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이 일이 된 사람들’이 바라는 사회적 돌봄은?
“돌봄대상자 맞춤형 정책 설계·안내해야”
강석금 한국가사노동자협회 국장은 지난 2021년부터 2022년까지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를 간병해야 했다. 당시 89세였던 아버지와 81세인 어머니는 2021년 8월과 7월 각각 뇌질환·치매와 말기 췌장암으로 돌봄이 필요했다. 하지만 부모 모두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에 따른 장기요양 등급을 받지 못해 돌봄은 오롯이 가족들의 몫이 됐다. 자녀뿐 아니라 사위, 손주들까지 13명이 번갈아 간병에 참여했다. 가족 모두가 동원됐는데도 병원에 동행하기 위해 일정이 맞는 사람을 때마다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병원을 가지 않을 때도 어려움은 수시로 찾아왔다. 의료지식이 적은 탓에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가족들은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재정 부담도 적지 않았다. 국가유공자였던 아버지는 매달 지급되는 연금으로 치료비를 일부 충당했지만 두 분 모두 요양등급이 인정되지 않아 나라에서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했다. 이듬해인 2022년 4월과 5월에 끝내 어머니와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지만 9개월간 2명의 노인을 돌보며 2천420만원이라는 큰돈을 가족은 온전히 떠안아야 했다. 박 국장은 “부모를 돌보며 절실하게 느낀 명제는 간병은 개인이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다행히 우리는 치료비와 간병비를 감당할 수 있었지만 돌봄을 위한 지원·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야 장기요양보험 제도 외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부모님 생전에 보훈병원에서 사회복지사와 여러 차례 상담했지만 관련 고지를 한 번도 받지 못했다. 돌봄대상자에 맞는 정책을 제대로 안내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평등한 돌봄 위해 노동환경 개선 필요”
사람은 누구나 평생에 걸쳐 돌봄을 받거나 누군가를 돌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누구나 타인을 돌볼 수 있고, 자신이 돌봄서비스의 이용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돌봄은 공공성을 띨 수밖에 없다. 10.29 국제 돌봄의 날 조직위원회는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아이·노인·장애인을 돌보는 청년·양육자 등이 모여 자신이 경험한 돌봄을 이야기하는 증언대회를 열었다.
성평등한 돌봄을 위해 장시간 일하는 노동환경을 근본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권영은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는 “사회보다 가정에서 평등한 돌봄을 위해 더 치열하게 투쟁을 벌일 때가 많다”며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아프면 쉴 권리를 확보하는 것은 각종 저출생 지원보다 중요하고 어쩌면 성별과 양육과는 무관하게 중요한 이슈”라고 강조했다.
돌봄당사자 자립 위한 서비스 우선
돌봄당사자가 궁극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돌봄서비스 제공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돌봄청년커뮤니티n인분에서 활동하는 강하라씨는 지적장애가 있는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강씨는 “가족돌봄청년(영케어러)들은 특히 어린 시절 학업과 돌봄을 병행하기 어렵고 돌봄환경으로 사회관계가 좁아져 안정적 삶을 살아가기 힘든 상태가 된다”며 “돌봄을 제공하는 이에게 다양한 심리상담을 지원하고 돌봄과 경제활동을 병행할 수 있는 직업, 자조모임 같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강씨는 “특히 한글을 모르는 아버지가 아동에게 밀려 언어치료를 받지 못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며 “지적장애인도 사회구성원으로 자립해 살아갈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