Government in Education)이라는 논문에서 학교가 학생들에게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지 못하는 이유로, 정부가 학교 운영에 직접 관여하는 공립학교 제도를 지목했다. 그는 학부모가 자녀의 학교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학교 상품권’(school voucher) 제도를 도입해 학교 간 경쟁을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학생 1명당 교육 비용을 상품권 형태로 지원하고, 학부모는 이 상품권을 원하는 학교에 사용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공립학교와 사립학교 간의 경쟁이 촉진되고, 결국 모두를 위해 교육의 질을 높일 것이라고 프리드먼은 주장했다.

프리드먼의 주장은 1980년대 이후 보수적인 교육개혁 흐름 속에서 신자유주의 정부에 의해 강력하게 추진됐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공립학교의 비효율성을 지적하며 학교 선택권을 강조했고, 1990년대 들어 위스콘신의 밀워키를 시작으로 상품권 제도가 시행되기 시작했다. 이후 오하이오·플로리다·조지아·애리조나 등 우익적인 교육개혁을 지지하는 주에서 학교 상품권 제도가 확산했다.

학교 상품권이 도입되던 1990년대부터 전미교육협회(NEA)와 미국연방교원노조(AFT) 같은 미국의 교원노조들은 이 제도가 공립학교 제도를 약화시킨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교원노조들은 공립학교가 모든 학생에게 동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안전망 역할을 해야 하는데, 학교 상품권이 공교육의 자금을 사립학교와 종교 학교로 흘려보내 교육의 공공성을 해친다고 지적했다. 상품권 제도로 공립학교 예산이 줄어들면서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공교육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47대 대통령으로 뽑힌 올해 이달 5일 선거에서는 네브래스카·콜로라도·켄터키에서 학교 상품권 법안이 주민 투표에 부쳐졌는데, 모두 부결됐다. 특히 콜로라도에서는 상품권 제도를 주 헌법에 명시하려는 수정안이 투표자 55%의 반대로 부결됐고, 켄터키에서도 정부 자금을 사립학교에 지원하는 안이 65%의 반대에 부딪혔다.

교원노조들은 유권자들이 공립학교의 공공성을 지키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면서 투표 결과를 환영했다. 미국 대통령선거 및 중간선거 시기와 맞물린 투표 기간에 교원노조들은 상품권 제도가 교육 불평등을 개선하지 못할 뿐 아니라 공립학교에 의존하는 다수 학생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면서 주민들의 반대를 이끌어 내는 데 주력했다.

교원 개인은 물론 교원노조가 정부 정책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는 것도 금지되는 대한민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근무시간과 근무장소 밖이라는” 조건하에서 교원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표현할 수 있다. 당연하게도 정부 정책에 대한 교원노조의 입장 표명은 결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허용된다.

모든 시민은 공공정책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를 갖고 있다는 미국헌법 1조 수정안에 따라 교원노조 역시 정치적 입장 표명, 로비 활동, 캠페인, 그리고 시위 등을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적극 개진할 수 있다. 교원단체가 정부 정책에 반대하며 정치적 입장을 표현하는 행위는 합법적이고 헌법적으로 보장되는 활동으로 간주된다.

전미교육협회(NEA)와 미국연방교원노조(AFT) 등 미국의 교원노조들은 선거 기간 상품권 제도에 반대하는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투표를 독려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이들 노조는 공립학교의 자금이 사립학교로 유출되는 문제를 알리는 연구 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이달 5일 투표 결과는 미국의 유권자들이 공교육의 가치와 형평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강력한 신호이자, 학교 상품권 제도에 반대하는 교원노조들의 지속적인 역할과 노력에 대한 대중적 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윤효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감사/ 객원기자 (webmaster@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