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욱 택배노조 쿠팡본부 준비위원장 “개처럼 뛰다가 죽는 이유, 국회가 밝혀 달라”

쿠팡 청문회 개최 요구하며 노숙농성 …“과로사 막을 시민의 힘 필요하다”

2024-10-21     강한님 기자
▲ 정기훈 기자

오후 6시 국회 앞. 일과를 마친 국회 안 사람들과 거리에 선 국회 밖 사람들이 마주치는 순간은 짧았다. 농성장에 있던 사람들이 마이크 볼륨을 올리고 각각의 요구가 적힌 피켓을 서둘러 들었다. 그 속에 쿠팡 택배노동자 강민욱(38·사진)씨도 있다. 강씨는 지난 16일부터 국회 앞 길바닥에 방석 하나 겨우 펴고 쿠팡 청문회를 요구하는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강씨는 택배노조 쿠팡본부 준비위원장을 맡고 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쿠팡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가 도마에 올랐다. 그런데 왜 또 청문회가 필요할까.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7일 오후 강 준비위원장을 만나 물었다.

로켓배송은 택배노동자 과로 유발 시스템
지금이 바꿀 기회

- 국정감사에서 쿠팡 과로사가 주요하게 다루는데 국회가 쿠팡 청문회를 열어야 하는 이유는 뭔가?
“지금이 쿠팡을 바꿀 기회다. 쿠팡에서 사람이 죽는다는 이야기를 해온 게 4년이 넘었다. 쿠팡 택배노동자 고 정슬기씨의 아버지 정금석씨가 산재 신청하지 말라는 회유에도 노조를 찾았고, 고인의 죽음은 결국 산재로 인정받았다. 쿠팡 택배시스템이 과로사를 유발한다는 사실이 지금처럼 잘 알려진 때가 없었다. 과로 방지 대책을 만들지 않으면 오히려 쿠팡에게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된다. 쿠팡은 욕은 많이 먹어도 살인적인 노동환경에 대한 대책은 단 하나도 약속하지 않았다.”

- 쿠팡은 클렌징(배송구역 회수) 기준 완화와 새벽배송 택배노동자 격주 5일 근무제를 과로 대책으로 내놨다.
“허구다. 기준을 완화한다고 하지만 월 수행률 95% 미만이면 클렌징한다는 규정은 여전히 남는다. 95%를 채우려면 대리점은 하루도 쉬면 안 된다. 기준 하나만 미달해도 클렌징을 당할 수 있다. 결국 택배노동자들은 계속 개처럼 달려야 한다. 쿠팡은 계속해서 빨리 배송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도록 기준을 높게 만들어 속도 경쟁을 붙였다. 격주 주 5일제를 해도 고 정슬기씨와 같은 피해자는 분명 또 생긴다. 정씨의 재해경위서를 확인해 보니 야간근무 30% 할증을 포함하면 일주일에 77시간 일했다고 한다. 하루 노동시간 자체가 길다.”

정기훈 기자

- 홍용준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대표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국감에 출석했다. 국회의원들이 클렌징 제도와 다회전 배송 폐지, 사회적 대화 참여를 추궁했지만 홍 대표는 얼버무렸다. 청문회도 국정감사 시즌2가 될 수 있는데.
“국토위 국감에서 홍 대표가 하는 말들을 듣는데 열불이 났다. 나 역시 참고인으로 출석한 그 자리에서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겨우 10초 말하고 돌아와야 했다. 홍 대표는 ‘지금 (택배기사가) 하고 있는 건 분류작업이 아니다’ ‘클렌징 없앨 수는 없다’ ‘다회전 배송 유지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대화는 고민해 보겠다’고 답변했다. 다양한 문제를 다루는 국감은 질의 시간이 짧으니 어물쩍 회피하고 지나가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쿠팡 과로사를 쟁점으로 다루는 자리가 필요하다.

특히 환노위와 국토위가 함께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 국토부는 택배사업 인허가권을 가지고 있다. 국회가 정부를 압박하면 쿠팡도 빠져나가기 어렵다. 추석 전에 환노위 여야 간사가 국감이 끝난 후 쿠팡 청문회 개최에 합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구체적인 시점이 없다. 뱉은 말, 약속 지켜줬으면 좋겠다. 다음주부터 고 정슬기씨 아버지 정금석씨도 노숙농성을 시작한다.”

‘생명 위협하는 택배 받지 않겠다’는 목소리가 필요하다

정기훈 기자

- 노조는 고정적이고 연속적인 심야노동의 위험성을 고려해 작업 설계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로켓배송(새벽배송)을 없애자는 말인가?
“새벽배송 없애자고 한 적 없다. 이미 국민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불가피해졌다고 생각한다. 다만 고정된 연속적 심야노동은 전문가들도 그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택배노동자는 대리점과 위수탁계약을 맺은 특수고용직이라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한다. 법의 사각지대에서 로켓배송처럼 새로운 시스템을 구현할 때 시험대에 오르는 것 같다. 현재 우리가 어떤 안이 좋다고 말하긴 섣부르다. 정부와 국회, 쿠팡과 노동자·소비자·전문가가 참여해 바람직한 모델의 합의점을 찾았으면 좋겠다. 사회적 대화든 뭐든 다 할 수 있다.”

- 쿠팡 청문회 개최에 관한 국민동의청원이 벌써 2만명에 육박한다.(20일 2시 기준 1만9천489명)
“고 정슬기씨 아버지 정금석씨, 쿠팡 칠곡물류센터 노동자 고 장덕준씨 어머니 박미숙씨, 쿠팡 시흥2캠프 일용직 노동자 고 김명규씨 배우자 우다경씨가 함께 올린 청원이다. 누군가의 생명을 위협하는 택배는 받고 싶지 않다는 의미를 담은 청문회였으면 좋겠다. 쿠팡이 자랑하는 로켓배송 시스템은 과로사 유발 시스템이다. 택배사업 후발주자였던 쿠팡이 업계 1위가 됐다. 초짜 기업이 1등을 할 수 있었던 건 하루에 2번, 3번 배송해서라도 시간을 꼭 맞추도록 노동자에게 ‘과로 경쟁’을 시켰기 때문이다. 과로사로 내몰리지 않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요구는 그동안 자랑했던 시스템을 폐기해야 한다는 말이다. 쿠팡 입장에서는 업계 1위를 놔야 한다는 것처럼 들릴 거다.

로켓배송이 시민의 일손을 덜어주고 편하게 만든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런 택배를 배송하는 노동자는 잘릴까 두려워하며 개처럼 뛰고 있다. 고 정슬기씨 아이가 네 명이다. 쿠팡이 혁신적이라고 말하는 로켓배송 시스템 때문에 쿠팡노동자 가족의 삶은 완전히 무너졌다. 그런 가족이 벌써 스무 집이 넘는다. 소비자들이 나서주길 바란다. 이제는 모른 척할 수 없는 시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