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조합원 개인 대상 손배 청구에 제동 건 판결

문성덕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

2024-07-31     문성덕
▲ 문성덕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

Ⅰ. 사실관계

원고는 용인시 처인구에 소재한 골프장을 운영하는 회사고, 피고들은 전국노동평등노동조합 신원CC지부(이하 ‘이 사건 노조’) 소속 조합원들로서 지부장·부지부장·사무국장 등의 직무를 담당하고 있다. 원고와 이 사건 노조는 2021년 10월5일부터 2021년 12월8일까지 12회에 걸쳐 단체교섭을 진행했으나 결렬됐고,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서도 4회에 걸친 조정회의가 있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조정중지’ 결정이 내려졌다. 이 사건 노조는 2022년 3월7일 이 사건 골프장의 로비 등 9곳에 대자보를 게시했고, 같은해 4월19일 골프장 로비, 이용객 출입로 등 6곳에 현수막 6개를 게시했다. 5월4일에는 골프장 로비 현관 앞에 천막과 확성기를 설치했다.

그러자 원고는 불법 쟁의행위로 인해 골프장 회원권 가치가 하락했으며, 준법투쟁에 따른 인원투입으로 초과근무수당 등의 비용이 증가했고, 골프장 내장객수 감소로 영업손실이 발생했다며 노조원 4명을 상대로 약 20억원(19억6천883만1천460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했다가, 소송 중간에 청구액을 약 3억원(2억9천832만9천700원)으로 줄였다.

Ⅱ. 판결 요지

원고가 이 사건 노조가 아닌 조합원 개인을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는 사정만으로는 소권남용에 해당해 부적법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원고는 피고들이 주도한 위법한 쟁의행위로 골프장 이용자가 주는 등 영업손실을 입었고, 노조원들의 연장근무 거부 비조합원들이 추가근무를 함으로써 초과근무수당 상당의 손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쟁의행위의 본질상 사용자의 정상업무가 저해되는 경우가 있음은 부득이한 것으로 쟁의행위가 정당성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 한 사용자는 이를 수인할 의무가 있다. 노조원들이 대자보 및 현수막을 게시하고 천막과 확성기를 설치한 것은 사실이나, 이로 인해 골프장 운영 업무의 정상적 운영이 저해됐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또한 노조가 확성기를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확성기를 통한 소음 송출행위의 시간 및 그 기간, 소음의 정도를 알 수 있는 자료가 없는 이상 골프장 운영이 저해될 정도의 소음 피해가 발생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 나아가 원고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이 사건 노조가 LPG가스·온수·에어컨 공급을 중단했다거나 노조 소속 조합원들로 하여금 연장근로를 거부하도록 지시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따라서 피고들의 주도로 위법한 쟁의행위를 했음을 전제로 하는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더 볼 필요 없이 모두 이유 없다.

설령 이 사건 노조의 대자보 등의 게시, 천막 및 확성기 설치행위가 위법한 쟁의행위에 해당하거나 위법하게 이 사건 골프장의 가스·온수·에어컨 공급을 중단했다고 하더라도, 원고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이 사건 노조의 위법한 쟁의행위로 인해 이 사건 골프장의 이용객이 다른 골프장보다 적게 증가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또한 이 사건 노조의 조합원들이 연장근로를 거부 내지 근무를 태만히 했는지 여부, 그로 인해 원고가 불가피하게 대체인력을 투입했는지 여부 등을 알 수 있는 자료도 없으므로, 조합원들의 부당한 연장근로 거부 내지는 근무태만으로 인해 원고가 비조합원들에게 초과로 지출한 근무수당이 6천28만6천700원에 이른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도 없다.

Ⅲ. 검토 및 판결의 의의

“피고들은 공동해 원고에게 금 19억6천883만1천460원과 이에 대해 이 사건 소장 부본 송달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2%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전국노동평등노동조합 신원CC지부 조합원 4명에게 날아든 소장의 청구취지다.

노조원들은 이 사건 소가 전형적인 봉쇄소송으로서 소권남용에 해당하므로 각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사는 조합활동 또는 쟁의행위에 따른 책임의 귀속주체인 노동조합이 아닌 조합원 개인들만을 상대로 20억원에 가까운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는데, 20억원은 원고 회사의 연간 영업이익을 상회하는 돈이었다. 이 사건 노조는 조합원 50명 남짓의 작은 단체였고, 사측의 부당한 단결권 침해에 대항해 대자보·현수막 부착, 준법투쟁, 천막 설치 및 확성기 사용 등을 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노조 집행부 4명이 무려 20억원의 손해를 발생시켰다는 주장은 법을 떠나 일반인의 건전한 상식에서 너무나 벗어난 것이었다. 기실 회사 스스로도 피고들 4명으로 인해 20억원의 손해가 발생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부터 그런 손해는 존재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사건 소의 유일한 목적은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를 통한 노조 압박 이외에 그 무엇도 아니었다. 소송 중간에 돌연 16억원이나 청구금액을 감축했다는 사실 자체가 원고의 진짜 목적이 ‘손해 보전’에 있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거액의 손배소 제기는 자본에는 거의 불이익이 없는 반면 (인용되면 거액의 배상은 물론 진정한 목적인 노조 봉쇄가 가능하며, 패소하더라도 소송이 진행되는 최소 2년간 노조 억압이라는 목적은 똑같이 달성한다) 피소당한 노동자는 자신은 물론 가족의 생계까지 위태롭게 만든다. 소권남용으로 각하돼야 할 많은 소가 그런 이유로 아무런 제한 없이 제기돼 왔는데, 본 사건도 전형적인 소권남용으로 봐야 마땅한 사례였다. 그러나 법원은 피고들의 본안 전 항변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의 재판을 받을 권리도 헌법상 기본권이며 회사의 소제기도 기본권 행사로서 쉽게 남용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본 사건에서 회사는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면서도 정작 손해액에 대한 입증은 게을리하는 등 ‘소제기 자체’와 이를 통한 ‘노동조합 활동 억압’이 소송의 목적임이 너무나 분명했다. 노동기본권을 제한할 것인가, 소권남용을 제한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손해 보전이라는 본디 목적에서 벗어난 전형적인 전략적 봉쇄소송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국가는 기본권 제한이 아닌 소권남용 제한을 도모함이 마땅하다. 이 사건을 소권남용으로 평가하지 않은 법원 판단에 아쉬움이 남는 이유이다.

다만 법원은 회사의 무리한 손해배상 청구를 전부 기각했다. 쟁의행위의 본질상 사용자의 정상업무가 저해되는 경우가 있음은 부득이한 것으로 사용자는 이를 수인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이 사건 노조가 대자보·현수막 게시 및 천막 설치, 확성기를 사용한 것으로 인해 골프장 운영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이 저해될 정도의, 수인 한도를 넘는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봤다.

한편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이 인정되려면 행위자의 고의 또는 과실(위법행위)과 이로 인한(인과관계) 손해의 발생이 모두 인정돼야 하며, 그 입증책임은 원고에게 있다. 따라서 노동조합의 활동(또는 쟁의행위)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건에서도 사용자가 행위자(노동조합·노동자)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위법행위, 인과관계, 손해의 발생 모두를 사용자가 주장하고 입증해야 한다. 본 사건에서 회사는 골프장 내장객이 감소했다는 주장, 골프장 회원권의 가치가 하락했다는 주장, 준법투쟁으로 비조합원들에게 지급한 초과근무수당이 6천만원이 넘는다는 주장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입증하지 못했다. 따라서 회사의 손배 청구가 기각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며, 이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민사 책임법의 일반 법리가 적용됐을 뿐 노조법 3조(손해배상 청구의 제한)의 문제로까지 나아갈 필요도 없었다. 손해와 인과관계의 입증을 두루뭉술하지 않게, 엄격하게 판단했을 뿐이다.

다만 이 사건에서 법원은 쟁의행위가 설령 위법하더라도 업무정상성을 저해했다는 분명한 증거가 없다면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함으로써 조합원 개인을 상대로 한 무분별한 손배 청구에 제동을 걸었다. 정당한 쟁의행위의 범위를 넓히고 위법한 쟁의행위더라도 조합원 개인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조법 3조 개정안의 취지와 맞닿아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