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놀던 너

장난감은 언제 내 삶의 영향력을 잃고 추억의 표지가 됐을까

2024-07-30     이재 기자
▲ 자료사진 이미지투데이

“얘는 남자애가 인형을 갖고 노네.”

그 말을 한 게 사촌누나였는지 친구네 형이었는지 놀러 온 삼촌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인형이 곰인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 말을 들은 뒤 인형과 멀어졌다는 것이다.

미취학 아동 시절 철없던 기억에 ‘동생’을 희구한 적이 있다. 인형을 끌어안고 내 동생이라고 우겼던 것 같다. 사람 형상이 아니었던 것은 분명한데, 그 복슬복슬한 감촉이 좋았는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꼬맹이 손에 얌전히 쥐어져 있는 것이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동생을 낳아 달라 조른 것도 아니었다. 위로는 두 살 터울의 형이 있고 내가 동생의 지위에 있으니 나도 형의 지위를 누리고 싶었던 단순한 복제의 욕망일지도 모른다. 오해를 막기 위해 미리 덧붙이자면 형은 그다지 권위적이지 않다.

남자애가 인형으로 놀면 생기는 일

그래서 인형 하나를 동생이라 지목했고 그 동생과 다른 인형을 앉혀놓고 있었더니 남자애가 인형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다. 당시의 감정이 떠오르진 않는다. 다만 그러면 안 되는 것 같아서 멀어졌다. 그 인형이 동생노릇을 겨워했는지는 모르겠다. 그 인형이 어느 소각로에서 태워졌는지도 알 길이 없다. 아마도 이름도 붙였던 것 같은데.

어릴 때 많은 장난감을 갖고 놀 만큼 유복하진 않았지만 종종 하나씩은 있었다. 때론 인형이었고, 때론 비비(BB)탄총이었고, 미니카일 때도 있었다. 레고도 한 바구니 갖고 있었다. 그 시절에는 환경호르몬이나 발암물질 같은 것을 잘 몰랐던 때라 플라스틱 장난감을 물고 빨기도 했다.

인형을 갖고 놀던 시절의 단편적인 기억 몇은 인형에게 밥을 먹이거나 이불을 덮어주는 것 따위였다. 다른 인형보다 동생으로 지목한 인형에게 유독 애착이 닿았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이름을 붙여주자 나에게 와 동생이 됐다(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갑자기 미안하다).

그런 놀이는 일종의 역할 놀이였는데 나는 그가 나와 마찬가지로 감정을 느낀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먹지도 않는 밥을 먹이려 애를 쓸 정도로 억지는 아니었다. 그와 나의 한계는 명확했고 그래서 나는 “남자애가 인형” 한 마디에 그를 버릴 수 있었다. 어쨌거나 그는 아무런 말도 없었던, 공산품에 불과했지만 두 고정관념을 각인시켰다. 바로 사회와 성역할.

장난감 수갑과 레고가 알려 준 것은

유아기를 넘어가며 학교에 입학하고는 장난감 자체보다 놀이도구를 더 자주 손에 쥐었다. 그 도구는 구슬일 때도 있었고, 그저 아무런 의미 없는 작대기일 때도 있었고, 종이로 만든 원형 딱지일 때도 있었다.

경찰놀이도 자주 했다. 어떤 동네에서는 도둑놀이라고도 하는 것 같던데, 어떤 이름이었든 규칙은 술래잡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학교 앞 문방구에는 이런 일종의 역할놀이 몰입감을 증폭시킬 장난감들이 다수 포진해 있었다. 그중 단연 1위는 수갑이었다. 경찰봉, 경찰 배지, 경찰모 같은 다양한 아이템 중에서도 내 손으로 잡은 도둑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는 것은 꽤 흥분되는 일이었다. 물론 반대의 좌절감도 컸다. 어릴 때는 달음박질을 잘해 잘 잡고 잘 피했던 것 같다. 한 번은 수갑의 플라스틱 열쇠가 부러져 수갑을 풀지 못한 채 수업에 들어간 기억도 있다. 그런 놀이 탓인지 학급에 사내아이 대여섯은 꼭 장래희망으로 경찰을 썼다. 도둑은 없었다. 어쩌면 장난감과 놀이가 합작한 직업체험일지도 모르겠다.

더 나이가 들어, 그러니까 TV 만화영화 ‘꼬비꼬비’ 대신 ‘마법소녀 리나(원제 슬레이어즈)’를 보던 시절에는 레고를 갖고 놀았다. 레고는 또 다른 기억을 선사했다. 이전의 장난감은 모두 만들어진 것이었는데 요놈은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USS 엔터프라이즈(미국 드라마 스타트렉 시리즈에 나오는 우주선)를 사면 잘게 만들어진 블록이 있고 이걸 잇고 끼워 USS 엔터프라이즈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레고의 재미는 그 이후다. 나는 수집이나 전시의 취미는 없었기 때문에 USS 엔터프라이즈를 한번 만들면 그 뒤에는 내 마음대로 블록을 조립했다. USS 엔터프라이즈 하나 만들 블록으로 내가 마음대로 이어 붙인 우주선 두 개는 만들 수 있었다. 그게 더 근사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레고 놀이는 오래가기 힘들었다. 레고는 좀 비쌌다. 드래곤에 타고 있는 기사 한 조각을 사려면 1만원짜리 지폐가 필요했다. 어린 시절 내게 적지 않은 돈이다. 시내 완구점에서 레고를 사 달라고 조르다 혼난 기억이 있다. 부모님을 졸랐던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 기억이다. 과장하자면 그때 시장경제를 알게 됐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결국 그 레고를 사기 위해 심부름값 따위를 100원, 500원 돈을 모았기 때문이다. 시골 꼬마에게 용돈이라는 건 없었던 터라 모두 ‘임노동’으로 벌어야 했다. 그 시절 돼지저금통엔 금리가 없어서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그 시절 은행에 맡겼다면 두 자리 수 이자가 붙었을 텐데.

오롯이 몰입한 장난감이 남겨 준 자아

기억이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때 추억이 된다. 현재 장남감 소비자는 어른아이(키덜트)나 육아 최전선의 부모들이다. 또 다르게는 장난감을 통해 IQ를 증진할 수 있다며 캐릭터 상품을 파는 사교육업체다. 그렇게 장난감은 육아를 위한, 추억을 위한, 이윤을 위한 도구나 표상으로 자리하고 있다.

정말 그럴까. 한 편의 기대가 남는다. 나는 할 수만 있다면 그 인형을 놔버린 아이에게 “지지 마”라고 말해주고 싶다. 경찰 수갑을 채우던 아이에게는 다른 다양한 역할놀이도 권해주고 싶다. 그 장난감에 오롯이 몰입하며 교감하던 그 경험은 빛바랜 추억이 아닌 현재의 인격을 구축한 기억으로 잔류했다. 오늘은 오랜만에 로봇을 조립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