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 하도급 사고’ 원청 관계자 ‘유죄’ 벌금형 선고
현대오토에버 재하청 노동자, 배터리 공사 중 감전 … 대법원 “발주자 아닌 도급인”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인 소프트웨어 전문업체 현대오토에버의 안전보건관리 책임자가 재하청 노동자의 감전사고와 관련해 기소돼 ‘벌금형’이 확정됐다. 법원이 현대오토에버를 ‘발주자’가 아닌 ‘도급인’으로 판단했지만 관계자에 대한 실형은 없었다. 하청 책임자만 금고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데 그쳤다. ‘도급인-발주자’ 판단기준은 인천항만공사 사건을 심리하는 대법원 결론에 따라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벌금형, 하청 책임자만 ‘금고’
안전교육 미실시에 보호장구 미지급
17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현대오토에버의 안전보건관리 책임자 A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최근 확정했다. 관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원·하청·재하청 책임자 중 가장 형량이 낮다. 오히려 하청 안전보건관리 책임자인 영업부장에게 가장 높은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현대오토에버와 하청 법인은 벌금 700만원을, 재하청 법인과 재하청 대표는 벌금 500만원을 각각 선고받았다.
사건의 발단은 ‘도급 → 하도급 → 재하도급’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도급이다. 현대오토에버는 2018년 9월 파주 데이터센터의 UPS(무정전 전원 공급장치) 배터리 케이블 이전 설치·점검 공사를 UPS 유지·보수 전문업체인 B사에 도급했다. B사는 다시 공사 중 일부를 전기공사업체인 C사에 재하도급했다.
사고는 그해 9월15일 파주 데이터센터 지하 전기실 내부 UPS실에서 일어났다. 재하청 소속 일용직 전기기사인 D씨 등 3명은 그날 오전 480볼트의 전류가 흐르는 UPS 배터리 케이블 분리 작업을 했다. 재하청 대표는 하청 영업부장 지시로 작업현장에 도착해 하청 직원인 것처럼 안전수칙준수 서약서를 작성했다.
당시 원·하청 관계자들은 작업자에게 배터리에 잔여 전류가 있어 감전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안전모와 안전장갑 등 절연용 보호구를 지급하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작업 전 잔류전하를 완전히 방전시키는 조치도 없었다. ‘무방비 상태’로 작업하던 D씨는 배터리에 연결된 케이블을 분리하던 작업을 하던 중 잔여 전류에 감전됐다. 그 결과 치료 기간을 알 수 없는 무산소성 뇌손상을 진단받았다.
법원 “원청 필수 사업으로 도급사업 해당”
“실질적 관리 권한 원청에 있어”
재판 쟁점은 현대오토에버가 ‘도급사업주’에 해당하는지였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재사고가 발생했을 때 건설공사 ‘발주자’를 처벌할 수 있는 근거규정이 없어 발주자는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 현대오토에버측은 “UPS 배터리 케이블 공사는 고유의 사업목적과 관련이 없는 부수적·보조적 사업으로, 공사를 총괄·관리할 지위에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 건설산업기본법상 ‘전문공사’가 아니어서 전문분야 공사 전부를 도급한 경우도 아니라고 피력했다.
1심은 현대오토에버를 ‘도급사업주’로 인정하고 원·하청 관계자들에게 모두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UPS 배터리는 현대오토에버의 필수 사업설비로서 하청에 도급했더라도 원청 ‘사업’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본래 사업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행하는 경우도 원청 ‘사업’이라고 본다. ‘전문공사’ 기준 역시 재판부는 “원청이 전문 기술이나 장비·인력 측면에서 우월해 전체적인 공사를 총괄할 능력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산재 예방조치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하청 영업부장에게 유일하게 금고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하청 영업부장은 거짓진술과 책임회피로 일관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다른 원·하청 관계자들은 범행 반성과 민형사 합의를 했다는 이유 등이 유리한 양형요소로 고려돼 벌금형에 그쳤다.
2심 역시 명칭과 관계없이 물건의 제조·건설·수리 등을 타인에게 맡기는 계약으로 도급인 범위를 확대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 규정을 적극 해석해 현대오토에버를 도급인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현대오토에버는 (UPS 배터리 설치) 업무를 자체적으로 수행할 조직과 인력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탓에 공사를 도급하게 된 것”이라며 “시설의 실질적인 관리 권한은 현대오토에버에 있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원심을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