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 종식,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부터

2024-07-23     손민석
▲ 손민석 <지록위마의 시대> 작가

일찍이 헤겔은 삼권분립의 핵심은 분립에 따른 ‘상호 간의 견제’가 아니라, 그것들이 분립돼 있는데도 궁극적인 ‘통일’을 지향한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견제에 대한 강조가 자칫 국가의 분열로 이어지지 않을지 우려했던 것이다. 만약 삼권분립에 따라 나눠져 있는 각각의 국가기구들이 궁극적인 통일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면, 그때 국가는 그 자체로 특정한 업무를 수행하는 국가기구들의 단순한 집합체로 전락해 버릴 뿐만 아니라 종국에는 몇 개의 기구들로 해체돼 버릴 위험에 놓이게 된다.

지금의 한국 상황이 바로 헤겔이 우려했던 국가가 해체된 상황이 아닐까. 입법부를 장악한 야당과 행정부를 장악한 여당이 쉴 새 없이 충돌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입법부는 행정부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탄핵발의권을 남용하고 있고, 반대로 국민의힘의 행정부는 거부권을 남발하며 입법부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국가 그 자체는 이미 행정부와 입법부의 상호대립 속에서 해체돼 기능부전 상태에 빠져 버렸고, 사회는 입법부를 지지할지 행정부를 지지할지를 두고 분열돼 버렸다. 국가기구들을 다시 하나로 묶어 줄 접착제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가 보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국가를 통합시켜 줄 기제가 부재한 상황을 채우는 건 각각의 진영 내에서 통용되는 ‘정치적 서사’들이다. 예컨대 보수진영측의 서사를 정리해 보자면 민주당을 이끄는 이재명 대표는 사면초가의 상태에 놓여 있다.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들만 하더라도 대장동, 백현동, 성남FC, 선거법 위반, 위증교사, 대북송금, 법인카드 문제 등 상당하다. 하지만 이 중에서 무엇보다도 확실하게 유죄가 될 사안은 9~10월 즈음에 결과가 나올 선거법 위반 건이다. 대장동 사안과 관련해 실무자였던 김문기 처장을 전혀 모른다고 말한 게 빌미가 된 선거법 위반은 김문기 처장과의 관계를 입증하는 여러 증거자료들이 존재해 유죄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만약 유죄가 선고된다면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은 피선거권 박탈, 의원직 상실, 400억원대에 해당하는 선거비용 환수 등 여러 문제를 겪을 수밖에 없다. 보수진영은 이재명 대표가 상황을 타개하려면 재판 결과가 나오는 3개월 이내에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조기 대선을 실시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그렇게 입법부에서 발의되는 모든 법안들은 모두 이재명의 대선가도로 받아들여진다. 검사탄핵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의 확립이 아니라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 방해와 재판 방해 등으로,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 시도는 직권남용에 대한 징치가 아니라 대통령의 인사권을 박탈하고 언론을 장악해 탄핵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시도로, 채 상병 특검은 수사 외압 행사 및 개입에 대한 시정이 아니라 이재명의 조기 대선을 위한 탄핵 시도로 보이는 것이다. 이런 인식을 전제로 입법부 내 야당과의 협치가 가능할 리가 없다.

반대로 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지금의 한국의 정치적 상황은 행정부의 폭주 그 자체다. 야당들이 입법부 내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했더라면 윤석열 정부의 폭주를 견제할 수단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총선패배조차도 윤석열 정부를 변화시키지 못했다. 혹자는 민주당이 탄핵 발의권을 남용한다고 비판하지만 그것조차도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나 방통위원장 사임 등에 막혀 행정부를 견제하는 데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한국의 행정부·검찰·경찰·국가인권위원회 등의 모든 국가조직기구들이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과 같은 합리적인 요구에조차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보다 적극적으로 입법부의 권한을 행사해 행정부를 견제해야만 한다.

그렇게 입법부와 행정부가 각각의 정치적 서사를 전제로 극한의 대립을 펼치며 내전을 벌이고 있다. 이 내전에서 누구를 택할지, 선택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그에 앞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건 상대방의 서사에 대한 이해가 아닐까. 본인이 속한 진영의 서사에 매몰되지 않고 상대방의 서사에도 나름의 합리성이 존재한다는 걸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사회적 보편성을 회복해 나가는 계기를 만들어 내기를 바란다.

 

<지록위마의 시대> 작가 (fpdlakstp@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