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는 말이 없다
홍지나 변호사(법무법인 마중)
얼마 전 의미 있는 판결을 받았다. 작업 중 감전 사고로 돌아가신 근로자 유가족을 대리한 행정 소송 사건이다.
근로자는 작은 회사를 다녔다. 사실상 가족회사였고, 임금 지급은 투명하지 않았다. 회사는 근로자에게 줘야 할 퇴직금을 줄이고 국가에 낼 세금도 줄이기 위해서, 또 나아가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을 초과한 근로를 시키기 위해서 근로자의 통장을 특정은행에 개설하게 하고, 이를 이용해 이 통장에서 저 통장으로 돌려막기처럼 돈을 옮겼다. 물론 이 과정에서 임금 지급내역서나 근로시간에 관한 회사의 문서는 숫자 맞추기일 뿐 사실과 달랐다.
이런 방식으로 임금을 지급하다 보니 실제로 받았던 임금의 상당 부분이 회사로부터 직접 지급되지 않았다. 회사가 보관하는 상사의 특정은행 통장으로부터 하급자인 근로자의 통장, 즉 회사가 보관하지 않고 실제로 근로자가 소지했던 다른 은행의 통장으로 입금하는 방식이 됐다.
유족들은 근로복지공단에 이러한 사정을 열심히 설명하고 평균임금 산정이 잘못됐음을 알렸으나 회사가 작성한 문서만을 신뢰한 근로복지공단의 입장은 확고했다. “회사로부터 직접 받은 돈만 임금입니다. 근로자끼리 돈을 주고받을 수도 있죠. 그건 임금이 아닙니다.”
결국 유족들은 소송에 나섰다. 감전돼 사망한 처참한 시신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가족들이 공공기관을 상대한 소송을 대리할 변호사를 찾아 돌아다녔을 그 심정이 어떠했을지 짐작조차 어렵다. 하물며 이 사건은 이 모든 상황을 만든 회사가 숨은 상대방이고,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근로자는 사망해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니 승소를 장담하기 어려운 사건이었다.
3년이나 이어진 소송은 다행히 유족의 승소로 마무리됐다. 근로자가 사용자로부터 근로의 대가로 지급받은 돈이 곧 ‘임금’이라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을 재판부가 다시 확인해 준 셈이다. 또 회사가 퇴직금을 줄이고, 세금을 덜 내고, 근로시간을 초과해 과로시키려는 정의롭지 않은 목적에서 한 행위를 막았다는 점에서 정의로운 판단이다.
오랫동안 이어진 소송기간 동안 유족들은 혹시 증거로 사용될지 몰라 재해자의 유품을 보관하고 있었다. 이 판결이 3년 만에 진정으로 사망한 가족과의 이별을 마주한 유족들에게 작은 위안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정의로운 판단을 내려준 재판부에 변호사로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