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헌호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장] “현장에서 보자고 반기는 동료들, 승소 실감”
아사히글라스(AGC화인테크노한국)에서 일하다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해고돼 9년간 거리에서 농성한 사내하청 노동자 22명이 마침내 다음달 1일 다시 출근한다. 2015년 5월29일 노조를 만들었고, 같은해 6월30일 해고된 이들이다. 노조를 만들고, 쫓겨날 때 비정규직이던 노동자들은 지난 11일 대법원 선고로 불법파견이 인정돼 더는 비정규직도 아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인근에서 차헌호(51·사진) 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대법원 승소에도 사용자쪽 노조 무시 여전”
- 다음달 1일 소송 뒤 첫 출근을 한다. 사용자쪽과 갈등이 있는 상황인데.
“그렇다. 11일 대법원 선고심 뒤 사용자쪽에 출근 시기와 노조활동 보장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는데, 사용자쪽에서는 고용관계가 형성됐기 때문에 바로 출근하라고 하더라. 출근하지 않으면 무단결근이라고 했다. 9년의 세월 동안 뇌출혈로 쓰러진 노동자도 있고 외국에 취업해 일하는 노동자 등 다양하다. 투쟁만 했던 사람들도 9년간 투쟁을 정리하고 출근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한 달 정도 시간을 달라고 요청하려 했는데 바로 출근하라고 하고 있다. 최근에도 다시 공문을 보내 결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간에 고용노동부가 중재를 하기도 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그래서 우선 8월1일 출근하기로 했다. 앞서 오랜 기간 불법파견으로 문제가 됐던 사업장들은 출근을 위해 시간을 준다. 동양시멘트는 두 달가량 유급휴가를 준 것으로 안다. 현대·기아자동차도 곧바로 출근시키지 않는다. 전혀 대화가 되지 않는다.”
- 무리한 요구를 하는 이유가 있다고 보나.
“아무래도 노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 아니겠나. 사용자쪽에서 출근을 요구하면서 보낸 공문 수신자가 금속노조가 아니라 차헌호 외 21명으로 돼 있다. 출근 요청을 하고 결근 시 조치까지 미리 공문에 단서로 달아 보낸 것은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래도 대법원 판결에 격앙된 것 같다. 애초에 9년 전 노조를 인정하지 않아 발생한 문제인데 또 다시 인정하지 않으려는 셈이다.”
- 현재 아사히글라스 상황은 어떤가.
“지난해 하청업체 두 곳과 계약을 해지하고 비정규직과 계약을 또 해지했다. 일부 공정에서 일이 없어지면서 인원을 줄였는데 현재는 생산라인 하나를 더 줄이려는 것 같다. 4개 가마 가운데 1곳의 생산을 중단한 것으로 안다. 그래서 생산직 600명 중 200명 정도 휴직했다. 사용자는 이들을 희망퇴직 시키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인원이나 금액 조건은 도출되지 않은 것 같다. 하필 비정규 노동자가 소송 끝에 정규직으로 공장에 돌아가는 시점에 희망퇴직을 진행하는 것도 역설적인 대목이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대응할 작정이다. 노조를 파괴한다고 수백억 원을 가져다 썼다. 매년 배당금을 일본으로, 그것도 적자가 나도 가져가면서 정작 국내 공장은 어렵다고 20년간 일한 노동자를 구조조정하려는 시도가 정상인가. 이런 입장의 선전물을 배포하고 문제제기도 하고 있다.”
희망퇴직으로 어수선한 아사히글라스
- 복수노조 상황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 600명 정도 규모의 노조가 있다. 생산직이 600여명이라 사실상 대부분 가입돼 있다. 같이 대화를 해 보려 시도했지만 현재까지는 만나지 못했다. 다만 희망퇴직 등으로 공장 내부 분위기는 어수선한 것으로 안다. 어쨌든 아사히글라스의 불법행위를 바로잡고 이겨서 돌아온 노동자와 노조다. 가입 의사가 있는 것 같다. 과거에는 출근선전전 당시 홍보물을 30장도 못 돌렸는데 요새는 200장씩 나간다. 어떤 노동자는 출근을 언제 하는지 묻기도 한다. 해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9년 전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그간에는 (우리가 홍보물을 나눠 줄 때) 자동차 창문도 열기 어려워하다가 이제는 고생했다고, 오랜만이라고, 현장 돌아가서 보자고 할 때 승소를 실감한다.”
- 노조 결성 당시 공장은 어땠나,
“처음 비정규직으로 들어갈 때 서른다섯 살이었다. 다른 기업 정규직으로 일하다 비정규직으로 입사했는데 처우가 너무 심각했다. 일하다 실수하면 징벌조끼를 입혔고, 점심시간은 20분 밖에 주지 않아 늦으면 노동자끼리 싸움이 났다. 권고사직도 수시로 이뤄졌다. 노조를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노조를 만들자마자 일주일 만에 138명이 가입해 노조가 안정화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연 조합원들을 휴가를 보내더니, 문자로 해고하고 용역을 정문에 100명 정도 배치해 진입을 막았다. 하청 노조와 교섭하고 임금을 올리면 될 것을 노조 혐오를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결국 임금만 100억원 이상 물어 줘야 하고, 그간 쓴 소송비용도 있으니 엄청난 손해를 보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받은 셈이 됐다.”
- 긴 싸움 끝 승소의 소회는 어떤가.
“굉장히 기쁘고 행복하다. 소수노조도 민주노조 깃발을 지킬 수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 기쁘다. 특히 외국인 투자기업과 싸워 승리한 것에 자부심이 있다.”
“투쟁 원동력 연대, 소성리 투쟁 가슴에 남아”
- 투쟁을 이어 온 원동력 중 하나가 연대다.
“맞다. 지금도 가슴에 남아 있는 투쟁이 있다. 소성리다. 소성리가 아니라 성주군청에서 사드 투쟁을 시작할 때부터 연대를 시작했다. 사드 배치와 관련한 소성리 투쟁은 국가를 상대로 한 것이라 우리보다 어렵고 힘든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어르신들과 연대자들이 장기간에 걸쳐 싸우고 있다. 이곳에 연대하면서 우리의 싸움은 사드와 비교하면 크지 않다는 상대적 위안을 얻기도 했다. 톨게이트 투쟁도 있다. 투쟁하던 노동자를 이간하기 위해 사용자쪽이 입사연도를 기준으로 고용과 처우를 달리하는 제안을 했다. 그로 인해 투쟁단위가 동요하는 것을 보면서 그런 자본의 갈라치기 획책을 학습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아사히글라스 노동자들은 그런 획책을 분쇄할 수 있었다.”
- 투쟁 기간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 활동도 열심히 했는데. 앞으론 어떤가.
“지금 시기 우리 사회 노조의 방향은 비정규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보편적 노동자상은 이미 비정규직이 됐다. 그럼에도 민주노총의 운동 주체는 여전히 정규직이고, 비정규직은 소외돼 있다. 비정규직이 운동 중심에 서서 운동을 이끌어야 한다. 이제 복직을 해 예전만큼은 못할 수도 있지만 비정규직 의제를 지키고 당사자 목소리를 내는 투쟁을 같이 만들어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