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수급연령과 정년연장, 노동운동의 쉬운 길
1. 지난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했다. 한국노총이 더불어민주당 노동존중실천단 등과 공동으로 주최한 정년연장에 관한 토론회였다. ‘노동시장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한 정년연장 입법방안 모색 토론회’가 정식 제목이었다. 나는 토론자로 참여했던 터라 큰 부담은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런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발제자들이 사전에 제출한 발제문을 이메일로 받아 읽고서 논문을 작성해서 보내줘야 했는데, ‘무엇을 말해야 할까’ 고민이 됐다. 토론회의 취지는 명확했다. 정년연장에 관한 입법 추진의 당위성을 확인하고 그 입법방안을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고, 특히 최근 윤석열 정부에서 국민연금의 개안방안으로 수급연령을 늦추는 것이 논의되면서 정년도 연장돼야 한다고 이 같은 토론회를 열게 된 것이다. 이런 취지로 열리는 토론회에서 무엇을 토론해야 할 것인지 나는 정말 고민이 많았다. 인구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국민연금의 수급연령이 늦춰지는 상황에서는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이 나라 근로자의 법적 정년 60세는 연장돼야 한다고 토론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고민했다.
2.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나는 정년(제도)은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노동자가 일정 연령에 도달했다고 해서 근로계약상 노무를 정상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데도 퇴직시키는 정년(제도)를 법적으로 정당하다고 취급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다만 실정법인 고령자고용법에서 정년제도를 규정하고 있어서 강하게 위법·무효라고 주장할 수가 없을 뿐인데, 만약 그 법조항들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는 벌써 이 나라에서 노동현장에서 운영하고 있는 정년제도는 무효라고 노동자들을 대리해서 소송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근로자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하도록 하고, 법적으로 60세로 간주하고 있는 법률, 즉 고령자고용법이 원망스럽다. 그리고 생각을 한다. 정년에 관한 고령자고용법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 근로자의 정년(제도)은 무효라고 주장할 수 없을 것인가. 오늘 이 나라에서 아무도 더는 정년(제도)이 위법·무효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년(제도)에 관한 고령자고용법은 고령노동자의 고용보장 내지 안정을 위한 것이지 일정 연령 도달을 이유로 사용자가 노동자를 사업장에서 퇴출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닐 테니, 이러한 입법의 목적 내지 취지에 부합하게 해석할 방법을 생각해 본다. 실정법이 정년에 관해서 규정하고 있다고 정년(제도)을 법적으로 승인한 것이라며 당연히 적법·유효한 것으로 취급할 것이 아니라, 일정 연령 도달을 이유로 노동자를 사업장에서 퇴출시키는 제도의 본질에 주목해서 정년(제도)은 법적으로 정당한 것인지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민법상 고용계약과는 달리 노동법상 근로계약에 있어서는 근로계약 관계의 존속 보호를 원칙 내지 이념으로 하고 있는 것인데, 정년제도는 이에 반한다. 55세·58세였던 근로자의 정년을 고령자고용법을 통해서 60세로 연장한 것이니 노동자의 고용을 위한 것이라며 정당한 것이라고 당신은 주장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니다. 만약 고령자고용법에서 근로자 정년을 60세가 아니라 50세·55세로 규정하고 있다고 해도 당신은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설마 50세·55세로 이 나라 노동자의 정년을 정하고 있는데도 정년(제도)를 법률이 승인하고 있다며 적법, 유효한 것이라고 학설하고 판결하겠는가.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보자. 50세·55세가 아닌, 60세로 정하고 있다고 해서 다르게 학설하고 판결해야 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법인가. 나는 그 법을 도대체가 납득하지 못하겠다. 이상이 정년(제도)에 대한 내 생각이니 정년연장에 관한 토론회에서 무엇을 말해야 할까 고민을 했던 것이다.
3. 윤석열 정부는 4일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현행 9%에서 13%로, 소득대체율은 40%에서 42%로 인상하는 국민연금 개혁안을 발표하면서 국민연금 의무가입기간을 59세에서 64세로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2024년 3차 국민연금심의위원회를 열고 이 같은 ‘연금개혁 추진계획’을 심의·확정했다. 이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수급연령은 65세로 늦춰질 것인데, 이에 따른 정년연장 추진 계획은 밝히지 않았다.
이처럼 정부가 의무가입 기간을 상향하고 수급연령을 늦추는 국민연금 개혁을 추진하니 한국노총 등 이 나라 노동단체는 근로자의 정년도 그에 맞춰 연장해야 한다고 토론회까지 열어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4일 토론회에서도 발표자들은 국민연금 수급연령에 맞춰서 고령자고용법상 근로자의 정년도 연장돼야 한다고 발표했고, 토론자들도 같은 취지로 토론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정년(제도)은 위법·무효로 폐지돼야 한다고 보는 나조차도 국민연금 수급연령이 늦춰지면 그에 따라 고령자고용법상 정년이 당연히 연장돼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그날 토론회에서는 정년연장에 관한 입법이 추진돼야 한다는 데 크게 이견이 없었다. 그런데 아직까지 정부는 정년연장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지 않으니 이 나라에서는 이제 정년연장에 관한 입법 추진이 노동자를 위한 노동단체가 쟁취해야 할 요구가 되고 있는 것이다.
4. 하지만 그것은 쉬운 길이다. 그날 토론회에서 나는 국민연금 수급연령에 맞춰 정년연장 입법추진해야 한다고 요구해서 투쟁하는 것은 쉬운 길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이기에 그걸 요구해서 관철하고자 투쟁하는 것은 이 나라 노동운동(단체)이 쉬운 길을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내가 말했던 것은 국민연금 수급연령이 늦춰지게 되면 근로자의 정년도 당연히 연장되게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을 거창하게 이 나라 노동운동의 요구로 내걸고 그걸 쟁취하겠다고 투쟁한다는 것이니 나는 쉬운 길을 가는 것이라고 비판했던 것이다. 세상에 어느 나라에서 국민연금 수급연령을 늦추면서 노동자의 정년을 연장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그런 나라가 있다는 걸 나는 들어보지 못했고, 이 나라에서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쉬운 길을 가고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국민연금 수급연령이 늦춰져도 정년은 연장되지 않고 지금처럼 근로자의 법적 정년이 60세로 유지될 것이라고 당신이 믿는다면 어쩌겠는가. 어디까지나 당신과 내가 믿음을 달리하고 있다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말이다. 현재 정부가 하고 있는 국민연금 개혁방안의 추진을 위해서라도 고령자고용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이 나라 근로자의 정년은 연장될 것이라고 본다. 4일 보건복지부는 윤석열 정부의 국민연금 개혁안을 발표하면서, 국민연금 의무가입 기간을 59세에서 64세로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개혁안을 추진하면서 근로자의 정년을 60세로 그대로 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재정 안정을 위해서 64세로 의무가입기간을 상향하면서 그보다 훨씬 일찍인 60세에 정년으로 퇴직토록 이 나라 근로자의 정년제도를 시행한다면 그동안 보험료 납부를 통한 국민연금 재정 확보는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이고, 재정 안정 운운하는 국민연금 개혁은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국민연금 의무가입기간이 64세로 상향되면 그에 따라 당연히 근로자의 정년도 연장될 것이라고 보고, 국민연금 수급연령에 맞춰 근로자의 정년연장을 요구해서 투쟁하고자 하는 이 나라 노동운동단체의 길은 쉬운 길을 가고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지난해 현대자동차에서 노조가 정년연장을 요구해서 투쟁한다고 밝혔을 때, 나는 그 투쟁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 뒤 정년연장 없이 성과급 지급, 임금인상 등으로 임금·단체협상이 마무리된 데 실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이 나라에서 조직력과 투쟁력 있는 노조가 정년연장을 쟁취해 내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야 다른 사업장에도 정년연장을 요구해서 투쟁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야 법적 정년을 넘는 정년이 이 나라 노동자들에게 보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수급연령·의무가입 기간에 따라서가 아니라, 그 상향 여부와 관계없이 이 나라 노동자는 60세에 퇴직해서 사업장에서 추방되지 않도록 노동자의 고용보장을 위해서 이 나라 노동조합이 할 일을 하기를 바라고 있다. 현대차 등에서 많은 퇴직노동자들이 재고용되고 있다. 그런데 정년연장 없이 사용자가 정년퇴직한 노동자를 재고용토록 하는 것은 노동자·조합원의 고용안정 내지 보장을 위한 노동조합의 일을 방치하는 것이다. 만약 노동조합이 퇴직노동자의 고용을 위해 요구해서 재고용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앞에서 말한 국민연금 수급연령 내지 의무가입기간의 상향에 따른 정년연장과 마찬가지로 노동조합이 쉬운 길을 가고 있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