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가사노동자 2명 이탈 “예견된 일”
주 30시간 일하고 숙소비 40만원 빼면? 서울시, 월급제→주급제 검토
서울시의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을 위해 도입된 필리핀 가사노동자가 업무에 투입된 지 2주 만에 이탈한 것이 확인됐다. 낮은 임금 수준과 열악한 일자리를 고려하면 예견됐던 일이다.
23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필리핀 가사노동자 2명이 같은달 15일 저녁 서울 역삼동 숙소에서 나가 돌아오지 않고 있다. 당시는 일요일로 2명 중 1명은 휴대전화를 숙소에 두고 나갔고, 다른 한 명은 숙소에 나간 뒤 휴대전화를 꺼놔 연락이 닿지 않는 상태다. 노동부는 이들이 무단이탈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필리핀 가사노동자 100명은 지난달 6일 입국해, 이달 2일까지 교육을 받아 업무에 투입됐다.
필리핀 가사노동자 이탈에는 임금체불에 따른 생활고, 저임금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필리핀 가사노동자에게 지난달 20일 지급 예정이었던 임금이 체불되면서 한 차례 논란이 일었다. 현재 체불임금은 청산된 상태지만 9월20일에도 임금은 8월20일부터 9월2일까지 약 2주치만 지급됐다. 50여만원 수준이다.
10월20일이 돼야 9월 한 달치 월급을 지급받는다. 노동부가 전월 일한 임금을 익월 20일 지급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행정해석을 하면서 결정된 일이다. <2024년 9월20일자 “필리핀 가사노동자 9월 급여도 2주치만 받는다” 참조>
필리핀 가사노동자는 가사서비스인증기관에 고용돼 최저임금을 적용받지만, 업체는 최소 30시간의 근무만 보장하면 되기 때문에 실질임금은 고용허가제(E-9)로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가 주 40시간을 일해 받는 임금보다 적을 수 있다. 주 40시간을 꽉 채워 일해도 역삼동에 위치한 숙소비 40여만원을 납부하면, 남는 돈은 많지 않다.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이탈의 원인은 간단하다. 노동조건에 만족할 수 없는 것”이라며 “내국인도 가사서비스업에 취업했다가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며 “국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자리 질이 중요한데, 일자리 질 개선은 없이 내국인을 외국인으로 대체하기만 했으니 벌어진 일”이라고 지적했다. 조 연구위원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계속 필리핀 가사노동자에게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주장하는 상황에서 시범사업이 끝나면 최저임금도 못 받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이탈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과 지난달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세미나를 개최하고 “지금 같은 비용이라면 (사업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 돌봄 대란은 조만간 닥칠 정해진 미래”라며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주장했다.
한국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졸속적으로 추진된 정부의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이 결국 탈이 나고 말았다”며 “정부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정책 전면 재검토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시는 “필리핀 가사관리사의 생활고 해결 및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은 서울시의 책무”라며 “서울시는 급여지급 방식을 ‘월급제’에서 ‘주급제’로 개선하는 등 근무환경 개선을 노동부와 적극 협의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서울시와 노동부, 필리핀 가사노동자를 고용한 업체 가사관리서비스인증기관 홈스토리생활과 휴브리스는 24일 오전 서울 강남구에서 간담회를 열고 향후 대응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