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하청회사 대표다

2024-06-14     이정호
▲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지난 4월27일 오전 9시 11분께 거제시 사등면의 한 수리 조선소에서 4천500톤 바지선 엔진실에서 도장(페인트칠) 작업하다가 폭발에 이어 불이 나 노동자 11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고 다음날 60대 하청노동자 1명이 숨졌다. 화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받던 60대 하청업체 대표는 5월3일 숨졌다. 또 다른 60대 하청노동자는 5월12일 숨졌다.

오마이뉴스 등 몇몇 온라인 매체가 사고 당일부터 사망자가 늘어날 때마다 보도했다. 속보를 다루는 뉴스전문채널 YTN도 사망자가 3명으로 늘어난 5월17일 낮에 ‘거제 조선소 선박 화재 부상자 치료 중 숨져 … 사망자 3명’이란 기사를 내보냈다.

민주노총은 용접과 시너 세척을 동시에 하는 바람에 사고가 났을 가능성이 높은데 두 작업을 동시에 하는 건 금기 중의 금기라고 짚었다. 급기야 민주노총은 지난달 16일 올해 일어난 조선소 중대재해 12건 가운데 11건이 부산·울산·경남지역이었다며 긴급 토론회를 열어 여론을 환기시켰다.

그러나 서울지역 언론은 이를 비중있게 다루지 않거나 아예 보도하지도 않았다. 왜 그랬을까. 조선소가 몰려 있는 경남 거제에서 일어난 사고라도 큰 조선소인 한화오션(옛 대우조선)이나 삼성중공업에서 일어난 사고가 아니라 작은 수리 조선소라서 그랬다. 하지만 소수 언론이 다룬 기사엔 매우 중요한 정보도 담겼다. 두 번째 사망자가 하청업체 대표라는 사실이다.

나는 고향이 통영이라 가까운 거제에서 조선 하청업체를 운영하는 고향 친구들이 있다. 2010년까진 하청업체 대표는 일감만 따오고 거의 현장에 나가지 않았다. 대부분 시간을 원청 관리자들 접대에 시간과 돈을 쏟았다. 그러나 2011년부터 불어닥친 조선 불황 때부터 숙련인력이 대거 잘리는 바람에 지금은 다시 호황을 맞았는데도 사람을 구하지 못해 안달이다. 때문에 하청업체 대표도 현장 관리는 물론이고 직접 작업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번 사고는 용산 참사와 닮았다. 대개 철거는 도시 빈민이 사는 무허가촌을 부수는데, 용산은 달랐다. 용산은 서울 한복판에, 그것도 대로변에 있는 중산층 자영업자 가계를 부쉈다. 용산참사는 끝 모를 욕망에 사로잡힌 한국 토건 자본주의가 중산층까지 약탈할 만큼 궁지에 몰렸음을 드러냈다.

2010년대 조선업 불황 때 일부 언론은 숙련인력 이탈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고, 해고된 하청노동자의 외침을 보고서도 ‘불황에 고용을 유지하는 건 미친 짓’이라고 오히려 해고를 부추겼다. 당시 숙련인력은 중국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이를 두고 몇몇 연구자는 다시 호황기가 오면 인력난에 시달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금이 바로 그렇다. 그런데도 해고를 부추겼던 언론과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아무 말이 없다.

2011년 한진중공업에선 ‘희망버스’가 전국으로 부각됐지만 사실은 조선 불황에 따른 정리해고에 맞선 노동자들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한진 희망버스 때도 몇몇 전문가연 하는 사람들은 불황에 고용을 모두 유지하라고 하는 게 정당하냐며 희망버스 대열에 찬물을 부었다. 어떻게 경기 부침 사이클조차 이해 못하는 반쪽짜리 경제학자가 전문가를 자처하는지 모르겠다.

내 고향 친구는 거대한 선박 안 여기저기 흩어져 원청과 하청이 혼재 작업할 때 제일 무섭다고 했다. 원청에 인화성 높은 도장 작업한다고 몇 번을 알려줘도 간혹 원청이 이를 무시하고 용접 작업을 바로 옆에 배치하기도 한단다. 원하청 간 보고와 지휘체계 혼선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세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중대재해가 일어났는데도 언론은 감흥조차 없다. 그저 윤석열과 이재명 둘 중 하나를 때리거나 미화찬양하는 기사만 써댄다. 철저히 한쪽을 편들면서도 마치 중립인 양 포장하는 게 더 가증스럽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