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노동자 몸 상태 그대로, 장애등급 ‘하향’ 법원 “위법”

근로복지공단 돌연 등급 조정 … 법원 “장해 성격 달라지지 않아”

2024-09-04     강석영 기자
▲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산재노동자의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는데도 근로복지공단이 기존 심사자료를 근거로 장해등급을 낮췄다면 위법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재판정까지 했는데 3년 뒤 5급→7급 하향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6단독(윤성진 판사)은 윤아무개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장해등급 결정취소 및 재결정처분 취소청구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 판결했다.

윤씨는 2012년 11월 오토바이로 음식점 배달 업무를 하던 중 교통사고로 사지 기능이 일부 마비됐다. 혼자 걸을 수 있었으나 균형감각 저하로 장거리는 어렵고, 오른쪽 손가락 강직 등으로 일상생활 능력 일부가 제한된다는 의학적 소견이 나왔다. 윤씨는 업무상 재해라며 2015년 2월 공단에 장해급여를 청구했다.

공단은 장해등급 5급8호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신경계통의 기능 또는 정신기능에 뚜렷한 장해가 남아 특별히 쉬운 일 외에는 할 수 없는 경우를 뜻한다. 통합심사회의를 통해 명백한 척수증상으로 노동력이 일반인의 4분의 1정도 남은 사람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윤씨의 재심사 청구에서도 공단은 2018년 1월 같은 등급으로 판정했다.

그런데 공단은 돌연 판정을 취소하고 장해등급을 7급4호로 낮췄다. 신경계통의 기능 또는 정신기능에 장해가 남아 쉬운 일 외에는 할 수 없는 사람을 말한다. 앞서 나온 등급과 비교해 ‘뚜렷한’ ‘특별히’라는 말이 빠진다. 공단은 2021년 8월 최초 판정 및 재심사 자료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사지 근력이 정상에 가깝다’ ‘양 손가락으로 휴대폰 게임을 할 정도로 미세 동작이 가능하다’ 등 의학적 소견을 발견했다. 또 윤씨가 퇴원 직후 장애인등록신청을 거부당한 점, 2종 보통 자동차 운전면허를 취득한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장해 경중 판단이지, 본질적 차이 없어”

법원은 노동자 손을 들어줬다. 윤성진 판사는 “최초 판정부터 재판정까지 윤씨의 장해는 일관되게 평지에 한해 독립보행은 가능하나 균형감각 저하로 장거리 보행이 어렵고, 계단 오르내리기는 보조가 필요하며, 오른쪽 손가락 강직 등 사지 마비로 일상생활 능력이 일부 제한된다는 것으로서 거의 변화가 없었다”며 “윤씨의 상태는 이 사건 처분 당시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2회에 걸친 장해판정이 명백히 잘못된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앞선 판정과 뒤의 판정 차이는 주관적 판단이라고 짚었다. 윤 판사는 “최초 판정 및 재판정에서 윤씨 장해를 ‘뚜렷한 장해’로, 제한되는 업무는 ‘특별한 쉬운 일’로 봤고, 이번 사건 처분에선 각각 ‘장해’ 및 ‘쉬운 일’로 평가됐다”며 “이는 장해의 정도와 그로 인한 노동능력상실 정도의 경중 판단이지 각 등급에 해당하는 장해의 성격에 어떤 본질적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고 판단했다.

이어 “법원 감정의도 어떤 장해상태가 5급에 해당하는지, 7급에 해당하는지 상당히 주관적 판단이고, 윤씨의 장해 상태를 7급에 해당한다고 보면서도 자신의 주관적 판단임을 밝혔다”며 “그렇다면 최초 판정이나 재판정이 장해를 5급으로 평가했다고 이를 명백한 잘못이라거나 객관적 위법부당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윤 판사는 아울러 기존 의무기록을 바탕으로 앞선 판정들을 내린 점, 장애인등록 거부나 자동차운전면허 취득은 최초 판정 이전에 이뤄진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이 사건을 담당한 김용준 변호사(법무법인 마중)는 “장해등급 5급과 7급은 장해 정도와 그로 인한 노동능력상실 정도의 경중 판단이지 각 등급에 해당하는 장해의 성격에 어떤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