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약자’가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 싸워야 할 때
김혜진(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윤석열 정부는 ‘노동약자 보호’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생각하는 노동약자는 누구일까? 8월7일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주최한 ‘노동약자 지원과 보호를 위한 제도개선 토론회’에 발제를 한 권혁 교수는 ‘노동약자’로 영세사업장 노동자, 자영적 노무제공자, 헌법상 단결권 행사가 어려운 노동자를 꼽았다. 이 노동자들이 노동조건이 열악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렇게 된 이유를 질문하지 않으면, 이들의 어려움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고정되고, 왜곡된 해법이 나온다.
예를 들어 영세사업장의 지불능력은 왜 부족할 수밖에 없나? 5명 미만 사업장이어도 지불능력이 있는 사업장이 있고, 기업을 쪼개거나 ‘가짜 3.3’ 채용을 해서 5명 미만 사업장으로 위장한 경우도 있다. 영세사업장의 지불능력이 부족한 이유가 비싼 임대료나 원청의 단가인하 압력 때문일 수도 있다. 모두 정부가 나서서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개선은 회피한 채 영세사업장은 지불능력이 부족하니 노동자들의 권리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전제한 후, 노동자들에게 일부 지원을 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자영적 노무제공자’라는 말도 문제적이다. 기업들은 과학기술 발달과 작업조직의 변화를 이용해 노동자성을 부정하고 사용자책임을 은폐해 왔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노동자임을 증명하고, 진짜 사장에게 교섭 책임을 묻기 위해 긴 싸움과 긴 소송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자영적 노무제공자’라는 규정이 제도화되면, 노동자 일부는 ‘자영적 노무제공자’가 돼 권리의 일부를 제한당하는 것이 당연해진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파견법·기간제법을 제정해 비정규직을 양산했던 것처럼 이제는 ‘자영적 노무제공자’군이 확대될 것이다.
정부는 ‘지역과 장소, 시간의 이질성과 상호경쟁성 때문에 단결권 행사가 어려운 노동자’를 보호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프리랜서·플랫폼 노동자들은 그런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노조로 뭉치고, ‘노동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사용자를 찾아 교섭을 요구해 왔다. 헌법에 보장된 단결권 행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노동자가 있다면 정부가 제도를 고쳐서 단결권 행사를 도와야 한다. 그런데 단결권 행사가 어려운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를 위해 개정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는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분쟁조정을 지원’한다거나 법률적 효력이 있는 협약체결에는 이르지 못하는 ‘교섭권 설계’ 따위를 하겠다는 것이다.
‘노동약자 보호’ 주장은 기업의 책임을 은폐한다. 권혁 교수는 ‘노동약자’에 대한 정부의 역할을 이야기하며, 상호부조 지원이나, 표준계약서 마련 등 분쟁조정 지원, 경력인증이나 사회안전망 포섭 지원, 직업능력 향상을 위한 교육훈련 지원을 대책으로 내놓는다. 이 안에 노동자들을 불안정하게 만들어서 더 많은 이윤을 취하는 기업의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노동자들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면서도 사용자로서 책임지지 않는 기업에는 어떤 책임을 지우고 있는가?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의 책임을 감추고 있으니, 정부 정책은 모두 ‘지원’일 뿐이고, 정부가 내놓는 정책은 실효성이 없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약자’ 프레임으로 영세사업장 노동자,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들을 시혜의 대상으로 만들려고 한다. 이들이 노조를 만들어서 투쟁할 때에는 탄압해 주저앉힌다. 윤석열 정부는 특수고용직 노조에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를 씌우고,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해 주저앉히려고 했다. 노동자들은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서 싸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싸움은 온전하지 않은 지금의 노동권 범주 안에 포함되기 위해 소송하고 증명하는 싸움을 넘어서야 한다. 우리의 투쟁이 모든 노동자의 보편적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동권을 확장하기 위한 대안 논의도 더 치열해야 할 것이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work21@jinb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