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전노동자 갑상선암 ‘산재 불인정’ 항소심 판결에 상고

1심 인정, 2심 “업무와 인과관계 없어” … 노조 “입증책임 노동자 개인에게 전가”

2024-06-25     어고은 기자
▲ 어고은 기자

20년간 특고압 전자파에 노출돼 갑상선암이 발병한 배전노동자에게 업무상 재해를 인정한 1심을 뒤집고 최근 서울고법이 산재를 불인정했다. 1심 재판부는 연구결과가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업무상 상당인과관계를 쉽게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는데, 2심 재판부는 정반대의 결론을 내놓았다. 노동자는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활선작업 20년 “전자파에 노출, 스트레스 극심”

건설노조는 25일 오후 ‘산재보험 60주년 기념식’이 열리는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배전노동자의 갑상선암은 직업병”이라며 산재승인을 촉구했다. 노조에 따르면 갑상선암에 걸린 노동자 김아무개씨는 전날인 24일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했다.

김씨는 1995년부터 20년간 배전전기원으로 일하며 활선작업을 수행했다. 장기간 전기가 흐르는 전신주에 올라 송·배전선로 유지·보수를 담당한 그는 2015년 11월 갑상선 유두암 진단을 받았다. 김씨는 2만2천900볼트 특고압 전기가 통하는 상태에서 초저주파 자기장 등 전자파에 노출됐고, 감전사고 위험에 노출된 채 16미터 높이에서 전기자재 중량물을 옮기는 등의 고난도 작업을 수행해 강박감과 극심한 스트레를 받았다며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공단은 불승인했고 김씨는 2021년 1월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연구결과 불충분해도 인과관계 부정 못해”
2심 “극저주파 전자기장-발병 인과관계 없어”

1심 재판부는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 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이 사건 상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는 없다”며 노동자 손을 들어줬다. 그런데 2심 재판부는 “극저주파 전자기장이 갑상선암의 발병 내지 악화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추상적인 가능성을 넘어 극저주파 전자기장과 갑상선암의 발병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며 질병과 업무의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했다.

직접활선공법이 폐지돼 역학조사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입증책임을 노동자 개인에게 전가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석원희 건설노조 전기분과위원장은 “역학조사를 하려고 해도 지금은 직접 활선이 사라져서 역학조사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노동자들이 인과관계를 어떻게 증명하란 말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전력공사는 2017년 이후부터 직접활선공법을 폐지하고 간접활선공법으로 전환했다.

“활선작업 이익 사회 전체가 누렸는데”

김하경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질병과 업무 간 인과관계는 과학적·의학적 인과관계가 아니라 더 넓은 의미의 인과관계를 의미한다는 게 이미 확립된 법리다”며 “활선작업의 이익은 사회 전체가 누리고 위험은 개인에게 부담시키는 것이 정당한 것이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