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분산·확대 목표]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 지자체 기업 유치 제도로 전락하나
정부 도매가 차등 추진 … 지자체는 ‘싼 전기세·법인세’로 기업에 손짓
정부가 추진하는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가 수요지 인근에서 저탄소 에너지 공급체계를 확산시키겠다는 본 취지는 퇴색하고 지방자치단체의 기업 유치 경쟁으로 비화할 조짐이다. 발전소가 많은 지자체를 중심으로 싼 전기료를 앞세워 기업을 유치하려 하면서 되레 지역 간 갈등·불평등이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0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력거래소에서 받은 ‘지역별 전력 도매가격 차등요금제 기본안’에 따르면 정부는 수도권·비수도권·제주로 세 부분으로 나눠 전기 도매요금을 차등 부과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전기 도매가격은 전력판매사업자(한국전력공사)가 한국수력원자력과 발전사 등 발전사업자가 생산한 전력을 구매할 때 지급하는 가격을 말한다. 정부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분산에너지법)에 따라 도매가격을 지역별로 달리 책정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사용량보다 발전량이 적은 지역인 수도권·제주지역은 도매요금을 올리고, 발전량이 많은 비수도권은 낮춘다. 내년에 시행하고, 2026년 이후에는 가정·산업에 부과하는 소매가격에도 적용할 계획이다.
이 제도는 소비 지역 인근을 중심으로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확대해 에너지 공급체계의 저탄소화를 도모하는 목적으로도 설계됐다. 그런데 특별법의 많은 부분이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건물·전기시설의 밀집을 방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역을 3개로 구분해 요금을 차등한다는 정부 방향이 나온 뒤 발전소가 밀집한 지자체들은 긴밀하게 대응하고 있다. 부산시·대구시·울산시·경북도·경남도는 지난 8일 영남권 미래발전협의회를 열고 본사 이전 기업의 법인세 감면을 정부에 건의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현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발전소가 많은 지역에 전기를 싸게 공급해 산업을 유치하려는 정책으로 변질하고 있고, 이는 지역 간 불평등과 갈등을 더 가속할 수 있다”며 “집중된 발전원을 분산시키고 그 과정에서 풍력·태양광 등 대체에너지를 확대한다는 기존 계획은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남태섭 전력연맹 사무처장은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그에 걸맞은 요금제를 만들어 가자는 차원에서 차등 요금제가 나왔고,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데 기여하는 제도로 기획됐지만 실제 목표대로 작동할지는 의문인 상황”이라며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 센터 등 전기 먹는 하마가 이 제도를 통해 에너지 공급처 인근으로 이전할 것인지도 의문이어서 실효성 논란이 불거질 것 같다”고 내다봤다.
기후·환경단체는 제도 취지를 살리기 위해 수도권 등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지역에 발전원을 설립하고, 전기 소매가를 현실화함으로써 전기 사용량을 적절하게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기업 등에 적정 요금을 부과하고, 서민의 부담은 경감할 수 있도록 지원책을 만들자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