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층위원제 실험, 미수에 그친 혁신 ③

2024-08-05     박태주
▲ 박태주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계층위원은 사회적 대화에서 대표되지 않는 다수를 대표한다. 그리해 사회적 대화의 대표성을 높이고 미조직 취약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정상 궤도에서 벗어났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조직의 활력을 더하는 존재, 말하자면 일종의 아웃라이어(outliers)인 셈이다. 하지만 계층위원제는 양대 노총 조직대표 2명을 능가하는 계층위원의 과잉 대표성, 그리고 계층대표가 갖는 대표성과 책임성의 결여라는 한계를 갖고 있기도 하다. “계층위원들은 누구로부터 선출됐으며 누구를 대표하는가” 그리고 “계층위원은 그들의 결정에 대해 누구한테 책임을 지는가”라는 게 그것이다.

다양한 해법을 구상할 수 있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계층위원을 양대 노총 조합원으로 위촉하는 방안도 그 하나다. 사실 양대 노총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노조의 존재가 노동자의 단결·연대라는 점에서 바람직한가도 의문이지만 양대 노총 바깥에서 여성·청년·비정규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대표를 찾는 것이 현실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다. 다른 한편 양대 노총 조합원으로 계층위원을 위촉하면 미조직 취약노동자의 이해가 결국 양대 노총에 의존한다는 한계는 그대로 남는다. 양대 노총이 대변하지 못하는 노동자의 이해를 사회적 대화에 반영한다는 계층위원제 도입 취지가 희석될 수 있는 탓이다(2019년 10월, 탄력근로제 사태를 겪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재구성할 때 노동측 계층위원 3명 가운데 2명은 한국노총 조합원으로 위촉됐다).

조직노동자 대표의 수를 늘려 계층위원이 갖는 과잉 대표성을 해소하는 방안도 있다. 계층위원을 계층위원회에서 선출함으로써 최소한의 대표성과 책임성을 확보하는 방안도 그 하나다. 이 경우 계층위원회는 양대 노총 안팎의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학계 및 전문가 등으로 구성해 최소한이라도 사회적 대표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국노총 “협의구조와 합의구조로 이원화하자”

계층위원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한국노총은 경사노위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방식으로 구성하자는 제안을 내놨다. 주지하다시피 유엔 안보리는 5개의 상임이사국과 10개의 비상임이사국으로 구성된다.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 등으로 구성된 상임이사국은 개별적으로 거부권을 갖는다. 국가 간 권력 불평등을 제도화한다는 비상임이사국들의 비판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노총의 주장은 이랬다. 경사노위를 협의구조로 운영하되 합의가 필요할 경우에는 별도의 합의기구를 거치자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위원회의 위원을 핵심대표와 일반대표로 나눠야 한다. 핵심대표는 경사노위 위원장 및 상임위원과 근로자·사용자·정부를 대표하는 위원 각 2인 등 8명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각각 거부권을 갖는다. 계층위원은 공익위원과 함께 일반대표로 분류된다.(2018. 2. 28.)

사회적 대화기구를 이원화하면 ‘사회적 대화=협의’라는 협의 중심의 운영원칙과 함께 노사 중심성의 원칙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게 한국노총의 주장이었다. 특히 이행과 관련해 아무런 권한과 책임도 없는 일반대표가 합의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계층위원의 역할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자신들의 이해를 표현할 수단(조직)을 갖지 못한 노동자를 대변하는 일이다. 그런데 사회적 대화기구를 협의기구와 합의기구로 이원화하면서 계층위원을 합의 과정에서 배제하겠다는 것은 취약노동자의 이해를 합의 과정에서 배제하겠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존중 사회 구축을 표방한 사회적 대화기구가 노동존중 사회 구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취약노동자를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계층위원제는 지배권력이 취약노동자를 형식적으로 동원한 위장참여(pseudo-participation)라고 항변할 수도 있었다.

사회적 대화기구의 이원화
오랜 논쟁을 재소환해야

사회적 대화기구를 이원화하자는 주장은 계층위원제의 도입 못지않게 오랜 연원을 갖고 있다. 이장원(2008)이나 최영기(2008)가 대표적이다. 특히 최영기는 상시적인 정책협의기구와 단속적인 협약기구(합의기구)를 분리해 운영하는 것이 사회적 대화 체제를 안정시키고 정부 정책의 효과성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합의기구와 협의기구의 분리를 주장한 대표적인 경우로는 임상훈·손영우(2017)를 들 수 있다. 당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의 발주로 수행된 연구에서 이들은 노사정위의 기능분화를 제안했다. 노사정위를 사회노동위원회와 사회정상회의로 나눠 전자는 협의·자문 기능을, 후자는 합의·교섭기 능을 담당토록 하자는 것이었다(<그림> 참조). 이어 2020년에 발표된 논문(손영우·임상훈, 2020)에서 그들은 협의 기능을 시민적 대화(civil dialogue)로, 합의 기능을 사회적 대화(social dialogue)로 나눈다.

사회적 대화기구를 협의구조와 합의구조로 분리해 운영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유럽의 경우 딱히 그런 것은 아니다. 프랑스의 경제사회환경위원회(CESE)와 사회정상회의, 아일랜드의 경제사회위원회(NESE)와 수상실 주도의 노사정 대표모임, 그리고 네덜란드의 사회경제위원회(SER)와 노동재단이 그런 예에 속한다. 특히 포르투갈에서는 노·사·정과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경제사회위원회(CES)와 노·사·정으로 구성된 사회협의 상설위원회가 한 기구 안에 공존한다. 남아공에서도 협의기능을 담당하는 국민경제발전노동위원회(NEDALC) 내에 소위원회를 구성해 합의 기능을 맡긴다(손영우·임상훈, 2020).

결과적으로 사회적 대화기구를 합의기구와 협의기구로 이원화하자는 안은 채택되지 않았다. 경사노위 위원들 사이에 권한의 차이를 둔다는 것은 계층위원에 대한 차별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이 주요한 근거였다. 사회적 대화기구의 구조와 운영방식을 복잡하게 만드는 게 바람직하지도 않거니와 위원 사이의 차별적인 권한이 협의기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계층위원의 과잉대표성과 책임성 결여라는 문제는 아무런 시정조치도 이뤄지지 않은 채 지금까지 과제로 남아 있다. 계층위원제 설계가 갖는 문제는 운영상의 문제까지 겹쳐 한순간에 폭발하면서 경사노위를 기능부전으로 몰고 가기도 했다(이는 후술한다).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의 설계가 시행착오를 드러냈다면 수정돼야 한다. 그중에서도 사회적 대화기구를 협의구조와 합의구조로 나누자는 제안은 계층위원제의 개선은 물론 사회적 대화기구의 민주성과 관련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tjpark0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