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는 공익사업, 섬 발전노동자 노고 알려지기를”
근로자지위확인 소 제기하고 해고당한 184명의 노동자들
2018년부터 섬에서 발전기를 돌린 박시영(32)씨는 그저 “고향이, 섬이 좋아서” 이 일을 택했다. 39년 동안 도서발전 노동자로 일한 아버지 영향도 컸다. 주민들과 가족에게 없어서는 안 될 전기를 공급해 온 아버지를 보며 사명감을 갖게 됐다. 그렇게 육지에서 학교를 다니다 2018년에 서해 5도로 꼽히는 백령도에서 일을 시작했고 재작년 고향인 소청도로 돌아왔다.
그의 소속은 한국전력공사의 하청업체인 ㈜JBC였지만 한전 직원과 직접 소통하는 일이 더 잦았다. “지사 직원이 카톡이나 전화, 현장에 나와서 업무를 지시하는 일이 너무 많았어요. 심지어는 해고 전날까지도 저한테 연락하더라고요.” 그는 몇 년간 경험과 확신을 바탕으로 아버지와 함께 한전을 상대로 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단에 참여했다. 부자는 나란히 지난 14일자로 해고됐다. 박씨 아버지는 올해가 정년인데 39년 일한 회사에서 퇴임식과 위로패 하나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아기도 못 보고 병원도 못 가는 섬 발전노동자의 고단한 삶
아내와 3살 난 아이가 있는 박씨는 아이가 태어날 당시에도 3주 가까이 아이를 보지 못했다. “서해 5도는 365일 중에 100일은 배가 안 뜬다고 보면 돼요. 아내가 육지에서 애를 낳고 배가 안 떠서 아내를 보질 못했어요. 이후에는 코로나19 때문에 병원 출입이 안 되더라고요.”
전력에 기반한 섬 주민들의 일상은 이같은 발전노동자와 가족의 희생 위에 가능했던 셈이다. 수년 전 박씨 아버지는 근무시간에 가슴 통증을 느꼈지만 배가 뜨지 않아 9시간 만에 병원에 도착했다. 심근경색으로 자칫 더 늦었다면 생사를 오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박씨는 “태풍이 온다 하면 발전노동자들은 가능한 섬에 머물며 온갖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며 “섬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주민이 10명도 안 되는 작은 섬은 빗물을 받아 생활할 정도로 어려운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며 “뿌듯함으로 선택한 길이고 고향이 좋아 유지했지만 불편한 점도 있다”고 덧붙였다.
박씨와 해고된 동료 184명은 지난 27일부터 서울에 올라와 국회와 용산 대통령실에서 결의대회를 열었다. 억울하게 해고된 자신들의 사정과 뜻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고 있다. 박씨는 “전기는 공익사업으로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인데 섬이라는 특수 지역에 있다 보니 소외되는 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에서 1분 정전되는 것과 십여 명이 거주하는 섬에서 정전되는 게 다른 문제로 여겨지는 현실이 아쉽다”며 “파급력 차이는 있겠지만 많은 국민이 알아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184명 해고는 집단 학살”
한전의 하청업체로 30년간 도서발전업무를 수행해 온 노동자들이 지난 27일에 이어 28일 결의대회를 열었다. 공공운수노조 발전노조 도서전력지부(지부장 최대봉)는 이날 오전 서울 중구 한전 서울본부 앞에 모여 직접고용을 촉구했다.
최 지부장은 “한전의 절반 수준인 월급과 열악한 섬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섬을 지켰던 것은 오로지 내 고향과 내 형제들을 지킨다는 자부심 덕분이었다”며 “고령 인구가 많은 섬에서 우리는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며 생활해 왔다”고 말했다.
강성규 노조 공공기관사업본부장은 “해고는 살인이라고 했는데 무려 184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은 살인이 아닌 집단 학살”이라며 “전국 65개 섬에 흩어져 70만 섬 주민에게 품질 좋은 전기를 공급해 온 노동자들을 해고한 한전은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부 조합원 184명은 지난 14일자로 해고됐다. 이들은 한전 퇴직자 모임인 한국전력전우회가 100% 출자한 JBC 소속으로 30여년간 한전의 지휘를 받고 일해왔다. 지난해 6월 법원이 한전과 이들의 불법파견 관계를 인정하는 1심 판결을 내리자 한전은 이들에게 2심 소송을 포기하고 자회사인 한전MSC로 전적할 것을 압박했다. 한전은 JBC와 수의계약을 종료했고 JBC는 끝내 근로계약 관계를 종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