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양극화, 대기업·정규직노조 탓 마라
우리나라의 최대 화두가 노동시장 양극화 또는 이중구조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 간 양극화와 이중구조를 지적한다. 가장 큰 타깃은 대기업 정규직인데, 그중에서도 현장 노동자로 노조의 보호를 받아 임금 등의 근로조건이 과도하게 높다고 대기업 정규직 노조 탓을 한다. 대통령도 장관도 그렇게 지적한다.
근로조건은 기업의 노사가 협의해 결정하고 있다. 노조가 아무리 높은 근로조건을 요구해도 기업이 그것을 감당할 만한 이익이 나지 않으면 합의해 주지 않는다. 높은 근로조건은 기본적으로 노동자나 노조의 탓보다는 사용자의 탓(덕택)이다. 그런데 대기업 사용자에게 노동시장 양극화의 책임이나 원인을 묻는 일은 거의 없다.
대기업의 높은 근로조건은 기업이 지급할 수 있는 비용을 벌기 때문이다. 그만큼 경쟁력이 있는 것이다. 한일 비교라는 측면에서 보면 첫째, 우리나라 대기업은 규모의 경제성을 크게 발휘하고 있다. 공장을 지을 때 대규모로 건설해 매우 생산성이 높다. 정부가 건설 부지와 전기, 상·하수도 등 인프라 시설 건설을 다양하게 지원해 높은 생산성을 뒷받침해 왔다. 또한 높은 생산성으로 낸 이익을 통해 더 높은 생산성으로 이어지는 최신 설비 도입 등 설비 합리화와 자동화를 통해 끊임없이 생산성을 높여 왔다.
둘째, 글로벌화다. 외환위기 극복 때 정부 주도로 빅딜을 추진해 문어발식 재벌경영을 특화된 전문영역 재벌로 재편해 특화된 분야에서 규모의 경제성을 크게 높였다. 이에 따라 급속히 글로벌화가 진행돼 전 세계적으로 판매를 확대할 수 있어서 이익을 크게 올릴 수 있었다.
셋째, 글로벌 가치사슬의 실효성 극대화다. 대기업 중심으로 지산지소(地産地消)에 맞는 글로벌경영을 하고 있다. 판매뿐만 아니라 생산도 지산지소에 맞춰 가장 적합한 지역에서 전개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질 좋은 소재·부품·장비(소부장)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매해 최종 소비재를 생산하면서 높은 이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우리나라의 경우 약 10% 전후로 일본의 4% 전후보다 두 배가 넘는다. 우리나라의 대일 무역적자는 지속해서 대부분 소부장에서 나는데, 우리나라 대기업이 일본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경쟁력 격차이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앞서 언급한 대로 경쟁력 및 이익률이 높은데 중소기업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이 대기업이 원하는 소부장을 생산·공급하고 있는지, 또한 고부가가치 경영을 하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대 일본 소부장 의존을 고려하면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낮은 것이 문제다.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기술 탈취, 단가 후려치기 등의 문제가 지적된다. 이를 시정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부 정책이 필요하다.
대기업의 높은 근로조건은 노동자·노조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시장에 맞게 대기업이 경영을 잘해 높은 이익을 올렸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 측면에서 대기업의 높은 근로조건은 대기업 경영자를 칭찬할 좋은 지표다.
노동시장의 양극화·이중구조 문제 해결은 대기업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의 근로조건을 높이는 형태로 해결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경제사회의 지속가능성에 기여하는 것이다. 정부가 우선 취할 조치는 5명 미만 근로기준법 적용,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이나 특수고용직·프리랜서 권리증진 같은 노동약자의 권리와 근로조건을 높이는 정책이다. 대기업 정규직노조가 기득권을 지키는 것은 당연하며, 경쟁력과 수익성이 높은 기업경영 때문에 가능하다. 또한 국가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많은 소득세, 내수경제 활성화, 지역경제의 튼튼한 버팀목, 정부의 사회복지 지출 억제에 공헌 등.
노동시장 양극화가 문제라면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특정 노동조합을 약화시킬 의도로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합리적이지도 않고 부작용만 초래할 뿐이다. 대기업 정규직노조에 노동시장 양극화의 탓을 돌리지 말고 중소기업 노동자, 특수고용직·프리랜서 등 노동약자의 권익을 높이고 중소기업의 이익과 경쟁력을 높이는 실효적인 정책을 모색하길 바란다.
일본 노동정책연구연수기구 특임연구위원 (hs.oh362@jil.go.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